[르포]"하이 할래?" 클럽서 은밀한 속삭임…약 탄 술 뒤늦게 알기도

머니투데이 강주헌 기자, 최지은 기자, 김진석 기자, 박수현 기자 | 2022.10.09 08:25

[파멸의 씨앗 마약, 오늘도 누군가](下)⑨이미 따라진 술 마시면 안 돼 '불문율'…경찰 특별단속 전개

편집자주 | 해마다 1만명이 넘게 마약 투약·유통·공급 혐의로 붙잡힌다. 온라인에서 마약이 종류별로 팔리고 어느 도시 한편에선 대마가 자란다. 중독은 강하지만 치료는 요원하다. 마약청정국에서 마약위험국이 되어버린 한국 사회의 실태를 들여다본다.

8일 오전 1시쯤 서울 강남역 인근에 위치한 클럽이 손님으로 북적이는 모습. /사진=김진석 기자
"잔에 이미 따라진 술은 마시면 큰일 나요."

8일 밤 11시 서울 강남구 신논현역 인근 클럽. 쿵쿵 울리는 비트에 몸을 흔드는 사람들로 스테이지가 북적였다. 춤추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클럽 한쪽 구석에 있는 바에서 술을 마시던 A씨(25·여)는 이런 일은 흔히 있다는 듯 무심한 표정으로 얘기를 이어갔다.

올해 초 친구와 함께 강남의 한 클럽을 방문한 A씨는 엑스터시로 추정되는 물질을 흡입한 것 같다고 토로했다. 자의는 아니었다. 클럽에서 만난 2명의 남성과 함께 다음 자리로 옮기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난 순간 A씨는 몸이 저릿했다. 시야는 점차 흐릿해졌다. 남성들에게 마지막 잔을 받아먹은 후였다.

A씨는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 사람들이 입은 옷이 물결처럼 흩어지면서 어떤 시각적인 예술작품으로 보였다"고 말했다. 이어 "술을 이미 너무 많이 마셔서 마지막 잔을 한 모금 정도를 남긴 게 다행이었다. 다 받아마신 친구는 거의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며 "약이 무색무취라는데 다른 술과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고 했다.

최근 젊은 층을 중심으로 마약 범죄가 증가하는 가운데 강남 일부 유흥주점과 클럽에도 마약 주의보가 떴다. 투약과 마약 거래 모두 가능성을 열어두고 경찰은 단속을 강화했다. 클럽에서 자의와 상관없이 마약 범죄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우려는 이날 클럽을 방문한 다른 손님 사이에서도 팽배했다.

강남 소재 또 다른 클럽의 입구 앞에서 만난 직장인 이모씨(28·여)는 "강남, 이태원 등지에서 술에 약을 타서 권하는 경우가 많아 이미 따라 놓은 술은 마시기 두렵다"며 "클럽에서 테이블을 잡을 정도로 자주 방문하는 사람들이 마약도 많이 한다고 들어 바 앞에 가서 직접 제조하는 술만 마시는 편"이라고 말했다.

매달 한번은 클럽을 방문한다는 김모씨(26·여)는 "강남의 한 클럽에는 MD(클럽업계에서 손님을 유치하는 역할을 맡는 영업직원)들이 어떤 소굴같이 방을 하나 빼서 평소 눈여겨 본 손님을 끌어들인다"며 "그곳에서 약을 탄 술을 권해 계속 방문하도록 유도한다고 한다"고 말했다.

20대 남성 유모씨는 "클럽에서 만난 한 중국인이 '하이(high)하겠냐'고 물으며 거래를 시도한 적이 있다"며 "클럽에서 마약을 접하기 쉽다고 들었지만 직접 수중에 마약을 가지고 거래를 제안한 사실이 놀라웠다"고 말했다. 하이는 마약 분야의 은어로 기분이 완전히 고조된 상태를 뜻한다.


8일 오전 1시쯤 서울 강남역 인근에 위치한 클럽의 락커룸. 최근 클럽 내 특정 장소에 마약류를 두고 가면 구매자가 나타나 가져가는 이른바 '던지기 수법'이 발생하고 있다. /사진=김진석 기자

클럽에서 마약 거래와 투약 등이 팽배해 있지만 단속은 쉽지 않은 실정이다. 단속팀의 인원은 턱없이 부족하고, 의심이 된다 한들 영장이 나오기 전까지 피의자에게 마약 양성 반응 검사를 강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피의자가 동의할 경우 간이 시약으로 검사할 수 있지만 간이 시약 검사는 참고용으로 활용될 뿐 증거로 채택될 수는 없다.

전날 밤 10시부터 8일 오전 12시40분까지 서초경찰서 특별단속반은 강남역 인근에 있는 클럽 4곳에 대한 단속에 나섰으나 실적은 0건이었다. 경찰은 던지기 수법으로 마약을 거래하고 있다는 정보원의 제보를 토대로 단속을 진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증거도 찾지 못했다.

경찰 관계자는 "마약은 암암리에 거래되기 때문에 적발에 어려움이 있다"며 "(이번 단속은) 선제적으로 예방 차원에서 하는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마약 투약의 경우 클럽이 아닌 호텔과 모텔 등 숙박업소로 옮겨갔다는 얘기도 나온다. 필로폰 투약 혐의로 검찰에 구속 송치된 작곡가 돈스파이크(45·본명 김민수)도 호텔 등지에서 투약했다가 덜미를 잡혔다. 일각에서는 투약하는 장소가 더 구석으로 숨어들면서 마약 검거는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경찰 관계자는 "마약 신고는 신빙성이 중요하다"며 "신고자의 확실한 진술과 그를 뒷받침하는 증거관계가 없으면 수사에 임하기 힘들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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