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 받을 시기에 부양 떠맡다 절망…뇌출혈 父 간병하던 청년의 비극 선택

머니투데이 김지현 기자, 기성훈 기자 | 2022.10.03 07:00

[MT리포트]사각지대 놓인 영 케어러(上)

편집자주 | 혼자서 몸이 아픈 아버지를 돌보다 지쳐 사망에 이르게 한 '대구 청년간병인 비극'은 세간에 큰 충격을 줬다. 동시에 그간 사각지대에 있던 '영 케어러(가족돌봄청소년·청년)' 문제가 부각되는 계기가 됐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도 뒤늦게 실태조사에 나섰지만 학업과 돌봄을 병행해야 하는 이들에겐 당장 손에 잡히는 지원이 절실하다. 영 케어러가 마주한 현실을 들여다보면서 우리 사회가 함께 풀어야 할 과제도 짚어봤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15년째 母병수발…"숨 돌릴 곳조차 없어"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혼자 무거운 짐을 평생 짊어져야 한다는 생각에 숨이 막히고 짓눌리는 느낌이었습니다."

서울 서대문구에서 조현병을 앓고 있는 어머니를 돌보며 살고 있는 노모씨(25)는 15년이 넘는 지난 시간을 이렇게 회상했다. 노씨는 "홀로 어머니를 돌봐야 했지만 도망칠 곳은 없었다"며 "하지만 누구에도 이 상황을 말할 수 없었고, 말하더라도 진정으로 이해받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입을 뗐다. 때론 어머니의 병환이 인생의 약점이 될 것이란 생각에 좌절감에 빠지기도 했다. 그는 "어머니의 병을 지켜보는 것조차 힘든데 숨 돌릴 곳조차 없었다"고도 털어놨다.

노씨와 같이 늙고 병든 부모나 조부모를 홀로 부양하는 청소년이나 청년을 '영 케어러(Young carer)'라 부른다. 지난해 대구의 20대 청년이 홀로 뇌출혈로 쓰러진 아버지를 돌보다 돌봄을 포기해 죽음에 이르게 한 사건이 알려지면서 주목받았다.

노씨가 어머니와 둘이 남겨지게 된 건 초등학교 입학 전 부모님이 이혼을 하면서다. 노씨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 어머니가 조현병 진단을 받았고, 신체적으로도 질환이 생겨 제 도움이 많이 필요해지셨다"며 "물론 어머니가 저를 양육하긴 하셨지만, 정서적인 측면에서는 이미 어릴 때부터 영케어러로 남겨졌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중·고등학교부터 대학교 저학년이던 시절엔 어머니의 병세가 호전되며 사정이 조금 나아지기도 했다. 희망도 보였다. 하지만 코로나19(COVID-19)가 시작될 무렵 어머니의 병세가 악화됐고, 의심과 망상 증세까지 나타났다. 노씨는 학업과 동시에 어머니를 돌보고 집안일까지 도맡아 해야 했다. 생계급여와 의료급여가 나왔지만 주 수입원이 없다보니 경제적 어려움에 내몰렸다. 학교에서 근로일을 하고 장학금을 받으며 생활을 이어갔다.

그는 "대학 수업을 듣는 것 같은 정기적인 활동도 어려웠고, 취업 준비에 집중하기도 어려웠다"며 "힘들 땐 가족에게 기대기 마련인데 그럴 곳이 없었다"고 한숨을 쉬었다. 복지 제도 등에 대해 잘 모르니 주변에 도움을 구하는 것도 어려웠다.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청년들이 있는지도 알 길이 없었다. 막막함의 연속이었다.

다행히 지난해 서대문구가 '영 케어러 발굴 및 지원사업'을 시작하며 도움받을 곳이 생겼다. 지원금을 받아 청소기 등을 구매했고, 반찬 지원도 받고 있다. 노씨는 "무엇보다 '영 케어러'라는 용어로 내 어려움을 규정하니 해결해 나갈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말했다.

이제 막 지원사업이 시작된 만큼 아쉬움도 남는다. 노씨는 "금전 지원만으로는 삶의 구조적인 면이 바뀌진 않는다"며 "제 경우엔 어머니의 병을 제대로 치료할 수 있는 지원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청년들의 삶이 가족을 돌보는 데에만 침식되지 않도록 거주 지원이나 환자 상담 등 가족과 거리를 둘 수 있도록 하는 지원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영 케어러가) 새롭게 발굴된 집단인 만큼 구체적인 실태 파악이 우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영 케어러는 학업과 취업, 결혼 등 인생의 중요한 시기가 맞물린 만큼 생애주기 한가운데서 좌절하는 이들이 없도록 해야 한다"며 "경제적 지원을 포함해 가족을 돌보느라 생긴 학업·경험 공백을 채울 수 있는 지원책들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돌봄 받을 시기, 오히려 부양 떠맡다 절망…'영 케어러'를 아시나요



/삽화=이지혜 디자인기자
"얼굴만 보면 아직 어리고 젊은 친구들이라 해맑은 모습이지만 대화를 나눌수록 의젓함이 느껴집니다."

지난 10개월간 '영 케어러(Young Carer)'들을 만나온 서울 서대문구의 사회복지사 손지윤씨(29)는 현장에서 홀로 부모나 조부모를 돌봐야 하는 영케어러들을 만났을 때 어떠냐는 질문에 이같이 말했다. 그는 "가족을 위해 희생하면서도 미래를 걱정하는 이야기를 하는 걸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고 안쓰러워했다.

손씨가 접한 대부분의 영 케어러들은 최소 두 가지 이상의 어려움을 동시에 경험하고 있었다.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심적인 부담과 함께 의료·교육비 등 경제적 어려움이 대표적이다. 그는 "아직 가족의 돌봄이 필요한 청년들이 오히려 미래를 위한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누군가의 도움이 없어 막막한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영 케어러' 18~29만 예상…학업 중단 등 어려움


지난해 대구에서 발생한 '청년 간병인 사건'은 세간에 큰 충격을 안겨 줬다. 20대 아들 A씨가 치료비에 부담을 느껴 뇌출혈로 입원 중인 아버지를 퇴원시키고, 돌봄을 포기해 사망에 이르게 한 '간병 살인' 이후 '영 케어러' 지원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커졌다.

사회적 인식은 높아졌지만, 아직 '영 케어러'에 대한 실태조사는 물론 정확한 규모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는게 현실이다. 전문가들도 해외의 수치를 단순 대입해 규모를 유추할 뿐이다. 국회입법조사처의 '해외 영 케어러 지원 제도와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에는 약 18만4000명에서 29만5000명의 영케어러가 있을 것으로 추산된다. 이마저도 11~18세 사이의 청소년 인구만 대상으로 집계한 것으로 실제 규모는 더 클 것으로 보인다.

국회 보고서는 성장 시기의 가족 돌봄은 영 케어러들에게 신체·정서·경제·사회적 지장을 초래한다고 분석했다. 낮은 학업 성취도는 이들의 미래 고용상태와 자립능력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2018년 캐나다에서 영 케어러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선 학교 결석률이 10.8%에 달했고, 영국의 2014년 연구에선 대학에 다니는 영 케어러 중 56%가 가족 돌봄으로 학업 수행에 지장을 받는다고 답하기도 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어릴 때 부모님이 이혼하고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와 살고 있는 '영 케어러' 이모씨(23)는 학창 시절 가장 힘들었던 점으로 공부에 집중할 수 없었던 점을 꼽았다. 그는 "시험 기간 할머니가 갑자기 응급실에 실려 가신 적이 있었다"며 "내가 처한 상황을 극복하려면 좋은 대학에 가서 취업하는 것뿐이었는데 그조차 불가능하다는 생각에 심한 우울감에 빠졌다"고 말했다.

◆정서적으로 우울감 느껴…자립 돕는 제도 절실

학업과 취업의 어려움은 결국 정서에도 악영향을 준다. 2020년 호주에서 7725명의 영 케어러를 대상으로 설문을 한 결과 73.5%가 '사회적 고립감을 느낀다'고 답했고, 73.8%는 '정신적으로 고통스럽다'는 데에 동의했다. 조현병을 앓고 있는 어머니를 돌보는 노모씨(25)는 가장 힘든 부분 세 가지를 꼽아달라는 질문에 두 번째로 '정서적으로 기댈 곳이 없다'고 했다. 그는 "가족에게 기대고 싶은데, 나보다 약한 사람에게 그럴 수는 없다는 점이 힘들다"며 "일반적인 삶과 다른 형태의 삶을 살아가는 것에 대한 좌절감도 크다"고 말했다.

특히 코로나19(COVID-19)는 영 케어러들의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계기가 됐다. 노씨는 "코로나19 사태 때 엄마와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더 답답하고 화가 났다"며 "어머니의 병환을 지켜보는 건 알고 있어도 고통스럽다"고 털어놨다.

2020년 영국의 간병인 자선단체 '케어 트러스트'(Carers trust)가 12~25세 영 케어러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도 이를 뒷받침했다. 코로나19 이후 △'정신건강이 더 나빠졌다'고 답한 비율은 12~17세 40%, 18~25세 59%, △'미래가 더 두러워졌다'고 답한 비율은 12~17세 67%, 18~25세가 78% △'고립감을 느낀다'고 답한 비율은 12~17세 69%, 18~25세 69%로 나타났다.

하지만 기존의 사회복지 시스템으로 '영 케어러'들을 지원하는데엔 한계가 있다. 금전적 지원만으론 부족한게 사실이다. 이씨는 "가령 저소득층 학생이 학교에서 방과 후 교육이나 온라인 강의 등을 지원받는다고 했을 때 영 케어러들은 그 시간에 아픈 가족을 돌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손씨도 "영 케어러들이 안정적으로 생활하기 위해서는 경제적인 지원과 더불어 구직 및 진학 등 제도적인 지원이 강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 "선제적 발굴로 자립 도와야"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전문가들은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영 케어러 지원을 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청년들이 가족을 돌보느라 취업하지 못하는 기간 근로자 평균 임금만큼의 금액을 지원하는 방안을 생각할 수 있다"며 "동시에 가족 돌봄을 경력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시스템, 고용지원센터에서 별도로 사례관리를 해 자립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청소년의 경우엔 학업이 중단되지 않도록 학교의 관리가 필요하다. 국회입법조사처의 '해외 영케어러 지원 제도와 시사점'에서 허민숙 입법조사관은 "잦은 결석, 과제 미제출 등을 보이는 학생이라면 가정에서 가족을 돌보고 있는 아동이나 청소년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며 "어느 곳에 이들을 연계해줘야 하는지 지침서를 제작해 학교에 배포할 수 있다"고 제시했다.

김진수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선제적인 '영 케어러' 발굴을 강조했다. 김 교수는 "대구 청년 간병인 사건뿐 아니라 수원 세모녀 사건에서도 볼 수 있듯 위기 가구 발굴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복지 수혜를 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며 "동네의 상황을 잘 알고 있는 민간 분야와 협력해 영 케어러를 찾아내고 필요한 지원을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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