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정동의 극장들

머니투데이 박동우 무대미술가·홍익대 공연예술대학원 교수 | 2022.09.30 02:05
박동우(무대미술가·홍익대 공연에술대학원 교수)
'북경도, 동경도, 방콕도, 상해도 서울처럼 전신과 전화, 전차와 전기조명을 동시에 가진 것을 자랑하지 못한다.' 독일 지그프리트 겐테 기자가 1902년 쾰른신문에 연재한 '한국여행기'의 내용 일부다.

갑오왜란(1894년)과 을미왜변(1895년)을 겪은 이후 고종은 국제사회에서 중립국으로 인정받기 위해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 조선을 근대화하려는 개혁을 시작한다. 그로부터 6년 후 서울은 위의 기사처럼 완전히 변모했다. 광무 6년(1902년)에 개최될 예정이던 즉위 40주년 칭경예식에 참석할 각국 사절단에게 근대국가의 모습을 보여주고 중립외교 노선을 표방해 제국주의의 파도로부터 한국을 지키고자 한 필사의 노력이었다. 올림픽이나 월드컵을 개최하기 위해 공항, 도로, 지하철, 호텔, 예술의전당 등 각종 부대시설을 건설하고 시민들의 옷차림과 생활습관까지 정비하는 현대의 노력보다 더 숨가쁜 6년이었다. 그 중심에 정동과 경운궁(현 덕수궁)이 있었고 국제적 문명국가의 조건에 극장 건축도 포함돼 있었다. 정동 부근의 극장들을 건축된 순서대로 살펴본다.

정동 부근에 가장 먼저 건축된 극장은 1902년 야주개(현 새문안로 한글회관 근처) 언덕에 고종 즉위 40주년 칭경예식 공연을 위해 건축한 왕립극장 '희대'다. 운영기관의 이름을 따 '협률사 희대'라고도 하며 1908년 민간에 임대된 후부터는 '원각사'로 불렸다. 원형 벽돌건물에 각형 양철지붕을 씌운 아름다운 극장이다. 한국 최초 극장이자 국립극장 격인 협률사 희대는 각국 사절들에게 한국의 공연을 관람케 할 목적으로 건축됐다. 단상무대와 2층 객석이 있는 600석 정도의 이 현대적인 극장은 일제강점기에 불분명한 이유로 사라졌다.

두 번째로 정동 부근에 세워진 극장은 '동양극장'이다. 1935년 11월 새문안로의 현 문화일보 자리에 무용가 배구자가 건립한 민간 최고의 연극 극장으로 객석 규모는 648석이었고 회전무대 등 신식 설비를 갖췄다. 일제강점기에 한국 연극의 요람 역할을 한 이 극장은 1990년 연극인들의 반대시위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철거돼 그 자리에 빌딩이 들어서고 말았다.

세 번째는 1935년 12월 조선총독부에 의해 덕수궁 바로 옆 세종대로에 건립된 '경성부민관'이다. 조선총독부에 의해 건립된 1800석의 이 시민회관 대강당은 조명과 음향 등 설비 면에서는 최신식이었지만 민간 공연단이 그 거대한 관객석과 무대를 채우기는 힘들었다고 한다. 1950년 초대 국립극장으로 잠시 사용되다 종전 후 국회의사당으로, 시민회관 별관으로, 지금은 서울특별시의회 건물로 사용된다.


네 번째는 1976년 개관한 '세실극장'이다. 영국성공회의 부속건물로 설립된 이 극장은 한국 성공회사에서 전무후무한 족적을 남긴 제4대 한국교구장 세실 쿠퍼 주교의 이름을 명명했다. 1977년부터 연극인회관으로 사용되면서 제1~4회 대한민국연극제를 개최했고 지금은 국립정동극장이 맡아서 운영한다.

마지막으로 1995년 개관한 '국립정동극장'이다. 정동길과 덕수궁길이 만나는 정동 한복판에 지어진 이 극장은 '우리나라 최초 근대식 극장 원각사를 복원한다'는 역사적 소명을 가지고 탄생했다. 원각사는 위에서 언급한 한국 최초 극장 협률사 희대다. 하지만 그 목적과 달리 현대식 일반 극장이 지어지고 말았다. 제대로 연극할 극장이 부족하던 당시 여건을 감안하면 그 선택을 나무라기도 어렵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국립정동극장을 재건축한다고 한다. 그 면적이면 지하에 현대식 극장을 하나 짓고 지상에 협률사 희대를 복원할 수도 있다. 일반적인 극장은 이제 많이 있다. 그 많은 현대식 극장의 리스트에 굳이 또 하나를 보탤 게 아니라 한국 최초 국립극장인 협률사 희대가 복원돼 일제에 의해 좌절된 자주적 근대화의 한을 조금이나마 풀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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