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박해수, 기본기의 미덕을 온몸으로 껴안은 배우

머니투데이 한수진 기자 ize 기자 | 2022.09.22 15:27
박해수, 사진제공=넷플릭스


탄탄한 기본기가 주는 미덕을 온몸으로 껴안는 배우들이 있다. 박해수가 그런 배우다. 그는 무대 위에서 고뇌를 짊어진 캐릭터들과 함께 성장해왔고, 단숨에 '슬기로운 감빵생활'과 같은 대작의 주연을 꿰차며 기본기의 힘을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배우의 표상이 됐다. 조건에 쉽게 흔들리지 않고, 주어진 상황의 이상의 것들을 묵묵하게 해낸다.


그래서 박해수에게 붙여진 '넷플릭스 공무원'이라는 별명은 여러 의미를 지닌다. 넷플릭스 작품에 많이 출연하는 이들에게 더러 '아들'이나 '딸'이라는 별명이 심심찮게 붙곤 했지만, 박해수는 혈연적인 접근이 아닌 하나의 직함으로 능력치 중심의 애칭이 뒤따랐다. 이는 철저하게 그의 탄탄한 연기력을 방증함과 동시에, 성실함까지 수반한다.


미국 에미상에 참석한 후 며칠 지나지 않아 넷플릭스 시리즈 '수리남' 이야기를 하기 위해 서울 삼청동 모 카페에서 그와 인터뷰 자리를 가졌는데, 피곤할 법도 했을 텐데 전혀 그런 티를 내지 않았다. 오히려 건강한 에너지가 넘쳐흘렀고, 목소리는 우렁찼다. 급기야 칭찬이 오갈 때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폴더 인사를 건네는, 겸손함과 위트가 온몸에 배어있었다.


'수리남'에서 박해수가 연기한 국정원 요원 최창호도 기본기가 탄탄하지 않으면 쉽게 해낼 수 없는 역할이었다. 하정우나 황정민이 동적인 느낌을 살려 극에 자극을 실어넣었다면, 박해수는 공중 30M에서 조금의 미동도 없이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를 하고 있는 것 같은, 긴장감이 중첩된 정적인 감상을 불어넣었다.


박해수, 사진제공=넷플릭스


극중 '식사는 잡쉈서?'가 유행어가 됐어요. 밥 먹었냐는 안부를 많이 받을 것 같아요.


"정말 많이 받아요. 그 대사는 사실 의미가 크게 있던 건 아니었는데 이렇게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실 줄이야. 시청자들이 보기엔 어떨지 몰라도 사실 그 대사를 연기한 저로서는 수화기 너머로 전요환(황정민) 앞에서 이중적인 행위를 하는 지점에 '식사는 잡쉈서?'라고 말을 뱉고 나면 구상만이라는 극중 가짜 캐릭터에 빠르게 몰입할 수 있었어요. 반복적으로 쓰면서 각성하는 느낌도 있었고요."


국정원 요원을 연기하기에 앞서 따로 조사나 준비한 것들이 있을까요?


"실존 캐릭터이기는 한데 직업 자체가 기밀이기 때문에 접근할 수가 없었어요. 촬영팀을 보호하기 위해 도미니카공화국 현장에 계셨던 국정원 요원분들이 계셨는데 한 번 물어는 봤어요. 그 분들도 기밀이다 보니 별 말은 못해주시고 '전설적인 분이 계셨다'는 것 정도만 알려주시더라고요. 그래서 대본 안에 있는 것들로 캐릭터를 공부했어요."


촬영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신을 꼽자면요?


"힘들었다기보다는 고민이 됐던 부분은 있었죠. 전화신이요. 한 공간에서 촬영이 이뤄졌고, 미리 찍었어야 했던 상황이라 고민이 많이 됐어요. 갈등을 고조시키는데 있어서 '내가 긴장감을 유발하지 못하면 어쩌나'하는 걱정을 했어요. 많은 고민을 했고 차분한 버전, 격양된 버전 등 다양하게 촬영했어요."



박해수, 사진제공=넷플릭스


가장 고심했던 장면은요?


"극 초반에 창호가 수행해야 할 의무가 있어요. 내레이션으로 전요환이 얼마나 악독한 인물이었는지 들려주면서 시청자들을 설득해야 했던 거요. 고민이 많았어요. 창호의 캐릭터성을 살리는 부분이 아니라 다른 인물의 전사를 설명해야 했던 부분이기 때문에 더 차분하고 객관적인 접근이 되어야 할 것 같았죠. 두 번째로는 최창호에서 구상만이라는 가상의 인물을 연기해야 했을 때였죠. 최창호가 연기하는 구상만이 처음에는 좀 더 날티나게 표현해야 하는 건가 했어요. 결론적으로는 전요환을 믿게 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어요. 스스로에 대한 정확한 믿음이 있었어야 했어요. 실제 무역상 같아야 전요환을 믿게 하고 또 보시는 분들도 이입할 수 있을 테니까."


최창호와 구상만의 균형을 맞추는 것도 고민이 컸을 듯해요.


"둘의 가장 큰 공통점은 일에 대한 확신이었어요. 전요환을 잡아야 한다는 공통된 의지로 만들어진 수년 간에 걸친 전략이 있었잖아요. 두 자아 모두 직업적인 확신 안에서 보여주고자 했고, 외형적으로는 자연스럽게 의상으로 커버가 됐어요. 굳이 톤을 바꾸려고 노력을 많이 안 했어요. 일부러 다르게 하지 않아도 다르게 보이는 대본의 힘이 있었어요. 어미 같은 것들이 말맛이 살아있었죠."


'오징어 게임'으로 에미상에 다녀온 이야기도 안할 수가 없어요.


"어떻게 보면 (황동혁) 감독님 입장에선 다른 배우들은 수상도 하고 그래서 제가 섭섭해 할까봐 일부러 문자도 보내주시고 하셨어요. 문자로 '극에 메시지적으로 가장 투영될 수 있는 캐릭터였어서 좋았다'고 격려해 주셨어요. 이번에 미국에서 가서 제 역할을 포함해 시즌1의 많은 인물들을 죽인 걸 후회하시더라고요.(웃음) 이번에 에미상을 가보니 한국 촬영진에 대한 기대가 크다는 걸 많이 느꼈어요. 예전이랑 느낌이 많이 달라요. 그냥 아시아 배우에 머문 느낌이었다면 이젠 리더가 된 느낌을 받았어요."


2년 간 정말 쉴 새 없이 출연작들이 공개됐어요.


"쭉 달려온 것처럼 보이잖아요. '오징어 게임' '야차' '종이의 집' '수리남'까지. 보시는 분들 입장에서는 제가 계속 달리고 있구나라고 느끼시겠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거든요. 촬영 기간 텀이 항상 있었고, 겹쳐서 촬영하는 걸 또 못해요. 그저 육체적인 힘듦보다는 배우로서 좀 더 성장하고 싶은 바람이 컸죠. 어떻게 해야 다른 시각을 가질 수 있을지 고민을 많이 했어요. 생활 연기 같은 자연스러운 부분들이요. 그런데 그런 연기는 다 때가 있는 것 같아요. 장르물만 너무 많이 해서 이미지 소비가 굳어지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이젠 무엇보다 중요한 건 모든 작품을 흘려버리지 않는 마음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소중하게 제가 맡은 캐릭터를 맛있게 먹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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