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연(정의기억연대) 해체하라."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이 위치한 서울 종로구 율곡로2길이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로 시끄럽다. 이날 소녀상 주변에 신고된 집회만 6건이다. 서울 종로경찰서에 접수된 순서대로 자유연대(신자유연대), 정의연, 엄마부대, 반일행동 등 순이다.
이날은 1561차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수요집회)'열리는 날이다. 집회 준비가 한참인 오전 11시가 넘어서면서 소녀상을 중심으로 율곡로2길에 유독 긴장감이 감돈다.
추석 당일이었던 지난10일 오후10시쯤 신자유연대회원 10여명이 소녀상 주변에서 정의연 해체와 소녀상철거 등을 요구하며 기습집회를 열면서 반일행동측과 몸싸움을 벌인 탓이다. 추석에 발생한 충돌로 신자유연대 회원 한명이 병원으로 후송되고 반일행동 측 회원 한명이 경찰을 밀치면서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현장에서 체포됐다.
이에 맞서 실업유니온·희망나비·진보학생연대·민중민주당학생위원회 등이 구성한 반일행동은 2020년 6월23일부터 소녀상 뒤에 천막을 치고 24시간 연좌농성을 이어오고 있다.
신자유연대는 소녀상 근처에 먼저 집회를 신고한 선순위자인데 경찰이 반일행동측의 집회를 보장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현행법에 따르면 경찰이 금지 또는 제한해야 하는 집회는 소녀상을 지키는 반일행동측 연좌농성이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이 먼저 신고한 집회에 우선권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김상진 신자유연대 대표는 "지난해 11월부터 평화의 소녀상 자리에 선순위로 집회를 신고했는데 반일행동이 집회를 방해하기 위해 소녀상을 지키고 있다"며 "반일행동과 선순위 집회 단체를 보호하지 않은 경찰을 모두 검찰에 고발할 예정"이라고 했다.
반면 반일행동측은 "소녀상에 대한 테러를 자행한 친일극우단체를 규탄하고 극우를 비호한 친일 서울경찰 김광호를 고소고발할 예정"이라고 했다.
서울 종로경찰서 관계자는 "집회 개최 한달 전인 720시간 전부터 신고할 수 있는데 자정을 넘어 날짜가 바뀌면 보수단체 측에서 경찰서를 찾아와 당직자를 불러 집회를 신고한다"며 "집시법에는 집회 주최자 또는 그 대리인이면 누구나 신고할 수 있어서 헌법에 보장된 집회신고를 막을 순 없다"고 했다.
집시법에 따르면 '서로 상반되거나 방해가 되는 집회'가 2개 이상 신고되면 경찰은 시간과 장소를 나누어 집회가 평화적으로 모두 개최·진행될 수 있도록 권고하는 등 노력해야 할 의무가 있다. 다만 선순위 집회가 경찰 분할 개최 권유에 응하지 않으면 후순위 집회만 금지·제한할 수 있다.
반일행동은 매일 종로경찰서를 찾아가 집회 신고를 연장하고 있다. 경찰은 반일행동이 소녀상 옆에서 24시간 연좌농성을 이어오고 있는 점등을 감안하며 충동을 예방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반일행동이 후순위 접수자지만 소녀상 옆에서 이어오는 연좌농성을 허용하면서 주변에 경찰 펜스를 설치해 인근에 집회를 신고한 보수단체와 접촉을 차단한다는 것이다.
30여년간 지켜온 소녀상 주변자리를 빼앗긴 정의연 역시 경찰의 적극적인 개입을 요구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는 지난 1월 보수단체측 집회신고 목적을 '수요집회를 방해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경찰에 적극적으로 제지할 것을 권고했다.
한경희 정의연 사무총장은 "인권위 권고에도 경찰은 폴리스라인만 설치하고 소음 측정 등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며 "꼭 소녀상 주변이 아니어도 된다. 수요집회를 방해하고 역사를 왜곡하는 단체에 대해 경찰이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했다.
경찰청은 지난 4월 대책 "선순위 집회를 방해할 목적으로 집회 신고를 남용하더라도 후순위 집회를 현실적으로 보호할 방안이 없어 이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며 '중복집회의 평화적 관리를 위한 입법 개선 방안연구 용역'을 발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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