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쓴 배터리에서 소재 추출...美 인플레 감축법 돌파구 될까

머니투데이 김도현 기자 | 2022.08.30 05:41
제주테크노파크에 수거된 폐배터리 /사진=김도현 기자

미국이 자국 내 공급·생산량 강화에 초점을 맞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통과시키고 유럽에서도 이와 유사한 개념의 원자재법(RMA) 도입이 추진되면서 배터리 업계의 중국 의존도 낮추기가 당면 과제로 떠올랐다. 원재료 조달이 최대 난관으로 평가되는 가운데 폐배터리에서 소재를 추출해 새 배터리를 제작하는 사업이 탄력받게 될 전망이다.

29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해당 법안들의 핵심은 완제품뿐 아니라 공급망 단계서부터 역내 조달을 강제한다는 점이다. 사실상 전기차·배터리 밸류체인 전 단계에서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 중국을 견제하겠단 의지가 다분하다. 중국과 경쟁관계인 K배터리 기업들이 수혜를 입게 될 것으로 점쳐지지만, 중국이 장악한 원재료 시장에서의 자립화가 숙제로 남았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김회재(더불어민주당)의원실에 따르면 올 상반기 수입된 니켈·코발트·망간 97%가 중국산이다. 국내 배터리 기업들이 주력하는 NCM(니켈·코발트·망간) 삼원계 배터리의 근간인 광물들이다. 배터리 제작에 필수적인 산화코발트, 인조흑연, 수산화리튬 등의 중국산 수입 비중도 각각 89%, 91%, 83%에 달했다.

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 등은 신규 설비투자의 상당수를 북미·유럽 지역에 집중했다. 이들에 배터리 소재를 납품하는 주요 소재 기업들도 현지화 전략을 펼치고 있다. 광물 의존도만 낮춘다면 내수시장을 바탕으로 성장해 온 중국 배터리업계를 압도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할 수 있다.

문제는 중국이 원자재 시장에서 막강한 입지를 구축했다는 점이다. 배터리 핵심 광물 중 상당수가 중국에서 채굴되고 있으며, 또 다른 핵심 산지인 아프리카 지역의 광산 상당수도 중국계 자본이 잠식했다. 사정이 이럼에도 미국은 2024년부터 자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국가에서 40%를 충당해야만 보조금을 지급한다는 방침이다.

미국이 요구하는 조달체계 구축이 불가능에 가깝단 반응이 나오는 가운데 업계 내부에서는 배터리 재활용(Recycle) 사업이 속도를 낼 것이라 입을 모은다. 배터리 재활용은 대표적인 폐배터리 사업 중 하나다. 수명을 다한 배터리에서 주요 광물을 추출해 새 배터리 소재 제작에 사용하는 방식이다.

버텨질 배터리를 활용해 경제성을 높이고 환경을 보호하자는 취지에서 시작된 사업이 생산 이력에 대한 규제 강화에 따른 대안으로 급부상하게 됐다. 폐배터리 협력사들과 파트너십을 맺고 원료 공급망 다변화를 구축해온 LG·삼성·SK 등 배터리 완제품 회사들뿐 아니라 성일하이텍·에코프로 등도 관련 사업에 속도를 낼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LG에너지솔루션은 에코프로의 폐배터리 담당 계열사 에코프로CNG, 북미 최대 배터리 재활용 기업 라이사이클(Li- Cycle) 등과 손잡았다. 수거된 폐배터리에서 소재를 추출 역량을 구축하고, 이를 통해 배터리 제작에 필요한 광물을 조달한다는 구상이다.

삼성SDI 파트너는 성일하이텍은 수거된 배터리에서 순도 높은 광물을 추출해 시장의 주목을 받고 있다. 관련 분야에서는 국내 최고 기술력을 자랑한다. 삼성SDI 공장이 있는 헝가리에 1·2 리사이클링파트를 건립한 데 이어, 최근에는 포스코홀딩스와 협력해 폴란드에도 폐배터리 생산설비를 마련했다. 2000만달러(약 270억원)를 투입해 미국 조지아주에도 폐배터리 공장을 구축할 계획이다.

소재부터 셀·모듈·팩에 이르는 배터리 수직계열화를 준비하고 있는 SK온은 계열사 간 협업 등을 통해 폐배터리 사업을 확장하려는 모습이다. SK그룹 차원에서 배터리 생애주기 전 과정에서의 수익성을 창출하기 위해 다양한 투자가 이뤄지고 있으며, 폐배터리 역시 그 일환으로 추진되고 있다. SK온과 포드가 합작한 블루오벌SK도 향후 사업장에서 발생한 폐배터리를 재활용해 제품 생산에 활용하겠단 방침이다.

업계는 IRA 통과를 계기로 폐배터리 사업이 예상보다 빠르게 성장할 것이며 중국 의존을 낮추는 데 일부 도움이 될 것이라 입을 모았지만, 중국을 대체할 수준은 아닐 것이라 입을 모았다. 기술개발이 빨라져도 기본적으로 폐배터리가 일정 수준 이상 수거돼야 하고, IRA 이력 범위가 어디까지 적용될지 등이 정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배터리 재활용은 중국 의존을 줄이는 대안 중 하나가 될 수는 있겠지만, 중국 의존도를 낮추는 데는 한계가 있다"면서 "현재 수거되는 폐배터리는 하이브리드(HEV) 위주라 대당 배터리 수거량 자체가 적어, 순수전기차(EV) 폐차 시점에 발맞춰 수익성이 확보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만약 미국이 수거된 폐배터리의 생산 이력까지 들여다보겠다고 선언할 경우 폐배터리 사업이 활기를 띠게 될 시기가 더욱 늦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관계자는 "배터리 수요가 지속적으로 급증할 것으로 예상돼 배터리 재활용 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면서 "배터리 완제품 및 소재를 넘어 광물 단계부터의 이력을 추적해 보조금을 지급하겠다는 미국의 정책은 전기차 전환을 늦추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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