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우리 공동체 전체를 다룬다. 정치가의 일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대통령의 일인데 대통령이 하는 일을 보면 정치가 얼마나 전체와 관련되는지 알 수 있다. 외교관은 외교만 챙기면 되고 경제관료는 경제만, 검사는 수사·기소만, 군인은 국방만 챙기면 된다. 이들은 전문가다. 하지만 대통령은 가뭄도 챙기고 홍수도 챙기고 북한 핵문제도 챙기고 집값도 챙기고 물가도 챙기고 저출산도 챙기고 BTS 군복무 문제도 챙겨야 한다. 정치공동체의 모든 일을 다 챙겨야 한다. 정치는 부분이 아니라 전체를 다루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치가는 특정 분야의 전문가여서는 안 된다. 정치가는 법률가여서도 안 되고 관료여서도 안 되며 야구선수여서도 안 되고 철학자·역사가여서도 안 된다. 정치가는 정치가여야 한다. 물론 법률가 출신이어도 되고 관료 출신이어도 되고 야구선수나 철학자·역사가 출신이어도, 농어민 출신이어도 된다. 하지만, 특정 전문분야를 떠나 정치에 들어오는 순간부터는 과거 훈련해 온 생각의 근육들을 빨리 풀어줘야 한다. 공동체 전체를 만나는데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생각의 근육이 한쪽으로 굳어진 사람은 '꼰대'가 된다. 세상이 얼마나 다채롭고 다양한지 모르면서 자신이 살아온 좁은 세계에 갇힌다. 그에게 다른 사람의 이야기는 재미가 없다. 평소 안 쓰던 생각의 근육을 쓰려니 힘만 들고 재미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논어(論語)에서 공자가 '군자는 그릇이 아니다'(君子不器)라고 한 것이다. 군자는 정치가를 의미하고 그릇은 특정한 모양이 굳어진 전문가를 의미한다. 전문가 출신인 것은 전혀 문제가 안 된다. 문제는 자신이 전문가, 즉 모양이 굳어진 그릇이면서 그것만 가지고도 정치가가 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정치가는 공동체 전체와 상식 수준에서 편안하게 생각을 주고받을 수 있어야 한다. 공동체와 함께 공감(共感)하고 공론(公論)하며 모두가 가지고 태어난 '정치적 이성'을 공적으로 사용하고 키워나가는 사람이다. 어쩌면 전문가가 정치가를 대신하는 것이 한국 정치의 가장 큰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릇이 군자가 되기 위해서는 '퀀텀점프'가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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