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2만 산골서 출산율 '2배'…비결은 전국서 찾는 '공공 조리원'

머니투데이 양구(강원)=이창명 기자 | 2022.08.05 05:30

[지방시대:로컬팝업]①양구편

편집자주 | 지역균형발전은 해묵은 과제지만 인구문제와 맞물린 중요한 화두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과 함께 '지방시대'를 천명했지만 아직 구체적인 해법은 보이지 않는다. '로컬팝업'은 '지역(Local)'의 '인구(Population)'를 '높일(Up)' 대안을 모색하는 머니투데이의 제언이다. 직접 발로 뛰며 찾은 지방도시의 로컬팝업 성공스토리를 소개한다.

양구군 공공산후조리원의 입구 모습/사진=이창명 기자

지난달 12일 서울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2시간여를 달려 양구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자 마치 1980~90년대로 되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양구 터미널 주변을 둘러보면 '지방소멸'이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금방 체감할 수 있다. 터미널 안엔 무더위를 피하기 위해 앉아 있는 노인들 뿐이고, 간혹 군인들만 눈에 띈다. 양구에서 가장 번화한 장소고, 점심시간 안팎인데도 사람들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하루 종일 승객들을 기다리는 빈 택시만 터미널 주변에 가득했다.

양구는 원래 산지가 많은 지형과 북한과 인접한 입지의 특성상 주둔하고 있는 군대에 인구와 경제를 의존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2019년을 기점으로 이 마저도 유지하기 어려워졌다.


국방 위수지역 폐지·2보병사단 해체 '직격탄'


2019년 2월 나온 국방부의 위수지역 규정 폐지 결정은 양구군 상권에 치명상을 입혔다. 위수지역 규정은 병사들이 외박을 나갈 때 제한지역을 두는 제도다. 이 규정이 유효할 땐 특정지역 부대에 근무하는 병사들은 지역 상권을 벗어날 수 없다. 하지만 젊은 장병들이 불만을 가지면서 결국 이 제도가 없어졌다. 대신 정부는 2시간 이내에 부대로 복귀가 가능한 지역까지 외박을 허용하도록 방침을 바꿨다.

위수지역 규정 폐지와 동시에 양구군이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다. 지역 내 군인들이 양구보다 춘천 상권을 선호하기 시작한 것이다. 2012년 양구~춘천 도로 직선화로 양구에서 춘천간 이동 시간이 차량으로 40분~1시간으로 30분 이상 단축됐기 때문이다. 군인들의 만족도는 높아졌지만 양구군 입장에선 고민이 깊어지는 대목이다.

양구군청 관계자는 "예전에는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아서 군인들이 외박을 하더라도 양구를 벗어나지 않았고 지역 상권을 이용했다"며 "하지만 위수지역이 폐지되고, 도로가 개선돼 춘천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지면서 양구 지역 인구가 줄고, 상권이 큰 타격을 입게 됐다"고 지역 분위기를 전했다.

특히 같은해 9월엔 육군 제2보병사단(노도부대)이 해체되면서 군인과 가족 등 인구 2500여명이 한꺼 번에 양구를 빠져나갔다. 행안부 주민등록인구통계에 따르면 2018년까지 2만4000여명을 유지한 양구군의 인구 수는 지난달 기준 2만1607명으로 간신히 2만대를 유지하고 있다. 이미 강원도 지역에선 양구군의 인구 수가 가장 적다. 전국으로 넓혀 봐도 양구군보다 인구 수가 적은 지역은 전북 장수군과 경북 영양군·울릉군 뿐이다.

양구군은 이를 단순한 인구감소가 아니라 국가안보 차원의 문제로 받아들였다. 양구군 전체 인구의 약 80%가 군인과 군인 가족으로 구성돼있어서다. 군인들이 살고 싶지 않은 지역이 된다면 순식간에 인구 2만명 선은 물론 최전방이 무너질 수 있다는 얘기다.



전국 최고 '공공산후조리원'에 몰려드는 산모들


벼랑 끝에 선 심정으로 지방자치단체와 군이 합심하면서 최근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첫 출발은 2020년 처음 문을 연 공공산후조리원이다. 양구군 예산 17억원 등 총 26억원을 들여 지은 공공산후조리원은 전국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이미 공공산후조리원은 행정안전부가 지난해 개최한 '저출산 대응 우수사례 경진대회'에서 양구군에 대통령상을 안기면서 타 지역의 벤치마킹 사례가 되고 있다.

현재 양구군에 1년 이상 거주한 산모는 추가 비용없이 산후조리원을 이용할 수 있다. 반면 양구군에 거주하지 않는 산모들은 2주간 180여만원, 강원도(인제·화천군) 내 이용자의 경우에도 30% 비용을 내야 산후조리원에 들어갈 수 있다.


지난 4월부터 2주간 시설을 이용한 김연주씨(28)는 "인제군에서만 오더라도 30%의 비용을 부담해야 하지만 양구군민의 경우 비용 부담이 없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라며 "비용이 저렴하면 만족도가 낮을 수 있지만 머무르는 2주 기간 아기를 마음 놓고 맡길 수 있었고 매우 만족스러웠다"고 말했다.

양구 공공산후조리원을 운영하는 오현주 성심의료재단 이사장은 "처음 설립할 때부터 서울 강남의 여러 산후조리원을 참고했고, 비슷한 수준으로 만들지 않으면 안된다는 의지가 강했다"면서 "공공이라고 해서 서울의 유명한 산후조리원보다 시설보다 뒤처진다는 말이 절대 나오지 않도록 신경 썼고, 전국 최고 수준을 갖췄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산후조리원을 이용하신 분들의 만족도가 낮으면 결국 서울 등 다른 지역 산후조리원을 찾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요즘엔 젊은 산모들의 정보력이 매우 빠르고, 서울 강남 수준이 기준이 돼서 지역 시설이 낙후했다거나 부족하다는 말이 나오는 순간부터 경쟁력을 잃는다"고 말했다.

실제로 쾌적하고 넓은 시설 뿐만 아니라 다도와 같은 산모 프로그램, 24시간 아기를 돌봐주는 신생아실 등이 시너지를 내면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는 평가다. 덕분에 8개 산모실은 매번 만실이고, 산후조리원 안팎으로 입소문이 퍼지면서 이용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 올해 7월 초까지 이용한 산모 74명 가운데 16명이 관외 이용자로 파악된다. 현재도 대기인원이 64명인데 일부는 양구군 거주자가 아니다.

신지안 공공산후조리원 부원장은 "서울 지역 산후조리원의 경우 담당자 1명당 아기가 10명이 넘어서는 반면 우리의 경우 최대 4명 밖에 되지 않고 24시간 돌보고 있다"며 "다양한 조리원 사정을 알고 있지만 우리 조리원이 갖춘 시설과 프로그램 수준이 매우 높고, 그래서 타지역에서 오시는 산모들이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양구 공공산후조리원 신생아실의 모습/사진=이창명 기자

양구군의 지난해 합계출산율(여성이 가임기간인 15~49세에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출생아 수)은 1.52명으로 도내 18개 지자체 가운데 가장 높다. 전국 평균 0.81명의 2배 가까운 수준이다. 지역 내에선 정부와 지자체, 군이 출산을 늘리기 위해 노력한 결과라고 보고 있다.

양구군 보건소 관계자는 "군 부대도 다자녀 가족들에게 더 쾌적한 주거환경과 조기퇴근, 승진 가산점 등 인센티브를 주고, 지자체는 지역주민이 신뢰할 수 있는 수준의 보육 및 육아시설을 만들면서 높은 출산율로 이어지고 있다"며 "우리 지역의 사례들을 도내 다른 지역들이 벤치마킹 하고 있을 정도로 성공적이라고 평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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