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청와대 개방, 국민의 품에서 역사의 품으로

머니투데이 최연구 (과학문화칼럼니스트·필로 스페이스 고문) | 2022.07.28 02:05
최연구 과학문화칼럼니스트
청와대가 개방된 지 두 달 반이 지났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에 맞춰 개방되면서 구중궁궐로 인식되던 권력의 중심이던 청와대는 국민의 품으로 돌아갔다. 두 달간 다녀간 관람객만 125만명이 넘었다고 하니 청와대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문화재청 청와대국민개방추진단이 지난 6월22일부터 26일까지 관람객 1000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만족도 조사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89.1%가 긍정적으로 평가함으로써 청와대 개방은 일단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다.

청와대 개방은 어느 정도 정치적 목적으로 이뤄졌고 사전 조사연구나 충분한 준비 없이 추진됐다. 때문에 청와대 관람객들에 의한 경내 수목이나 시설물 훼손 우려, 청와대 보존·관리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목소리는 충분히 예견된 것이다. 앞으로 청와대를 어떻게 할지 정해지지는 않았지만 그 활용을 두고 분명한 이견이 존재한다. 문화재로 지정해 원형은 보존하되 활용을 확대하자는 입장과 역사성을 담은 복합문화단지로 만들자는 2가지 상반된 입장이다. 당장 청와대는 개방됐지만 미래활용에서는 매우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충분한 의견수렴과 전문가의 연구가 선행돼야겠지만 반드시 견지해야 할 몇 가지 원칙이 있다.

첫째, 청와대는 문화관광자원이 아니라 국가유산이며 따라서 지속가능성이 중요하다. 소비나 소모의 대상이 아니라 역사성을 가진 유산이라는 분명한 인식이 필요하다. 국가유산은 원형보존이 먼저고 활용은 그다음이다. 한번 훼손되면 되돌릴 수 없기 때문이다. 국민이 향유하면서도 원형은 온전히 보존해야만 지속가능한 국가유산이 될 수 있다. 오늘만 소비하고 내일이 없는 문화재는 문화상품에 불과하다. 최근 문체부 장관은 대통령 업무보고를 통해 청와대를 고급미술관과 상설공연장으로 바꿔 '한국의 베르사유'로 만들겠다는 미래 청사진을 내놓았다. 하지만 미술관, 공연장이 되는 순간 청와대의 역사성은 사라지고 말 것이다. 또한 본보기로 언급한 베르사유궁은 오히려 원형이 보존되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엄격히 관리·보존되는 경우다. 청와대를 개방하는 것은 좋다. 하지만 당대 국민뿐만 아니라 미래 국민에게도 개방돼야 한다. 역사성을 가진 국가유산은 특정 세대만 즐기고 소모해서는 안 된다. 완전성을 유지한 채 다음 세대에게 전승해야 한다. 그러려면 근시안적 활용방안보다 지속가능성을 최우선에 두고 고민해야 한다. 지속가능성의 필요조건은 원형보존과 과학적 관리다. 훼손 없이 원형을 보존·관리하려면 보존·복원술 등 고도의 과학기술 역량을 갖춰야 한다. 과학기술 기반의 지속가능한 문화재 보존-관리-활용체계 구축이 필요한 이유다. 원형을 보존한다는 것은 건축물뿐만 아니라 역사성과 문화적 가치도 훼손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 국가유산은 특정 권력이나 정부의 전유물이 아니며 국가와 국민, 역사에 귀속돼야 한다. 정부부처가 일방적으로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 국민의 뜻이 우선이다. 예의 청와대국민개방추진단 관람객 의견조사를 보더라도 청와대 활용에 대해 '대통령의 삶과 역사가 살아있는 현재 모습 그대로 원형보존'(40.9%) 의견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그다음이 '과거-현재의 역사와 국가유산이 보존된 근대 역사문화공간'(22.4%)이었다. 더 많은 국민이 참여하는 의견조사와 공론화, 빅데이터 분석 등을 통해 국민의 뜻을 묻고 국민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야 한다.

셋째, 산업·경제적 가치보다 역사성과 문화적 가치가 훨씬 근본적이다. 청와대 개방의 경제적 효과가 몇천억 원이라는 등의 보고서에 현혹되거나 정치논리에 매몰되는 것은 위험천만하다. 개방으로 청와대는 국민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을 넘어 이제는 역사의 품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래야 청와대 개방이 비로소 의미 있는 우리 역사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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