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공급망 재편과 직업훈련

머니투데이 우태희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 2022.07.26 02:05
우태희 부회장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원자재 가격 상승 속에서 우리 제조업체들은 심각한 인력난을 겪고 있다. 기업은 현장에서 바로 활용할 수 있는 기술과 기능을 갖춘 인재가 없다고 목소리를 높이는데 청년들은 전례 없는 취업난에 시달린다. 청년들은 각종 자격증에 해외연수, 인턴경력 등 스펙도 훌륭한 인재인데 기업들은 왜 뽑을 사람이 없다고 아우성칠까. 전문 기술인력 수급의 미스매치(Mismatch)가 이처럼 심각해진 것은 산업현장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데 직업훈련은 20년 전 모습에서 탈피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직업훈련법(1967년) 제정 이후 정부는 직업훈련의무제(70년대) 직업능력개발제(90년대) 등 직업훈련제도 전반을 주도해 왔다. 그 과정에서 정부 승인을 받은 직업훈련기관이 배정된 물량 안에서 훈련과정을 개설하면 여기에 등록해 훈련받는 공급자 중심 시스템이 자리잡았다. 정부가 제시한 틀 속에서 훈련기관이 교과과정을 만들고 훈련생을 교육하면 기업은 수동적으로 입사자를 고르는 방식이었다. 직업훈련의 최종 수요자인 기업의 역할은 거의 무시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08년 직업능력개발계좌제가 도입됐다. 쓸 수 있는 비용한도 안에서 원하는 훈련과정을 골라 수강할 수 있게 해 훈련생의 선택권을 확대하고 자기주도 훈련이 가능해지도록 한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정부 심사를 통과하는 훈련과정만 개설되고 직종별 훈련비 단가도 정해져 있어 강의실이나 강사배정 등 거의 모든 과정을 정부가 통제한다는 구조적 문제들이 있어서 내일배움카드제(2011년)가 도입됐고, 최근 국민내일배움카드제(2021년)로 확대됐다.


정부 주도 시스템은 산업현장에 단순 기능인력을 대규모로 공급하는 개발경제 시대에는 큰 역할을 했지만 공급망이 재편되고 산업이 디지털화·다각화하는 지금은 적합하지 않다. 특히 훈련생이 습득한 기술과 기업이 필요로 하는 기술이 일치하지 않아 노동시장의 수급불균형이 초래되는 점은 안타깝다. 훈련과정에 대한 정부개입을 최소화하고 교과내용도 기업의 현장 수요에 맞는 콘텐츠로 개편해 기업과 훈련생이 함께 참여하고 수요자 중심 직업훈련으로 바뀌어야 한다.

지난해 말 우리나라를 방문한 싱가포르 탄스릉 인력부(우리나라 고용노동부에 해당) 장관은 정부조직법상 통상산업부 차관을 겸직한다. 인구가 500만명에 불과한 싱가포르는 기업수요에 따른 인재의 적재적소 배치를 위해 수요부처인 통상산업부가 요청하면 공급부처인 인력부가 이에 상응한 직업훈련을 시키도록 연계 시스템을 갖춘 것이다. 전문기술인력의 미스매치를 최소화하기 위해 우리나라도 검토할 필요가 있는 제도라고 생각한다. 정부가 만능인 시대는 지났다. 정부 주도로는 노동시장의 미스매치를 절대로 해결할 수 없다. 기업의 수요가 항상 우선돼야 할 것이다. 새 정부의 시장경제 우선 원칙에 따라 직업훈련 방식도 규제에서 자율 중심으로 개편되고 기업 현장의 수요가 반영된 프로그램이 많이 나오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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