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최저임금의 정치학

머니투데이 강기택 산업2부장 | 2022.07.18 04:05
최저임금은 시장가격과 무관하게 정치적 의사결정으로 흐르기 쉽다. 최저임금 제도 자체가 정치의 산물이기도 하다. 정치적 명분이 우선이고 경제적 부작용은 뒷전일 때가 많다.

최저임금위원회가 지난달 29일 전원회의 내년도 최저임금을 올해( 9160원)보다 5.0% 오른 9620원(월 209시간 기준 월급환산치 201만580원)으로 정한 뒤 노사 모두 이의제기에 나섰다. 최저임금 심의를 시작한 1987년 이후 재심의는 단 한번도 이뤄진 적이 없으니 상징적 제스처다. 한국경영자총협회, 중소기업중앙회 등 경제단체는 중소기업과 자영업자가 한계상황에 내몰리고 저숙련 노동자의 고용충격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민주노총은 졸속심의로 최저임금이 낮게 매겨졌다고 주장했다.

여느 해처럼 법적 근거 없는 산식도 쟁점이었다. 최임위는 지난해와 같이 경제성장률 전망치(2.7%)에 소비자물가상승률 전망치(4.5%)를 더한 수치에 취업자 증가율 전망치(2.2%)를 빼 최저임금을 구했다. 이는 최저임금법(제4조1항)에서 최저임금 결정 기준으로 근로자 생계비,유사 근로자 임금,노동생산성,소득분배율 등을 고려하도록 한 것과 거리가 있다. 소상공인연합회는 "법에서 정한 결정 기준 중 어느 것에 근거했는지조차 확인하기 힘들다"며"가장 약한 지불주체인 소상공인의 '지불능력'을 반영한 사회적 지표가 없다"고 했다.

제도개선에 대한 요구도 그 어느 때보다 강도가 높았다. 일률적으로 최저임금을 정하기보다 업종별· 지역별로 차등화하자는 의견이 특히 부각됐지만 관철되지는 못했다. 노동자·사용자 대표와 정부 임명 공익 위원이 9명씩인 최저임금위원회의 구성을 달리 해야 한다는 지적도 반복됐지만 공허했다. 노사가 합의하지 못할 경우 정부가 임명한 공익위원들이 캐스팅보트를 행사하는 방식을 바꾸는 것도 당장 실현 가능성이 없다.


앞서 언급한 내용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해마다 되풀이돼 온 것이다. 법적 근거,경제적 논리 등은 사라지고 정치공학이 앞섰던 탓이다. 사람들이 잊고 있지만 문재인정부 못지 않게 박근혜정부도 '최저임금 현실화'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정치적 개입'을 했다.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보다 '+ α'인 최저임금 수준을 추구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박근혜정부가 출범하던 2013년 시간당 4860원의 최저임금은 마지막 해인 2017년 6470원이 됐다. 누적 인상율 33.1%다. 문재인정부는 집권 첫해 최저임금을 16.4% 인상하는 파격을 보이는 등 박근혜정부와 차별화를 위해 더욱 오버페이스했다. 5년간 최저임금 누적 인상률은 41.6%다. 뚜렷한 산출근거도 없었고, 표결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노동계에 '협상 배려분'을 줬다. 정치의 결과였다.

수요와 공급에 대한 고려 없는 최저임금은 노동시장을 왜곡한다. 누군가는 수혜를 보고 누군가는 부담을 진다. 최저임금 적용대상은 주로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에 고용된 저숙련 노동자다. 이들의 최저임금을 가이드라인이 돼 중견기업.대기업의 임금도 연쇄적으로 오르는 경향이 있다. 정규직 노동조합 중심의 민주노총, 한국노총이 최임위 노동자위원으로 참여해 최저임금을 올려 놓을 유인이 있는 셈이다. 즉 저임금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최저임금이 이들 노조의 임금단체협상을 위한 발판이 된다. 노동계가 업종별·지역별 여건을 고려하지 않는 이유기도 하다.

반면 대기업의 임금인상은 중소 협력업체나 소비자에 전가되기 십상이다. 중소기업과 영세자영업자의 파산과 저숙련 노동자의 일자리 감소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 때문에 법에 근거한 산식, 업종별·지역별 차등,최임위 구성과 운영방식 변경 등은 최저임금이 절실한 이들과 그들을 고용한 중소기업·소상공인이 궁지로 내몰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 필요하다. 물론 섣불리 손대다가는 어떤 정부라도 정치적 이해관계에 포위당해 위기를 맞을 수 있는 난제다. 그렇지만 '최저임금의 역설'을 최소화하기 위해 반드시 풀어야 할 '해묵은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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