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을지면옥 철거 논란이 남긴 것

머니투데이 유엄식 기자 | 2022.07.08 05:30
"이렇게 오랫동안 서로 감정 싸움하면서 다툴 일인가요. 허탈합니다"

4년 간 을지면옥 측과 송사를 벌인 시행사 관계자의 말이다. 서울 중구 세운재정비촉진지구 3-2구역에 위치한 냉면가게 을지면옥 건물은 최근 법원 결정에 따라 철거를 진행했다.

을지면옥과 소규모 공구점이 밀집한 이곳은 건물 노후도가 심해 2010년부터 재개발이 추진됐다. 2017년 사업시행인가를 받고, 토지 등 소유주와 시행사 간 보상 협의를 진행했다.

이곳에서 37년간 영업한 을지면옥 점주는 해당 구역에서 대지 지분이 가장 많은(시행면적 약 11% 보유) 지주이기도 했다. 이름난 맛집인 데다 건물이 지하철역 출입구와 맞닿은 요지여서 토지보상비 갈등은 예견됐다. 개발이익을 쫓는 시행사는 한 푼이라도 아끼려 했고, 을지면옥 측은 최대한 많은 보상을 원했다.

당시 법적으로 을지면옥이 다소 불리한 위치였다. 시행사가 이미 사업 추진을 위한 기준 동의율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분쟁에 2018년 말 전임 서울시장이 가세하며 분위기가 급변했다. 을지면옥이 시민이 정한 '생활유산'으로 건물을 함부로 철거하면 안된다며 제동을 걸었다. 이후 관계 기관이 수 차례 중재를 시도했지만 실패했고, 법적 공방이 지속됐다.


을지면옥 건물 보존의 근거였던 생활유산은 2015년 첫 발표된 역사도심기본계획 보고서에서 나온 용어다. 문화재, 근현대 건축문화유산 등과 달리 법적 근거가 없는 개념이다. 하지만 전임 시장의 의지가 투영돼 사실상 법령처럼 강제했다.

이 때문에 일대 노후 건물은 수 년째 방치됐고 시행사와 을지면옥 모두 웃지 못했다. 시행사는 사업 지연에 따른 금융비 지출로 이익이 줄었고, 을지면옥은 시세보다 낮은 수준의 보상비를 받게 된다.

시는 이런 문제점을 고려해 최근 생활유산 개념을 재정립하고, 특히 정비구역 내 위치한 생활유산 보존 의무를 폐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늦었지만 적절한 판단이라고 본다. 다만 이 과정에서 무분별한 개발 위주의 행정도 지양해야 한다. 생활유산 중 여러 전문가들이 사실상 문화재급 가치가 있다고 평가하는 것도 있다. 노후된 도심 재개발과 도시재생의 가치가 조화될 수 있는 합리적 결론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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