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세 살이 될 무렵, 난 다른 친구들과 함께 살기 위해 갔다. 그곳에서 나와 같은 모습을 한 친구들을 처음 봤다. 반가웠다. 하지만 날 경계했다. 같이 지낼 수 없게 되었다.
그 뒤로 무려 11년을 홀로 살았다. 쇠창살이 있는, 친구들과 동떨어진 곳에서. 그리 넓지 않은 공간에서. 전시 공간 뒤쪽이라, 누군가는 여길 '뒷방'이라고 불렀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매일 지냈다. 스트레스가 심했다. 나도 모르게 내 털을, 하루종일 쥐어 뜯어댔다.
어느덧 난 13살, 관순이는 10살이 됐다. 평균 생(生)이 보통 50년이니, 37년은 더 살아가야 한다. 엄마는 버렸고, 11년을 홀로 산 내게, 사람들은 이제 5200km 정도 떨어진, 낯선 나라에 가서 살라 한다. 관순이도 함께 보낸단다. 앞으로 우리 삶은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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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공원 침팬지 관순이와 광복이,'학대 논란' 사파리로 반출━
태어나선 엄마(갑순이)가 돌보지 않았다. 야외 방사장에 사는 다른 침팬지 4마리와는 경계한단 이유로 함께 살지 못했다. 관람객 시선이 닿지 않는 뒤쪽 사육장에서 혼자 11년을 살거나(광복이), 다른 오랑우탄과 살았다(관순이). 그렇게 살았던 두 침팬지에게, 이젠 익숙한 공간, 익숙한 사육사와 떨어져 낯선 나라에 가서 살아가란다.
보내기로 예정된 인도네시아 '따만 사파리'도 문제가 있단 지적이다. 사자·호랑이를 약물에 취하게 해 인간과의 사진 찍기에 동원한 게 폭로됐었다. 코끼리쇼 도중엔 쇠꼬챙이로 학대하기도 했다.
전문가 얘기도 그랬다. 이형주 동물복지연구소 어웨어 대표는 "따만 사파리는 운영 목적 자체가 다르다"며 "코끼리 등에 타고, 사자와 사진 찍고, 그런 걸 하기 위해 운영되는 곳"이라고 했다. 동물을 만지고, 타고, 먹이 주고, 사진 찍고, 그런 체험 동물원이란 거다. 이에 대해 서울대공원은 "따만 사파리는 현재 사육 환경보다 훨씬 더 나으며, 침팬지를 이용한 동물쇼는 현재도 없고 향후도 없을 예정이라고 확인 받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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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무리와 '합사' 어렵다지만…수의사 "침팬지가 합사 가장 쉬워"━
먼저 이유로 든 건, 기존 무리(침팬지 4마리)와 합사가 어렵다는 거였다. 서울대공원 측은 "기존에 내부 사육사는 물론, 외부 전문가 자문을 통해 합사 시도를 했으나 광복이, 관순이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 못 했다"고 했다.
그런데 침팬지는 '무리생활'을 해야 하는 동물이므로, 두 침팬지의 복지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반출을 결정했단 거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침팬지가 합사가 잘 되는 동물이라고 반박했다. 최태규 수의사(곰보금자리프로젝트 대표)는 "침팬지는 동물 중 합사가 잘 되는 동물종 중 하나"라며 "서로를 불합리하게 다치게 하거나 죽일 가능성이 낮다"고 설명했다.
실제 미국 등에서는 실험실에서 살던 침팬지를, 생추어리(동물이 본연의 모습대로 살아가게끔 보호하는 구역)에 모아서 키우는데, 합사가 안 되는 애들은 많지 않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최 수의사는 "(서울대공원에서) 광복이, 관순이 합사가 잘 안 됐다고 하는 건, 합사 시도가 제대로 안 됐거나 의지가 없었던 것"이라고 했다. 예컨대, 합사는 서로 기분 좋은 상황에서 맛있는 걸 먹거나 재밌는 놀이를 하며 연결하는 게 중요하단 얘기다. 그는 "광복이와 관순이를 중성화해서 합사를 시도하면, 성공 확률이 70% 이상은 된다고 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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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팬지 중성화는 안 된다?…"동물원 협회, 번식시켜야 하니 중성화 부정적"━
그러면서 서울대공원 측이 이유로 든 건 AZA(미국동물원수족관협회) 소속 SSP(동물관리 및 보전 프로그램) 코디네이터 의견이다. 서울대공원 측은 "(SSP 코디네이터가) 수컷 침팬지의 정관절제술 및 거세에 대해 반대를 하고 있으며, 암컷에 대해서도 약물을 이용한 일시적 피임법이 사용되고 있어 영구적인 사용 방법은 아니라고 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최 수의사는 "AZA가 아니라 종 보전을 위해 만든 SSP 의견이며, 종 보전 역할을 하는 곳이라 중성화는 대체로 부정적"이라고 했다. 김 대표도 "AZA 지침이 좋은 동물원 교본이라 생각하지만, 그 또한 동물원 협회일 뿐"이라며 "번식으로 동물 자원을 확보해야 하니 중성화를 반대하는 건 당연하다"고 했다.
또 최 수의사는 SSP 코디네이터가 서울대공원에 보냈단 메일 자체에 대해서도, 중성화를 하지 말란 얘기가 아니라며 반박했다. 그는 "(메일 확인 결과) 중성화를 하지 말란 게 아니라, '고환 적출'에 대해서만 절대 안 된다고 했다"며 "수컷 중성화도 고환 적출 뿐 아니라 정관 절제술 등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개나 고양이도 다 중성화해서 키우는데, 21세기에 할 얘긴 아니다"라고 했다.
이형주 어웨어 대표도 "암컷 임플라논(피임 시술)은 다른 종 동물도 주기적으로 하는 걸로 알고 있다"고 했다. 실제 서울대공원 결재 문서를 살펴본 결과, 기존 무리에 있는 침팬지 까미도 2016년과 2020년에 임플라논 시술을 받았고, 2023년 2월에 또 예정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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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종위기라 '종 보전' 필요하단 논리에…"동물원 생존하려 종 보전 내세워"━
이에 최 수의사는 "종 보전이라 하면 번식시켜 원래 서식지에 보내는 건데, 그럴 가능성은 없다"며 "동물 종 보전이 아니라 동물원 보전에 가깝다"고 비판했다. 이어 "멸종위기가 되는 건 침팬지를 잡아가고 서식지를 파괴하기 때문인데, 동물원에서 번식을 안 한다고 멸종위기가 되는 게 아니다"라고 했다.
김보경 대표는 "동물원이 종 보전을 중요 역할로 내세우는 건, 예전 모습으로는 향후 동물원이 생존할 수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동물복지에 대한 시민들 의식 수준이 높아져 동물원에 점점 부정적이기에, 보전 역할을 강조한다는 얘기다.
이형주 대표도 "증식이 곧 보전은 아니며, 사육 상태의 증식이 종 보전에 어떤 기여를 하는지 검토한 뒤, 타당성이 있을 때만 하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했다. 특히 그는 "(광복이, 관순이를 보낸다는) 따만 사파리는 동물원 보전 활동 중 가장 기본적인 교육 기능도 안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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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공원 원장 "토론회 열고, 국민 의견이 '반대'라면 안 보낼 것"━
서울시의회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나왔다. 유정희 서울시의회 의원(더불어민주당, 관악4)은 지난달 21일 제308회 본회의에서 "따만 사파리는 관람객들이 하마 입에 플라스틱을 넣고, 사슴 입에 술을 붓던 곳"이라며 "관순이, 광복이는 여기서 태어나 모든 생활패턴, 기후, 사육사에 적응하며 자랐는데 기후 환경이 전혀 다른 먼 나라로 보내는 게 올바른 건지 모두에게 묻고 싶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서울대공원 측은 기존 계획대로 반출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 시기를 묻자, 김세곤 서울대공원 동물기획과장은 "(반출하더라도) 절차가 생각보다 까다로워 시기가 언제쯤 될지 정확히 말하기 어렵다. 올해는 넘길 것 같다"고 예측했다.
다만 이수연 서울대공원 원장은 4일 머니투데이와의 통화에서 "(반대 목소리가 많아) 토론회를 열어 의견을 수렴할 계획"이라며 "국민 컨센서스(의견)가 반대일 경우 보내지 않겠다"고 여지를 두었다. 시민들과 동물보호단체가 오세훈 서울시장과의 면담도 요청했으나 이뤄지지 않았다.
"얼마 전에도 서울동물원 유인원관에 갔습니다. 사람들이 '정말 침팬지다, 오랑우탄이다'하며 2~3초 서 있더라고요. 이런 상황에서 동물원의 교육적 기능 어쩌고 하는 건 위선이라 생각해요. 체험 동물원에 갈 뻔한 걸 시민들이 지켜줘서, 서울동물원에서 늙어가는 이야기가 훨씬 기억에 남고 교육적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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