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새벽부터 대학 칠판닦는 60대 청소부…'땀냄새'에 휴게실서도 쉬지 못했다

머니투데이 김성진 기자 | 2022.07.06 11:24
6일 오전 6시쯤 연세대 청소노동자 김모씨(66)가 모 건물의 세미나실 칠판을 닦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 깨끗하지 않나'라 묻자 김씨는 "그 쪽 눈에는 깨끗해 보이나, 내 눈에는 쓴 자국들이 보인다"고 했다. 칠판에 묻은 희미한 얼룩도 그날 닦지 않으면 오랜 기간 남는다고 김씨는 설명했다. 청소를 마치고 김씨는 "훨씬 깨끗해지지 않았나"라고 했다./사진=김성진 기자
6일 연세대 청소노동자 김모씨(66)의 하루는 새벽 3시쯤 시작됐다. 청소일을 한 지 어언 8년. 여전히 출근은 적응이 안 된다. 머리 감고, 점심 도시락을 싸느라 분주하다. 아침식사는 사치다. 새벽 5시까지 가야 한다. 김씨는 서울 은평구의 집을 나서 새벽 4시쯤 742번 버스에 몸을 싣는다. 버스엔 고령 여성 20여명씩 먼저 타고 있다. 말 섞어본 적은 없지만 김씨는 이들도 청소노동자라고 직감한다.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앞에서 버스 문이 열리면 이들은 한꺼번에 우르르 내린다.

방학이다. 하지만 계절학기도 있고 언어 수업을 듣는 외국인 학생도 있어서 오전 9시 학생들이 오기 전까지 청소를 끝내야 한다. 김씨는 이날 새벽 5시40분쯤 화장실부터 청소했다. "웨엑." 소변기 냄새차단 트랩을 연 김씨가 구역질했다. 고무장갑 낀 손에 수세미를 들고 소변기 안을 닦는 중이었다. 김씨는 "구역질 나도 할 수밖에 없다"며 "매일 이렇게 하지 않으면 냄새가 난다"고 했다.
6일 오전 6시쯤 연세대 청소노동자 김모씨(66)가 남자화장실 소변기를 청소하고 있다. 고무장갑 낀 손에 수세미를 들고 하나씩 안쪽을 닦았다. 깨끗해진 화장실을 김씨는 자랑스러워했다. 청소를 마치고 김씨는 "어때요 냄새 하나도 안나지 않아요"라고 물었다./사진=김성진 기자
남자·여자 화장실 청소에 걸린 시간은 20분가량. 그러나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한 층에 세미나실, 교수 연구실 등 26개 방이 있는데 김씨 혼자 청소한다. 쓰레기통을 비우고 창틀과 책장을 걸레질한다. 아직 학생도, 교수도 오지 않은 시간. 에어컨을 틀 수는 없었다. 새벽이라 기온은 높지 않지만 걸레질하는 김씨는 연신 "아이고 더워"라며 소매로 이마의 땀을 닦아냈다. 방을 옮길수록 김씨 근무복의 푸른빛이 땀에 젖어 짙어졌다.

26개 방을 다 청소하면 복도를 닦아야 한다. 기름걸레로, 물걸레로 한번씩 닦는다. '하루쯤 안 해도 괜찮지 않으냐' 묻자 김씨는 "바닥이 타일이지 않나"라며 "하루라도 물걸레질을 안 하면 자국이 생긴다"라고 했다. 이어 "우리 눈에는 (자국이) 보인다"라며 "누가 뭐라 그래서 (매일 물걸레질) 하는 게 아니다"라고 했다.
6일 오전 6시쯤 연세대 청소노동자 김모씨(66)가 모 건물의 복도를 청소하고 있다. 김씨가 맡은 층은 다른 층들보다 복도가 넓은 편이라고 한다. 기름걸레로 한번 닦고 물걸레로 한번 더 닦아야 한다. 계절학기가 끝나고 외국인 학생들도 돌아가면 복도 타일 표면을 가는 등 대청소를 한다고 한다./사진=김성진 기자
걸레질을 마쳐도 뒷정리가 남았다. 방마다 나온 쓰레기는 1층에 갖다 버리고 올라오는 길에 화장실 휴지를 채워야 한다. 이날 나온 쓰레기만 1m 높이 플라스틱 통이 꽉 찼다. 김씨는 "방학이라 적은 수준"이라며 "학기 중에는 배달음식, 테이크아웃 음료 컵으로 쓰레기 포화상태"라 했다.

청소는 오전 7시15분쯤 끝났다. 시작한 지 2시간 만이다. 학기 중에는 보통 오전 8시30분쯤 끝난다고 한다. 학생들이 밤 늦게까지 건물을 써서 쓰레기양도 많고, 먼지도 더 쌓이기 때문이다. 김씨는 "그러니 쉴 틈이 없다"고 했다.

쉴 틈 없는 청소의 결과는 몸에 나타났다. 김씨는 함께 같은 건물을 청소하는 동료들을 '종합병동'이라 불렀다. 허리, 무릎 안 아픈 데가 없다. 한 동료는 전날(5일) 손가락 관절에 통증을 느껴 정형외과 주사를 맞았다. 김씨는 "걸레를 하도 쥐어짜야 하니 그런 것"이라며 "다들 자기 몸 아끼지 않고 (청소)한다"고 했다.
연세대 청소노동자 김모씨(66)는 6일 물티슈를 가리키며 "샤워실이 없어서 땀을 흘려도 물티슈로 닦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물티슈 닦고도 도저히 힘들면 화장실에 올라가 수건에 물을 적셔 몸을 닦는다. 그래도 땀을 다 닦을 순 없어서 청소노동자들은 휴게실에서 서로에게 가까이 가지 않는다고 한다. 김씨는 이를 '거리두기'라고 했다./사진=김성진 기자.
바깥 계단 등을 청소하고 걸레를 말리면 오전 9시쯤부터 비로소 쉴 수 있다. 휴게실은 건물 1층 출입구 밖으로 나와서 가야한다. 무작정 쉬진 못한다. 막힌 변기가 없는지, 꽉 찬 쓰레기통은 없는지 수시로 올라가 확인한다.

구슬땀 흘렸지만 자연 바람에 말리는 수밖에 없다. 청소노동자들을 위한 샤워실이 따로 없기 때문이다. 캠퍼스 한가운데 헬스장 샤워실이 있지만 주로 학생들이 쓰는 데다 캠퍼스 바깥쪽 건물에 근무하는 청소노동자들은 사용하기 현실적으로 어렵다.

연세대 모 건물의 청소노동자 휴게실은 1층 출입문 바깥에 있었다. 청소노동자 5명이 6층 건물에 한개층씩 나눠서 청소한다. 남는 한 개층은 조금씩 영역을 나눴다. 휴게실은 청소노동자들의 아지트다. 냉장고, 정수기, 세탁기가 있다. 이중 학교 측이나 청소 용역업체에서 제공한 것은 없다. 모두 청소노동자들이 조금씩 돈을 모아서 산 것들이다./사진=김성진 기자

청소노동자들은 물티슈로 목 주변을 닦거나 도저히 힘들면 화장실에 가 수건에 물을 적셔 몸을 닦는다. 그래도 온몸에 난 땀을 다 닦을 수는 없다. 김씨는 "내 몸에서 땀 냄새, 발 냄새 날 것을 알지 않나"라며 "그렇다 보니 휴게실에서 각자 알아서 서로에게 가까이 가지 않는다"고 했다.

이들은 지난 3월부터 4개월째 하청인 청소 용역업체를 상대로 △교내 샤워실 확충 △인력 충원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집회를 이어오고 있다. 사실상 집회는 원청인 연세대를 향하고 있다. 이날 캠퍼스 곳곳에는 '총장님이 주인이다, 샤워실 문제 해결하라'며 학교에 책임을 묻는 현수막들이 보였다.

이들 집회는 연세대 학생 3명이 민·형사 소송을 제기하며 널리 알려졌다. 학생들은 청소노동자들 집회가 수업을 방해했다며 수업료와 정신적 손해배상, 정신과 치료비 등을 더해 640여만원을 청구했다. 업무방해죄로 형사 고소도 했다. 집회 참석자들은 소송 제기 후 마이크 앰프 볼륨을 낮춰서 집회하고 있다.

김씨는 "솔직히 학생들을 미워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그는 "먼저 인사해주는 학생들을 보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며 "학생들 미워할 일은 없다.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지 않는 학교가 서러울 뿐"이라고 했다.

연세대 관계자는 "청소노동자들 요구사항에 관해 하청업체(청소 용역업체)와 긴밀하게 논의 중"이라면서도 "민감한 사항이므로 자세한 사안에 관해서는 말할 수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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