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우리만 이렇게 행복해도 될까?"
행복의 정점에서 시작된 '물음표'는 기부 이야기로 흘러갔다. "우리 그럼 기부도 많이 하자", "근데 기부금은 오롯이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갈까", "사업비론 얼마나 제하고 얼마나 가는 걸까." 기존 기부 단체를 비판하자는 게 아녔다. 이런 분들이라도 없으면 돕는 일 자체가 사라질 걸 알기에. 다만 기부하려는 이들의 의문 또한 응당히 가질 수 있는 거라 여겼다.
"그럼 우리가 시작해볼까?" 그날 별이 너무 많아서인지, 두 사람은 그런 결심을 했다.
그 계획을 쉽게 설명하자면 이랬다.
1. '공정한 기업'을 만들어서 기업 이윤 100%를 기부한다(사업 운영비 제외하고).
2. 그 기업이 안정화 되면 '기부하는 플랫폼'을 만든다.
3. 기부 플랫폼 '운영 비용(홍보, 운영, 진행비)'도 기업 이윤에서 전액 부담한다. 그럼 운영비를 제외하지 않고, 기부한 금액 100% 그대로 전할 수 있다.
우연히 '리플래닛'의 존재를 알게 됐다. 기업은 이윤을 극대화하느라 저마다 안달인데, 그걸 100% 기부한다고? 절반은 의심했고 절반은 궁금했다. 호기심이 의심을 이겼다. 어쨌거나 이야기를 너무 듣고 싶었다. 언뜻 보기엔 비현실적이고 이상하지만, 제대로 한다면 따뜻하고 필요한 기업이 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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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적자'이지만요━
기자 : 기업 이윤 100%를 기부하는 기업이라니요. 이미 시작하신 거지요?
대표 : 네, 아내와 둘이서만 초기 자본을 투입해 올해 1~2월 정도부터 시작했어요.
기자 : 반응은 좀 어떤가요(사실 이 부분이 가장 걱정됐다).
대표 : 당연히 첫 시작이니 아직은 '적자'인데요. 홍보를 많이 하는 것도 아니고요. 그래도 조금씩 괜찮아지고 있어요. 재구매율도 높고, 반품률도 낮고요. 모자 같은 건 반품률이 높다는데, 저희는 5~10% 정도로 낮아요. 저희가 원단 자체를 비싼 걸 쓰고, 봉제 가격도 비싸서 다른 옷보다 좀 비싼데요. 그런데도 회사 티셔츠, 모자 등 구매해주시고요.
대표 : 제가 강매하고 있습니다(웃음). 그래도 될 것 같아서요.
기자 : 그쵸. 그럼 적자는 어떻게 메우고 계신 걸까요? 후원을 받고 계신 것도 아닌데요.
대표 : 맞아요, 후원은 받지 않아요. 공정한 사업을 통해 이익을 내고, 그걸 100% 사회에 환원한다는 취지니까요. 대신 수익처가 따로 있어요. 주변에 의류업 하시는 분들에게 물어보니, 안정화 되는 데에 2년은 잡아야 한다고요.
기자 : 그럼 수익이 나기 시작하면, 어떤 방식으로 기부하시는 걸까요?
대표 : 전년도 수익 금액으로 다음연도에 기부하는 거지요. 예컨대, 올해 수익이 1억 원이 나면, 다음 해 그걸로 사회 환원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거고요. 회계사분들께 자문했는데, 그게 회계 처리상 가장 투명하다고 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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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벌써 네 차례 '섬세한 기부'… 옷 한 벌 고르려 400번 클릭한 아이━
대표 : 적자이지만 감수하고 할 수 있는 건 하자, 생각했어요. 그래야 고객들에게 어떤 회사인지 알리고, 믿고 구매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한 달에 1~2개, 두 달에 1개, 이렇게 찾아서 하고 있어요. 올해 네 차례 기부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5차 프로젝트는 준비 중이고요.
기자 : 어떤 기부 프로젝트를 하신 걸까요?
대표 : 첫 번째는 OO시에 있는 조손가정, 장애인 부모를 둔 청소년들에게 의류를 선물했어요(아이들이 혹시 상처받을 수 있다고, 지역은 밝히지 말아 달라고 했다). 지자체 주무관에게 프로젝트 취지를 설명했더니, "물품 주시면 전달하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본인이 좋아하는 걸 선택했으면 싶더라고요. 좀 번거롭더라도요. 그래서 홈페이지에서 갖고 싶은 옷 하나를 고르게 하고 모자는 모두에게 선물했지요.
대표 : 마음이 짠하더라고요. 아이들이 옷을 고르는데요. 사이트에서 클릭한 정보를 볼 수 있거든요. 어떤 아이는 옷 하나를 고르는데, 400번을 넘게 클릭한 거예요. 종류도 많지 않았는데요. 상의며 하의며 하나씩 다 고르게 할 걸, 그런 생각이 들 만큼 미안하더라고요.
기자 : 그 하나를 잘 사고 싶어서 얼마나 많이 고민한 걸까요.
대표 : 다른 아이는 맞는 옷 치수가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 얘길 듣고 집에 갔는데 계속 마음이 안 좋더라고요. 다른 친구들은 받았는데, 자기만 못 받으면 속상하잖아요. 다음날 공장에 전화했더니 원단 남는 게 다행히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선물해 줄 수 있었지요.
그러니 금전적으론 이득이 안 되지만 심적으론 위로가 많이 된단다. 리플래닛의 선물을 받은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 "아무도 저희가 하는 걸 지켜봐주지 않았거든요. 몽상가란 말까지 들었고요. 그런데 이렇게 응원해주고 지원해주니 힘이 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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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데… 왜 하냐고 물으신다면요━
기자 : 기부하는 분야도 참 다양하네요. 어디 기부할지 정하는 것도, 쉽지 않으실 것 같아요.
대표 : 계속 찾아봐요. 어떤 활동을 했는지, 상업적인지 아닌지, 그런 게 번거롭고 고민이 많지요. 생각보다 재밌어요. 주변에서 많이 도와준 덕분에 가능했고요.
대표 : 맞아요. 저희가 공정하게 프로젝트를 진행하는지 지켜봐 줄 네 분을 찾았지요. 깐깐하고, 공정함에 있어선 타협을 안 하는 분들이라고 보시면 돼요. 가수 옥상달빛의 김윤주 님, 배우 박용우 님과 한예리 님, 발레리나 김주원 님이 도와주고 계세요(이들은 보수도 받지 않는단다). 두 달에 한 번씩은 뵙고 있고, 프로젝트 있을 때마다 얘기하고 우려 사항은 지적해주시고요. 다들 바쁘신데 너무 감사하죠.
좋은 일은 돈이 안 되기 쉽고, 그 과정 역시 험난할 걸 잘 알기에, 이야기를 나누는 1시간 40분 동안 엄 대표에게 참 많이도 물어보았다. 기업이 이윤만 내는 것도 힘든데, 그걸 다 기부하고 기부할 곳까지 곰곰이 찾느라 더 힘든 사람. 걱정도 의심도 많아 현금은 무조건 제외하고, 필요한 물품을 사서 직접 전달한다는 사람.
기자 : 도대체 왜, 이 힘든 걸 하시는 걸까요. 나만 잘 먹고, 잘 살아도 상관없는 세상인데요.
대표 : 경쟁이 치열하고 매몰찬 사회잖아요. 조금씩 함께해주시고, 조금만 마음을 따뜻하게 가지면, 좀 따뜻한 사회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세상을 바꿀 순 없겠지만,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좀 더 행복하지 않을까, 그러려고 시작했어요.
그의 마지막 말이 창밖에 쏟아지던 빗소리처럼 청량하고 뭉클했다. 나홀로 챙기느라 눅눅하고 무거운 사회에 던지는, 시원한 파장 같은 물음 같아서.
"그러니, 이런 기업도 하나쯤은 있으면 좋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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