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보이스피싱 몰랐다" 항변…그러나 유무죄는 갈렸다

머니투데이 박수현 기자 | 2022.07.01 06:43
/삽화=임종철 디자인기자
최근 보이스피싱 현금수거책이 법원으로부터 무죄 선고를 받았다. 고의를 가지고 범행에 가담했다는 객관적인 증거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반면 유사한 범행을 저질러도 가담 경위와 기간, 피해 규모에 따라 유무죄와 형량이 천차만별로 나뉜다.

1일 법원에 따르면 수원지법 형사3단독 박희정 판사는 지난달 22일 사기와 사기방조 혐의로 기소된 회사원 A씨(30)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A씨는 2020년 12월22일 경기 용인시 기흥구에 있는 식당에서 저축은행 직원을 사칭한 보이스피싱 조직원에게 속은 피해자 B씨로부터 1300만원을 편취한 혐의를 받았다. 이튿날 서울 성동구의 한 아파트에서 현금 3000만원을 편취하려다 경찰에 자수해 미수에 그친 혐의도 받았다.

재판부는 "피고인과 성명불상자의 대화를 보면 보이스피싱 범행에 가담하는 것임을 암시하는 내용은 포함돼 있지 않다"며 "피고인이 보이스피싱 범행을 공모했다거나 피해자들로부터 받은 돈이 보이스피싱 피해금임을 알고 있었음을 뒷받침할 만한 객관적인 증거가 없다"고 했다.


보이스피싱 현금수거책 대부분이 "몰랐다" 주장해도 '유죄'


보이스피싱 조직은 구인구직 사이트 등에서 주로 부동산, 무역회사, 대부업체, 법률사무소 등으로 위장하고 구직자를 유인한다. 구직자를 속이기 위해 전혀 다른 공고를 올려두고 현금 수거 업무를 시키기도 하는 탓에 재판에 넘겨진 피고인들은 "보이스피싱 범죄에 가담한지 몰랐다"고 항변하는 경우가 많다.

법원이 이같은 주장을 받아들이는 경우는 많지 않다. 인천지법은 지난달 19일 사기 혐의로 기소된 B씨(20)에게 징역 1년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B씨는 지난해 8월 3일부터 5일까지 보이스피싱 현금수거책으로 활동하며 피해자 3명에게 5230만원을 편취한 혐의로 기소됐다.


B씨도 보이스피싱 범행임을 몰랐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범행 당시 만 18세 미성년자고 사회 경험이 없었지만 여러 사정을 종합하면 범행을 인지했을 것"이라며 "확정적 고의를 가지고 가담하진 않았을 것으로 보이지만 보이스피싱 범죄는 간접적으로 가담한 자라도 엄하게 처벌할 필요성이 있다"고 했다.


범행에 대한 '미필적 고의'조차 없었다면…드물게 무죄 나오기도


보이스피싱 수거책으로 활동했지만 세상 물정에 어둡다는 이유로 무죄가 선고된 사례도 있었다. 서울동부지법은 지난 19일 사기 등 혐의로 기소된 북한이탈주민 C씨(20)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C씨는 지난해 8월 보이스피싱 조직의 현금수거책으로 일하면서 피해자 3명에게 받은 현금 5000만원을 윗선에 전달했지만, 재판부는 범죄의 고의가 증명되지 않았다고 봤다.

대법원에서 무죄를 확정받은 사례도 있었다. 대법원은 지난해 6월 사기방조 등 혐의로 기소된 40대 여성 D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D씨가 수사기관에서부터 법원에서까지 수거책 활동을 단순 채권 추심 업무로 알았다고 일관되게 진술했고, 피해자들에게 돈을 수거하는 과정에서 조직원과 주고받은 메시지에서도 보이스피싱을 암시하는 내용을 찾아볼 수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범죄임을 의심하기 어려운 상황이거나 특수한 사정이 있다면 무죄가 선고되기도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서지원 변호사(법률사무소 나란)은 "보이스피싱임을 몰랐더라도 특정 행위가 이상하다고 인식했거나 적어도 적법한 행동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면 미필적 고의가 있었다는 취지로 처벌이 이뤄진다"며 "무죄를 받은 사례는 범행의 고의 자체가 없었다는 것이 소명됐을 것"이라고 했다.

형사처벌 대상이 아니더라도 민사적으로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민 변호사(법무법인 창과방패)는 "수거책이 무혐의나 무죄를 받는다면 일반적으로 피해자가 피해를 회복할 방법이 없다"면서도 "형사처벌 대상이 아니라고 해서 민사적으로 책임이 아예 없다고 볼 수는 없다. 피해자가 민사소송을 걸면 경우에 따라 제한된 범위 내에서 약간의 책임이 인정될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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