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달러=158루블→52루블'…제재에도 러 환율 7년만에 최강, 왜?

머니투데이 송지유 기자 | 2022.06.24 15:40

전 세계 통화 가치 하락으로 아우성인데,
국가부도 위기 러, 루블화 강세 아이러니…
러 정부는 수출 경쟁력 약화될까 고민중

세계 주요국들의 화폐 가치가 추락해 고민인 가운데 국제사회 제재를 받고 있는 러시아는 오히려 루블화 가치가 치솟고 있다./ⓒAFP=뉴스1
서방국들의 전방위 경제제재로 국가부도 위기에 처해 있는 러시아의 화폐 루블화 가치가 치솟고 있다. 세계 주요국들이 달러 대비 자국 통화 가치 하락으로 고민에 빠진 반면 러시아는 루블화 강세로 오히려 수출 경쟁력이 저하될 것을 우려할 정도여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23일(이하 현지시간) CNBC·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지난 22일 외환시장에서 미국 달러 대비 러시아 루블화 가치는 장중 52.3루블로 지난 2015년 5월 이후 7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날은 53.4루블로 통화 가치가 다소 떨어졌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달러당 루블의 가치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올해 2월 24일) 직후 급락했었다. 서방 국가들이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스위프트)에서 러시아를 퇴출하는 등 전례 없는 제재에 나서면서 지난 3월 7일엔 달러당 143루블까지 치솟았다. 장중엔 1달러당 158루블을 웃돌기도 했다. 다급해진 러시아 중앙은행은 9.5%였던 기준금리를 20%로 올리는 초강수를 두는 등 루블화 방어에 나서야 했다.

하지만 대러 제재 효과에 의구심이 제기되면서 3월말 달러당 루블화 환율은 100루블 아래로 떨어지며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지난 4~5월에는 루블화 가치가 본격적으로 회복되며 달러당 60~70루블을 기록했다. 6월 들어선 루블 가치가 달러당 50루블대 초반으로 뛰었다.

러시아 정부도 예상치 못했던 루블화 강세에 수출 경쟁력이 낮아질 것을 우려할 정도다. 이는 달러 대비 통화 가치가 계속 추락하는 한국은 물론 세계 주요국들의 고민과는 완전히 상반된 것이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우크라이나 전쟁 직후 20%까지 올렸던 기준금리를 4차례에 걸쳐 다시 9.5%로 인하했다.


에너지가 러시아 살렸다…막대한 흑자 기록중


중국 유조선 양메이후호가 13일(현지 시각) 러시아 연해주 나홋카 인근의 코즈미노 석유 터미널에 정박해 있다. / ⓒ 로이터=뉴스1
루블화 강세가 이어지는 배경에는 국제 에너지 가격 급등이 있다. 국제유가 벤치마크인 브렌트유는 최근 1년 새 60% 올랐다. 러시아가 국제 시세 대비 우랄유를 저렴하게 내놔도 막대한 수익을 올리는 구조다.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을 줄이려는 서방국과 달리 세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중국과 인도가 경쟁적으로 러시아산 원유를 사들이고 있다. 핀란드에너지청정공기연구센터(CREA)에 따르면 러시아는 개전 후 100일 간 화석연료 수출로 930억유로(127조원)를 벌어들였다.

러시아 국영 천연가스기업 가스프롬의 알렉세이 밀러 회장은 지난주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경제 회의 참석해 "유럽이 러시아 천연가스 수입을 크게 줄였지만 가격이 올라 오히려 수익이 늘었다"며 "우리는 유럽에 아무런 불만이 없다"고 말했다.


미 외교정책연구소의 맥스 헤스 연구원도 "러시아 루블화 가치가 급등한 것은 에너지 수출을 통해 기록적인 경상수지 흑자를 내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러시아 중앙은행에 따르면 올해 1~5월 러시아 경상수지 흑자는 1100억달러(약 143조원)를 웃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5배 이상 많은 금액이다.

러시아 정부의 엄격한 자본 통제로 외화 사용이 급감한 것도 환율을 끌어내린 요인이 됐다. 투자자문기업인 메들리 어드바이저스의 닉 스타드마일러 국장은 "대러 제재가 나오자 마자 러시아 정부는 상당히 엄격한 자본 통제에 나섰다"며 "그 결과 자본 유출은 적은 반면 에너지 수출로 많은 돈이 유입되며 루블화 가치가 치솟았다"고 설명했다.

러시아 모스크바의 한 환전소/ⓒAFP=뉴스1


루블화 강세는 거짓현상(?)…"신뢰 불가" 지적도


맥도날드 등 글로벌 기업 수천곳이 러시아에서 사업 철수를 결정했다. /ⓒ 로이터=뉴스1
하지만 최근 루블화 강세는 러시아 경제의 펀더멘털을 반영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수천개 글로벌 기업들이 러시아를 떠났으며 이로 인해 수많은 러시아인들이 실업자로 전락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올해 러시아의 실업률은 7%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CNBC는 루블화 강세 현상이 일종의 '포템킨 환율'일 수 있다고 진단했다. 포템킨은 1700년대 예카테리나 2세에게 번영의 환상을 심어주기 위해 건설된 가짜마을 이름으로, 거짓 경제현상에 주로 붙이는 용어다. 최근 루블화 가치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보이기 위한 환상에 불과하다는 해석이다.

미국 싱크탱크 외교정책연구소(FPRI)의 막시밀리안 헤스 선임연구원은 "더 이상 루블화는 러시아 경제의 건전성을 나타내는 지표로 보기 힘들다"며 "당국의 개입으로 루블 가치가 고공행진하고 있지만 러시아 국민들 삶의 질은 오히려 떨어지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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