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스포츠로 테니스의 유행은 여타 종목과 비교했을 때 이례적이다. 골프의 박세리, 야구의 박찬호, 축구의 박지성, 피겨스케이팅의 김연아 등 'OOO 키즈'의 후광 없이 독자적으로 현재의 위치에 올라섰다. 수요자인 MZ세대가 직접 '픽'을 해서 '힙'의 단계까지 올라간 스포츠라고 할 수 있겠다.
상당수의 MZ세대 직장인들은 점심시간에, 퇴근시간 이후에, 30분~1시간씩 짬을 낸다. 그리고 실내 테니스장에서 라켓을 휘두른다. 당신은 그렇지 않다고? 한번 찾아보라. '퇴근 후 부어라 마셔라' 대신 자기계발과 몸 관리 차원에서 '테니스'를 택한 20대, 30대들은 분명 우리 주변에 존재한다.
그렇다면 왜 하필 테니스일까. '찐터뷰'는 지난달 말부터 복수의 '테린이'들과 테니스 업계 관계자들을 만나 그 답을 들었다. 요약하면 △나를 과시할 수 있으면서 가족과 연인이 즐길 수 있는 스포츠 △운동효율이 좋으면서 특유의 쾌감이 있는 스포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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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들어왔다"는 테니스 업계━
- 테니스 업계 분위기가 어떤가.
▶"우리끼리는 반 농담으로 '물이 들어왔다'는 말들을 주고 받는다."
- 어느 정도로 체감하고 있나.
▶"갑자기 테니스 인구가 유입되면서 실내 테니스 레슨장은 코치가 부족할 정도다. 코치들의 몸값이 천정부지 치솟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라켓과 같은 장비 역시 수요 증가 때문에 없어서 못 구하는 상황이다. 안 그래도 부족했던 실외 테니스장은 예약 자체가 어려워졌다."
- 테니스 열풍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비대면 개인 스포츠'라는 점이 각광 받으며 테니스가 주목받은 거 같다. 코로나19 발발 이후 전국에서 실내 테니스장이 두 배 이상 늘어난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인스타그램 등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주로하는 2030세대들의 주목을 받았기 때문이다. 테니스 옷이 예쁘지 않나. 자기과시의 성향이 강한 2030세대들의 입맛에 맞았던 것으로 보인다."
- 테니스 열풍을 '테린이'가 주도하는 상황인가.
▶"그렇다. 테린이들이 참가하는 테니스 대회도 굉장히 많이 생겼다. 거의 매달 대회가 열린다. 각 단체마다 '테린이 대회' 개최 움직임이 있을 정도다. '테린이' 용어 자체로 5060세대 등 어른들의 스포츠였던 테니스가 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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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이 예쁜 테니스, MZ세대 눈에 띄다━
경기 하남의 실내 테니스장인 위아테니스의 이승택 대표는 "코로나19가 유행한 뒤 사람들이 답답해지지 않았나. MZ세대들이 여행도 못가는 상황 속에서 운동 할 거리들을 찾다보니까 테니스를 접하게 됐다"며 "헬스장은 좀 지루할 거 같은 사람들에게 뭔가 배울 수 있고, 꾸준한 루틴처럼 운동을 할 수 있는 스포츠로 테니스가 떠오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상대적으로 돈을 덜 쓰며 배울 수 있는 운동이기도 하다. 레슨 초기에는 라켓을 실내 테니스장에서 빌릴 수 있다. 구매한다고 해도 10만~30만원 정도 쓰면 된다. 신발 역시 10만원 대에 사는 게 가능하다. 레슨비는 한 달에 20만~30만원 정도한다. 실외 테니스장을 빌리는 것도 1인당 수만원 수준. 반면 골프의 경우 골프채 세트에만 수백만원을 써야 한다. 필드에 한 번 나가면 수십만원, 많게는 백만원 단위로 돈이 든다.
확실한 대세가 된 것은 분명 SNS의 영향력이다. 몸매 라인을 살려주는 테니스 옷은 그 자체가 나 자신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매개체였고, 내 노력의 산물인 예쁜 몸을 과시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 그렇게 멋진 옷을 입고, 테니스 레슨을 받으며, 땀을 흘린 모습을 MZ세대 '테린이'들이 경쟁적으로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그렇게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쿨'하고 '힙'한 스포츠가 되기 시작했다.
잘 모르는 사람들 보다 '내 사람'과의 깊은 관계를 중시하는 사람들의 입맛에도 맞았다. 가족과 연인끼리 즐길 수 있는 스포츠라는 것이다. 경기 고양의 실내테니스장인 바른테니스의 황성민 대표는 "남자와 여자가 같이 못하는 운동이 많은데, 테니스는 같이 하는 게 가능하다. 1대1도 단식도 가능하고, 2:2 복식조도 가능한 게 테니스"라며 "부부나 커플들의 문의가 많다. 레슨을 받는 '테린이' 중에는 노부부 커플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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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켓으로 공 맞출 때, 스트레스가 날아간다"━
"테니스를 친 지 이제 세 달쯤 됐다. 일주일에 한 번, 30분 정도 레슨을 받는다. 한번 쳐보니 너무 재밌었다. 라켓을 휘둘러 공을 맞췄을 때 '펑' 소리가 나는데, 그 소리와 느낌이 굉장히 상쾌하더라. 그게 스트레스를 날려준다. 테니스는 공도 크고 라켓도 크지 않나. 막 휘둘러도 일단 공을 맞추긴 한다는 점이 크다. 배울수록 어려워질 거 같은데, 일단 시작할 때는 쉽고 재밌다는 느낌이 든다."(회사원 백수정씨, 여, 37세)
"레슨을 시작한 지 두 달 정도 됐다. 주 2회 점심시간에 레슨을 받고 있다. 활동량, 움직임이 많은 게 테니스 장점인 것 같다. 실내외에서 모두 즐길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테니스화 정도만 구입하면 초기에 돈을 많이 들이지 않고 가볍게 시작할 수 있어서 2030세대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 같다."(회사원 정혜미씨, 여, 39세)
접근성이 좋고, 운동이 많이 되며, 성취감과 스트레스 해소까지 느낄 수 있는 스포츠인 셈이다. 테니스 심판 자격증이 있는 이승택 대표는 "운동이 많이 되는 스포츠다. 일단 해보면 재미가 있다"라며 "한 테린이 회원은 레슨을 하루하고 나서 지인들을 다음날 다 등록시키더라. 그만큼 너무 재밌다고 하더라. 나도 신기할 정도"라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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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색 코트' 성지순례에 '테린이 대회'까지━
윌슨의 김인호 차장은 "최근 2~3년 동안 MZ세대 위주로 테니스 수요가 매년 20~30% 늘어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식스코리아의 장민호 부장은 "그동안 테니스 의류를 적극적으로 판매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의류 쪽 상품도 검토하고 있다. 런닝 다음으로 테니스가 큰 시장이 됐다고 본다"고 밝혔다.
'성지순례' 장소도 생기는 중이다. MZ세대들의 수요에 '찍으면 화보가 되는' 테니스 코트들이 만들어진다. '보라색 코트'로 유명한 경기도 하남의 TS스포츠 테니스클럽은 주말 예약이 단 몇 분 안에 마감될 정도로 인기가 높다. 이곳의 홍음파 코치는 "주말 예약은 항상 꽉 차있다. 가격이 다른 코트 대비 조금 더 비쌈에도 테린이들이 어쨌든 한 번은 와보는 곳이 된 거 같다"고 말했다.
테니스 업계에서 최근들어 '테린이 대회'를 앞다퉈 개최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테린이들만 참가할 수 있는 대회를 연다면, 야외 코트에서 진검승부를 펼쳐 보고픈 MZ세대의 욕망을 어느 정도 소화할 수 있다. '승부'가 걸린 것이기에 흥행 요소가 될 여지도 있다. 실제 구력 1년 미만의 사람들도 어설프게나마 '마음은 로저 페더러'의 자세로 '테린이 대회'에 참가하고 있다. 황성민 대표는 "테린이 회원들이 시합 전날 원포인트 레슨까지 받아가며 자신의 실력을 점검하더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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