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을 가난에서 구하라"...'한국의 케인스' 조순 전 부총리 타계

머니투데이 세종=민동훈 기자 | 2022.06.23 10:59
(서울=뉴스1) = 조순 전 경제부총리가 23일 별세했다. 향년 94세. 서울아산병원 등에 따르면 고인은 노환으로 최근 서울아산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아오던 중 이날 새벽 별세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0호실이며 발인은 25일 오전, 장지는 강릉 선영이다. 사진은 지난 2012년 6월 19일 동반성장연구소 창립식에 참석한 모습. (뉴스1 DB) 2022.6.23/뉴스1
한국 경제학계의 대부이자 관료, 정치인으로 일세를 풍미했던 조순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가 23일 새벽 3시 38분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4세.

1928년생 강원도 강릉 구정면 학신마을에서 태어난 조 전 경제부총리는 서울대 상대 전문부에서 경제학을 처음 접했다. 한국전쟁 발발 이듬해 입대한 그는 6년 넘게 군 생활을 했다. 제대 후 윤군사관학교에서 잠시 영어를 강의했다. 군에서 만난 미군들에게 깊은 인상을 받았던 그는 서른이 넘은 나이에 홀연 단신으로 도미한다. 훗날 '한국의 케인스'라 불린 조 전 부총리가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경제학 이론과 철학을 제대로 배운 시기다. 케인스 이론은 경제를 시장에만 맡기기 보단 필요할 경우 정부가 재정정책 등 개입에 나서야 한다는 것을 골자로 한다.

미국 북동부 보든 칼리지 학부과정을 3년 만에 마친 그는 조교를 하며 생활비를 벌수 있었던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캠퍼스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케인스와 같은 경제학자가 돼 조국의 수천년 가난을 해소해 보겠다는 일념으로 힘든 유학시절을 버텼다. 당시 조 전 부총리의 논문 제목은 ''후진국의 외자조달방안'이었다. 뉴햄프셔 주립대학에서 조교수 생활을 하다 1968년 귀국해 모교인 서울대 상과대학에서 교수로 20년 넘게 재직하며 한국에 '케인스' 이론을 소개했다.

조 전 부총리의 수제자로 꼽히던 정운찬 전 국무총리는 저서 '나의 스승, 나의 인생'에서 "선생의 케인스 이론 강의는 많은 학생에게 실천적 경제학의 세계에 눈을 뜨게 해줬다"고 했다. 조 전 부총리의 명저 '경제학원론'은 서울대 경제학과 학생들만이 아니라 모든 모든 대학생 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경제학원론 교과서로 통한다.

교수 시절 그는 제자들과 경제학 고전을 읽고 토론하던 모임인 '고전연구회'를 꾸렸다. 이때 함께했던 제자들은 한국 경제학을 이끄는 커다른 줄기가 된 '조순학파'를 이뤘다. 정운찬 전 총리, 좌승희 박정희기념재단 이사장,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등이 대표적인 조순학파다.


육사 영어 교관시절 인연으로 고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발탁돼 1988년 12월 경제기획원 장관 겸 경제부총리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그는 "개혁이 없으면 민란이 일어난다"면서 이른바 '토지공개념'을 도입해 토지제도 개편을 주도했다. 노태우 정권 말기에 한국은행 총재를 지냈고 이후 정치인으로 변신해 민주당 소속 서울시장과 한나라당 총재를 역임했다. 그는 최근까지 서울대 사회과학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로 재임했다.

길고 빽빽한 흰 눈썹은 조 전 부총리의 상징과도 같다. 이 때문에 혹자는 그를 '백미최량(白眉最良·많은 사람 중에서 가장 뛰어난 이)'이라고도 했다. 하얀 눈썹을 휘날리며 산행을 즐겼던 탓에 그의 제자들은 '관악산 산신령'이라고도 불렀다. 20여년 전 TV프로그램인 '판관 포청천'이 방영될 때는 '대한민국의 포청전'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청렴결백한 학자이자, 관료, 정치인으로써 후학들에게 큰 울림을 준 큰 어른이었다.

유족으론 장남 조기송 전 강원랜드 대표 등이 있다. 고인의 빈소는 서울 아산병원 장례식장 30호실에 마련됐으며, 25일 발인 후 선영인 강릉 구정면 학산에 안장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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