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표 공무원" "내리사랑" 미담 쏟아져…76년 무분규엔 이유 있다

머니투데이 지영호 기자 | 2022.06.25 09:00

[막좌막우]'막상막하'의 순위 다툼을 하고 있는 소비기업들의 '막전막후'를 좌우 살펴가며 들여다 보겠습니다.

= 박진선 샘표식품 대표이사가 11일 서울 충무로 샘표 우리맛 공간에서 열린 '삼성 쿠킹스튜디오' 개관 행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이날 샘표와 함께 국내 식문화 발전과 제품 혁신을 위해 뜻을 모았다. 이번 협업은 가전 혁신 기술을 보유한 삼성전자와 우리맛 연구에 있어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샘표가 '더욱 쉽고, 맛있고, 건강한' 식문화 확산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성사됐다. 협업을 통해 '샘표 우리맛 공간'은 삼성전자의 제품들로 채워지게 됐다. 양사는 앞으로 이 공간에서 다양한 강좌나 워크샵을 진행하고 식품·요리 관련 다양한 지식과 경험을 모아 식문화 발전을 위한 콘텐츠를 발굴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2018.4.11/뉴스1

식음료업계가 화물노조 파업으로 홍역을 치른 상황에서 노사협력으로 큰 상을 받은 회사가 있어 눈길을 끕니다. 샘표는 창사 이래 한번도 노사분규가 없는 회사로 최근 한국경영자총협회 주관 한국노사협력대상을 수상했습니다.

특허청에 따르면 샘표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상표입니다. 1954년 5월 간장을 지정상품으로 샘표 브랜드를 등록한 이후 계속 존속기간을 연장해 최장수 상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장수 소주 브랜드 '진로'보다 등록 시점이 4개월 앞섭니다.

해방 이듬해인 1946년 창립한 샘표는 긴 역사 만큼이나 특별한 기록이 또 있습니다. 창립 이래로 한번도 노사분규가 없는 회사라는 점입니다. 샘표 노조의 설립이 늦은 것도 아닙니다. 1980년대 중반에 이미 노조가 만들어졌습니다. 노조가 만들어진 과정은 매우 이례적입니다. 노조 설립 몇 해 전부터 사측이 먼저 노조 설립을 권유했다고 합니다. 노조가 있어야 직원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답니다.

이런 설립 배경 때문에 노조와 사측은 갈등이 생겨도 극단으로 가기보다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습니다. 일례로 1987년 6·29선언을 전후해 전국적으로 파업이 들끓었을 때 샘표 노사는 분규 없이 갈등을 풀었습니다. 그해 7~8월 두달동안 전국에서 발생한 노동쟁의만 3000여건에 이를 정도로 파업이 일상화된 시기였습니다.

2016년 노환으로 별세한 고 박승복 전 샘표 명예회장은 당시 상황에 대해 머니투데이 칼럼을 통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초창기부터 가족처럼 지내며 쌓아온 노조와 사측 간의 신뢰가 큰 역할을 했다. 신뢰의 힘은 같은 문제를 놓고도 극단으로 치닫기보다는 합리적으로 풀어나가도록 했다"고 말입니다.

샘표 노사의 미담 시작은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유리병이 귀하던 시절 샘표는 맥주병을 재활용해 제품을 생산했는데 세척기가 개발되면서 세척 일을 하는 계약직 여직원들의 일거리가 없어지게 됩니다. 하지만 회사는 이들을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시키고 새로운 일거리를 만들어줍니다. 샘표 창동공장 주변에선 샘표 직원을 '샘표 공무원'이라고 불렀다는 일화도 있습니다. 샘표 직원이 퇴근하는 시각이 오후 5시30분으로 일정하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실제 박 명예회장은 직원과의 신뢰를 기업 경영에서 항상 우선순위로 뒀다고 합니다. 회사가 먼저 신뢰를 보여야 직원이 회사에 충성할 수 있다는 지론에섭니다. 그는 이런 상황을 '내리사랑과 같은 맥락'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내용은 그는 회고록 '장수경영의 지혜'에 나옵니다. 그는 "샘표 대표들은 사업가라기보다 학자가 어울린다고 하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며 "하지만 진정한 사업가는 능력 있는 직원을 곁에 오래 두는 사람이라는 게 내 생각"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적어도 이런 믿음이 있어야 직원들도 한 기업에 최선을 다하지 않겠나"라고 말했습니다.


또 그는 "아무리 튼튼한 회사라고 할지라도 직원들이 회사를 내 것으로 생각하는 애사심이 없으면 결코 유지하고 발전할 수 없다"며 "중요한 것은 직원이 먼저 회사에 헌신하기를 바라기보다 기업이 먼저 직원에게 다가가야 한다"고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문화는 1997년부터 샘표 사장에 임명된 박 명예회장의 장남 박진선 대표로 이어집니다. IMF 외환 위기 당시 회사가 어려워지자 노조는 먼저 임금 동결을 제안했고 사측은 이듬해 충분한 임금 인상으로 화답했습니다.

당시에는 물론이고 지금까지 감원이나 구조조정으로 직원을 내보낸 사례가 없는 것도 이례적입니다. 앞서 세척 계약직 여직원들의 정규직 전환 뿐 아니라 최근 코로나19(COVID-19)로 타격을 받은 기업들이 구조조정을 단행할 때까지 샘표에서 '정리해고'라는 단어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오히려 최근엔 직원 채용을 늘렸습니다. 2019년 상시 근로자수는 687명이었는데 지난해 말 기준 756명으로 2년간 10% 증가했습니다.

샘표는 노사 공생의 배경으로 구성원의 행복과 함께 성장하는 문화를 꼽습니다. 1970년대 후반부터 회사는 분기별 매출을 직원들과 공유했습니다. 사내에는 동료에게 연차를 선물하는 '휴가 나누기 제도', 불합리한 근무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사내 제안 제도', 우수·장기근속 사원을 격려하는 '해외 연수 프로그램' 등이 있습니다. 2020년 금탑산업훈장을 수상했을 때 박진선 대표는 '직원의 열정과 노력으로 이뤄낸 결과'라며 전 직원에게 상금을 나눠주기도 했습니다.

샘표는 앞으로도 '구성원의 행복'이라는 핵심가치를 지속적으로 추구하겠다고 합니다. 박 대표는 "샘표의 최우선 기업가치는 이익의 극대화가 아닌 직원들이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회사"라며 "노사협력 사례가 확산돼 행복한 직원, 즐거운 일터가 더 많아지길 희망한다"고 말했습니다. 한바탕 물류대란을 치른 한국 사회에서 샘표의 무분규 기록이 이어지길 응원해봅니다.

이생재 생산본부장(좌)와 유준식 샘표 노조위원장(우)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제공=샘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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