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봤니? 이것이 오일 파워야"…美도 마음대로 못하는 러·사우디

머니투데이 송지유 기자 | 2022.06.17 05:41

美 "왕따시키자" 고립작전 제대로 안 먹혀…
치솟는 유가에 세계 휘청, 산유국 입김 세져

국제유가가 치솟으면서 산유국의 영향력도 강해지고 있다. 이 때문에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를 국제사회에서 고립시키려던 미국의 전략이 제대로 먹히지 않았다는 평가다. 사진은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의 한 주유소에서 차량에 주유하는 모습 /ⓒ AFP=뉴스1
국제사회에서 사우디아라비아(사우디)와 러시아를 완전히 고립시키려는 미국의 계획이 제대로 먹혀들지 않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된 지 4개월이 지나도록 러시아와 교류하는 국가들이 여전하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수년간 앙숙으로 지내온 사우디를 직접 찾아가겠다며 스스로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휘발윳값이 전 세계 인플레이션(물가상승)을 자극하면서 핵심 산유국인 사우디와 러시아의 입김이 그 어느 때보다 세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사우디에 손 내민 바이든…러 고립작전 제자리


(워싱턴 AFP=뉴스1) 우동명 기자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3일 (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에서 아시아·태평양계 미국인 역사 박물관 건립을 추진하는 위원회를 구성하는 법안에 서명을 하기 전에 연설을 하고 있다. (C) AFP=뉴스1
미 백악관은 다음달 13~16일 조 바이든 대통령이 중동을 방문, 무함마드 빈 살만(MBS) 사우디 왕세자와 면담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는 과거 대선 후보 시절부터 "반인권 문제가 심각한 사우디를 왕따(pariah)로 만들어 국제사회에서 고립시키겠다"고 공언했던 바이든 대통령의 입장을 뒤집는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를 반체제 언론인 암살 배후로 보고 취임 이후 줄곧 투명인간 취급해 왔다. 이에 서운함을 느낀 사우디 정부가 중국으로 수출하는 일부 원유에 대해 위안화 결제를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등 미국과 갈등 관계인 중국과 밀착하는 제스처를 취했을 정도다.

바이든 대통령이 자존심을 버리고 사우디 방문을 결정한 것은 최근 급등한 국제유가가 미국 경제를 뒤흔들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40여년 만에 찾아온 최악의 인플레이션에 지지율이 떨어지자 미국이 먼저 한 발 물러섰다는 해석이다.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 AP=뉴시스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된 지 4개월째를 맞고 있지만 아시아·아프리카·남미 등 상당수 국가들은 러시아와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미국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를 비롯해 한국·일본·캐나다·호주 등 우방을 끌어 모아 러시아를 경제·외교적 고립하는 전략을 폈지만 큰 진척을 이루지 못했다는 평가다.

미국은 갈등 관계인 중국을 차치하더라도 인도·브라질·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상당수 국가를 설득하지 못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반(反)러시아 연대를 확장하려는 미국의 노력이 저항에 직면했다고 진단하기도 했다.




천하의 미국도 못 건드리는 '산유국의 힘'


세계 최강국인 미국의 국제질서가 사우디와 러시아에 제대로 통하지 않는 배경에는 글로벌 유가를 쥐락펴락하는 '산유국 파워'가 있다. 미 에너지정보청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세계에서 석유를 가장 많이 생산한 국가는 미국(점유율 20%)이지만 사우디와 러시아는 각각 2·3위 산유국이다. 미국 입장에선 정치적으로 썩 내키지 않아도 증산 협조 요구를 할 최적의 파트너가 사우디인 셈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100일간 화석연료 수출로 930억유로(125조원)를 벌었다는 분석도 이를 뒷받침한다. 핀란드 에너지·청정대기연구센터(CREA) 보고서에 따르면 러시아는 올 2월 24일~6월 3일 에너지 수출로 하루 평균 9억3000만유로(1조2500억원)을 벌어 들였다. 가장 많이 수입한 국가는 중국, 독일, 이탈리아, 네덜란드, 터키, 폴란드, 프랑스, 인도, 한국 등 순이었다.

'오일머니' 효과는 수치로 증명됐다. 지난해 사우디 정부가 석유로 벌어들인 돈은 1488억달러(192조원)로 올해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올 1분기 사우디 국영석유회사인 아람코의 순이익은 395억달러(51조원)로 전년 동기 대비 80% 증가했다. 주가가 뛰면서 애플을 제치고 전 세계 시가총액 1위에도 올랐다. 이는 아람코에서 배당을 받아 국가재정수입 상당 부분을 마련하는 사우디 정부의 재정 곳간이 그만큼 탄탄해졌다는 얘기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왼쪽), 푸틴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이 각각 악수하고 있다. /ⓒ AFP·로이터=뉴스1
러시아 역시 올 1~4분기 경상흑자가 958억달러(123조원)로 역대 최대 기록을 세웠다. 이 뿐이 아니다. 400여개국 민간 국제금융회사 연합체인 국제금융연구소(IIF)는 올 연말까지 경상수지 흑자가 지난해의 2배인 최대 2400억달러(309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앞으로도 에너지 강국인 사우디와 러시아의 영향력을 빼앗기는 쉽지 않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서방국이 마련한 러시아산 원유에 대한 금수조치가 중국·인도 등 대러 제재에 동참하지 않는 국가들에겐 싼 값에 원유를 수입할 기회를 줄 뿐이라고 CNN은 짚었다. 스위스 은행인 줄리어스베어의 노르베르트 뤼커 경제조사부장은 "중국, 이란 등 에너지 소비 대국들의 노선이 달라지지 않는 한 러시아의 에너지 무역은 큰 타격이 없을 것"이라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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