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박지환, 먼발치에서도 느껴지는 명배우의 향기

머니투데이 한수진 기자 ize 기자 | 2022.06.13 09:19
박지환, 사진제공=저스트엔터테인먼트


배우가 연기를 특출나게 잘하면 반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외모나 캐릭터를 떠나 사람 자체에 대한 존경이 생긴다. 자신의 일을 잘해내는 것에 대한 부러움, 그리고 세상에 없던 인물에 충족된 눈빛을 불어 넣는 모습을 보며 감탄하게 된다. 최근 한 배우를 보며 이러한 마음을 품었다. 바로 박지환이다.


이름만 들어선 아직 낯설게 느껴지는 배우인 박지환은 얼굴을 확인한 순간 "아!"소리가 절로 나올 수밖에 없다. 드라마 tvN '우리들의 블루스'의 마초 성향의 순대장수 인권과 영화 '범죄도시' 1,2의 조선족 장이수가 바로 그가 연기한 인물들이다. 요즘 '우리들의 블루스'와 '범죄도시2'를 보지 않고는 일상 대화가 불가능한 필수 관람 작품들이다. 평균 시청률 10%대의 인기 드라마이자, 오랜만에 천만 관객을 운집한 엔데믹 시대(풍토병으로 전환)를 연 흥행작이다. 요즘 잘 나가는 작품엔 바로 박지환이 있다.


박지환은 처음부터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는 배우는 아니었다. 수십 편의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했지만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건 불과 3년 남짓이다. 영화 '그라운드 제로' '유체이탈자'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봉오동 전투' '사바하' '마약왕' '성난황소' '1987' '대립군' '대배우' '검사외전' '대호' '악인은 살아 있다' '무뢰한' '빅매치' '나의 독재자' '남자가 사랑할 때', 드라마 '블랙독' '녹두꽃' '진심이 닿다' '언터처블' 등 출연작을 일일이 세기가 힘들 정도다.


전환점이 찾아든 계기는 2017년 영화 '범죄도시'에서 조선족 장이수를 연기하면서부터다. 그리고 이 찰나에 피어낸 존재감으로 데뷔 20년 만에 드라마 첫 주연을 맡게 됐다. '우리들의 블루스'의 정인권이다. 그것도 이병헌, 신민아, 한지민, 김우빈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말이다. 수많은 톱스타들 사이에서 그는 연기력 하나로 그들 못지않은 강렬한 존재감을 보여줬다. 울퉁불퉁한 내외면 사이로 툭 내던지는 대사 한 마디, 동작 하나 마다 웃음과 눈물을 동시에 선사했다.


박지환, 사진제공=저스트엔터테인먼트


"단편 영화를 촬영하고 있는데 소속사에서 현장을 찾아 왔어요. 오디션을 봐야할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처음엔 싫다고 했어요. 그런데 노희경 작가님의 작품이라고 해서 생각해보겠다고 했는데 주인공이라고 해서 '하자'고 했죠. 대신 여유를 갖고 차분한 상태에서 만나고 싶다고 했어요. 그렇게 준비를 하고 감독님과 작가님 미팅하게 됐어요. 최영준 배우도 그 자리에서 미리 대본을 읽고 있더라고요. 같이 대본리딩을 하는데 작가님이 '하시죠' 그러더라고요. 속으로 '이게 무슨 일이야' 했어요. 정말 감사했죠.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는 느낌?"


작품 속 강렬한 인상과 달리 인간 박지환은 단정하고 바른 느낌이 강했다. 대화하듯 자신의 이야기를 꾸밈없이 쏟아냈고, 시선을 맞추며 대화에 더 집중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기자가 알던 인권이나 장이수의 모습은 판타지 속 인물에 가까웠을 정도다. 그만큼 '본캐' 박지환은 반전 매력의 소유자였다. 로맨스물에서 활약을 기대하게 할 만큼 부드러움이 짙게 배어있는 낭만의 배우였다. 그런 그가 어떻게 인권과 같은 역할을 형상화했는지 더욱 커다란 궁금증을 안게 됐다.



"자기 연민에 빠지지 말고 이 사람의 직선들을 고스란히 내비치자 했어요. 정교한 세팅을 하지 않은 투박한 상태로요. 사실 대본에 인권이라는 인물의 모든 것들이 이미 다 쓰여 있었어요. 꾸밀 게 없고 만들 게 없을 정도로 대본에 다 있었죠. 저는 그저 인권의 순간에만 집중한 것 같아요. 드라마 안에서 인권이라는 인물로 다듬어지지 않은 춤을 췄죠. 한 마디로 막춤이죠. 대본이 문학에 가까웠을 정도로 정말 멋졌어요. 특별히 제가 생각하거나 연구하지 않아도 됐을 만큼요. 그런 대본에 연기할 수 있어서 행복했죠."


'우리들의 블루스'는 옴니버스물이다. 에피소드마다 이야기의 주인공이 바뀌고, 자신의 이야기가 끝나면 극에서 존재감이 적어진다. 그러나 인권은 아니다. 거의 모든 회차에서 남기는 잔상이 강하다. 이는 분량의 많고 적음을 떠난 강질의 연기로 완성한 존재감이다. 동료 배우들과는 완벽한 앙상블을 이루며, 혼잣말을 해도 허투루 흘러보내는 신이 없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과신하지 않는다. 돌아오는 칭찬도 대본과 동료 덕이라고 말한다. 겸손의 미덕까지 갖춘 배우다.


박지환, 사진제공=저스트엔터테인먼트


"작품에 임할 때 부담감은 도움이 되지 않아서 오히려 '더 신나게 놀거야'라는 마음으로 임했어요. 이 드라마도 인생을 돌아보면 지나가는 작품 중 하나일 뿐이잖아요. 그저 훌륭한 배우들과 함께 할 수 있으니 함께 즐겁게 놀자는 마음으로 했어요. 인권이라는 사람은 참 재밌는 것 같아요. 단순하고 그에 따른 재미도 분명하고요. 그런 사람을 따뜻하게 바라봐주는 시선조차 감사할 따름이죠. 인권이 인기있는 이유는 사실 잘 모르겠지만 이상하게 천진난만해서 그렇지 않을까요? 정리되지 않은 삶의 결이 있는 인물이잖아요. 낯설고 신기한거죠. 선이 간결한 인물이라 사랑해주신 게 아닐까 해요. 약간 거친 느낌이 있어서 낯설 수 있지만 사람이 단순하고 뒤끝도 없고 투명해요."


수많은 햄릿과 로미오가 있듯이 같은 역할이라 할지라도 연기하는 사람마다 고유의 차이를 드러낸다. 서사가 잘 깔린 캐릭터일지라 해도 이를 잘 빚어내는건 배우 각자의 역량이다. 박지환의 역량은 그를 바라보는 현재 대중의 시선이다. 감탄과 찬사로 입에 오르내리고 있는 지금 이 순간 말이다. 연기를 하기 위해 막노동을 하면서도 행복했다던 그의 무명 시절처럼, 연기를 즐기면서 겸손까지 갖춘 그의 모습은 쉽게 꺼지지 않을 불씨가 될 것임이 분명하다.


"연기 덕에 많은 사람과 캐릭터를 만날 수 있었고, 저의 부족한 점을 성장하게 할 수 있었고, 때론 삶을 돌아보게도 했죠. 연기는 저의 좋은 친구이지 않나 싶어요. 무명 일 때는 단순했어요. 좋아하는 일이니까 돈이 안 돼도 재밌었어요. 돈이야 아르바이트로 벌면 되니까요. 그래서 힘들지 않았어요. 산에 막걸리 짊어지고 가는 일도 해봤고, 지하철 4호선 스크린도어도 깔아봤죠. 그 모든 것들이 배우를 할 수 있게 한 과정이었다는 생각에 행복했어요. 앞으로도 잔잔하게 지금처럼 좋은 역할을 찾으면 즐기려고요. 배우는 먼길을 가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천천히 잘 걸어가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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