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리딩뱅크 노리는 신한…"2030년, 디지털 1등 목표"

머니투데이 호찌민(베트남)=김상준 기자 | 2022.06.08 08:06

[2022 금융강국 코리아]<2>-①신한은행

편집자주 | 코로나19 확산은 금융산업에 역사상 가장 큰 변화를 몰고 왔다. 오프라인·대면 중심 영업 활동은 급격히 위축됐다. 대신 디지털 플랫폼이 대세가 됐다. 국내 은행의 해외 거점인 동남아시아 등 신흥국에서도 낙후된 금융 인프라의 빈자리를 온라인·디지털 서비스가 빠르게 채우고 있다. 디지털에 강점을 지닌 'K-금융'엔 글로벌 리딩금융그룹 위상 강화를 꾀할 수 있는 기회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국내 금융회사들의 해외 시장 공략 전략을 현지에서 생생히 전달한다.

#베트남 호치민 공항. 흔한 택시 잡기 경쟁은 없었다. 대부분이 휴대폰을 쳐다보다 자동차가 접근하면 번호판을 유심히 살폈다.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차량 공유 서비스를 이용하는 풍경이다. 편의점에서도 적지 않은 베트남 사람들이 모바일로 결제를 진행했다. 9900만명 인구 중 절반 이상이 은행 계좌가 없는 '현금 사회'지만 코로나19(COVID-19)와 베트남 정부의 디지털 전환 기조가 일상을 바꿨다.

신한베트남은행은 이같은 베트남 사회의 변화를 오랫동안 기다려 왔다. 2009년 베트남 법인을 설립할 때부터 상용화된 전산 패키지를 도입하는 대신 자체 전산망을 구축했다. 지난해 베트남 정부가 비대면으로 은행 계좌를 개설할 수 있도록 허용하자마자 관련 서비스를 시작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최근에는 디지털 전담 조직인 '퓨처 뱅크 그룹'을 출범했다.

신한베트남은행은 명실상부한 베트남 외국계 1위 은행이다. 베트남 내 점포 수 43개, 지난해 순이익 약 1억1100만달러(1400억원), 지난 4월 기준 자산 규모 약 72억달러(9조500억원) 등 모든 면에서 1위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신한베트남은행은 외국계 은행 1위 타이틀 그 이상을 바라본다. 디지털 역량을 총 동원해 베트남 리딩뱅크로의 도약을 노린다.


독립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디지털 조직 '퓨처 뱅크 그룹'


신한베트남은행은 지난달 초 디지털 전략과 사업을 총괄하는 퓨처 뱅크 그룹을 신설했다. '은행 속 은행' 콘셉트로, 독립적인 조직을 표방한다. 실제 예산 책정이나 각종 사업 추진시 결재 등 부문에서 독자적인 업무 처리가 가능해졌다. 신한베트남은행은 더욱 확실한 '독립'을 위해 업무 공간도 다른 부서들과 분리했다. 퓨처 뱅크 그룹장을 맡은 정경원 부행장은 "출범한 지 한 달 정도가 지났지만 의사결정 프로세스가 빨라진 게 체감이 된다"고 말했다.

퓨처 뱅크 그룹은 IT 그룹을 흡수했다. 은행원과 개발자가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일을 한다. 이전에는 IT 계열사인 신한DS에 디지털 관련 업무를 의뢰하고 결과에 대해 다시 신한베트남은행이 피드백을 주는 방식으로 업무가 진행됐다면 지금은 상품·서비스의 기획부터 판매까지 실시간 소통이 이뤄진다. 황철오 디지털전략본부장은 "개발자가 모든 과정에 참여하면서 효율성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디지털 조직의 위상을 높일 수 있었던 자신감은 한국에서 쌓은 디지털 역량과 높은 현지화 수준에서 나온다. 베트남에서 신한베트남은행은 디지털 전환 속도가 가장 빠른 은행으로 꼽힌다. 한국에서는 빅테크 플랫폼 업체들의 혁신 속도를 은행이 따라가는 데도 벅차지만 베트남에서는 오히려 신한베트남은행의 아이디어와 기술을 현지 빅테크 플랫폼 업체들이 쫓는다. 신한은행이 한국에서 시도한 디지털 전환 중 성공한 사례를 골라 신한베트남은행에 이식한 결과다.

현지 직원 비중이 높다는 점도 강점이다. 디지털 사업의 성패는 고객의 니즈를 얼마나 빠르고 정확하게 파악하느냐에 따라 갈린다. 이에 신한베트남은행은 70여명의 그룹 인력 중 90% 이상을 베트남 현지에서 채용한 직원으로 구성했다. 이대군 전략본부장은 "한국과 베트남 금융소비자의 니즈는 금융선진화 정도 차이 등 이유로 세밀하게 다르다"며 "한국 본점과 상의가 반드시 필요한 업무를 제외한 대부분의 업무는 주재원이 아닌 현지 직원이 주도한다"고 말했다.

베트남 호치민에 위치한 신한베트남은행 본점 영업점. 다소 이른 오전 10시지만 손님들로 북적인다/사진=김상준 기자


현지 빅테크들의 '러브콜'…자체 상품·서비스도 인기


신한베트남은행의 디지털 전환 전략의 핵심은 현지 빅테크 플랫폼 업체와의 업무 제휴다. 아직은 은행과의 거래가 익숙하지 않은 베트남 시장 특성을 고려했다. 베트남은 현금을 충전해서 모바일로 사용할 수 있는 '전자지갑'이 활성화 돼있다. 전자지갑을 사용하기 위해선 은행 계좌와의 연동이 필수다. 신한베트남은행은 2017년 베트남 내 1위 전자지갑 플랫폼인 모모(MoMo)와 제휴를 맺고 외국계 은행 최초로 계좌를 연동했다.

외국계 은행 1위라는 성과가 제휴에 도움이 됐다. 베트남 빅테크 플랫폼 업체들이 외국계 은행 중 협업할 상대를 찾을 때 가장 먼저 찾는 곳이 신한베트남은행이다. 그 결과 신한베트남은행은 2019년 베트남 1위 승차 공유 업체인 그랩(Grab)의 전자지갑 플랫폼인 모카(Moca)와 제휴를 맺었고, 2020년에는 베트남의 '카카오톡'으로 통하는 잘로(Zalo)의 전자지갑 플랫폼 잘로페이에 계좌를 연동했다.


특히 잘로와는 현재까지 사업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최근 잘로는 신한베트남은행에 신사업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한국에 거주하는 베트남 고객을 대상으로 한 해외송금 서비스로, 고객들이 잘로와 신한베트남은행을 통해 베트남으로 편리하게 돈을 보낼 수 있게 하는 서비스다. 당장은 잘로와 '신한 쏠(SOL, 신한은행 모바일뱅킹) 베트남'을 연동해 송금 절차를 진행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고, 궁극적으로는 '카카오톡 송금하기' 기능 수준으로 고도화한다는 구상이다.

자체 디지털 상품·서비스도 현지에서 호응을 얻고 있다. 신한베트남은행은 지난 4월 모바일뱅킹 전용 적금 상품을 출시했다. 신한베트남은행은 1년 만기 기준 기본금리 6.5%에 최고금리 10%라는 파격적인 금리를 내걸었다. 다른 은행들의 예금 금리는 1년 만기 기준 최고 5~6.5% 수준이다. 판매 개시 한 달 만에 6000좌 이상이 판매됐다. 계약액은 약 720만 달러(90억5000만원)다.

한국에서 '흥행'한 상품을 선별하고 현지 사정에 맞게 응용해 성공한 사례다. 해당 상품의 경우 '청년희망적금'이 모티브가 됐다. 상품을 설계를 총괄한 황 본부장은 "베트남 청년들에게도 청년희망적금처럼 목돈을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제시해보자는 생각에서 상품을 기획했다"고 말했다.



베트남 제도가 변한다…"이제부터 시작, 점프하겠다"


신한베트남은행은 베트남에서 디지털 혁신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전망한다. 실제 베트남 정부는 지난해 e-KYC 제도를 시행하면서 비대면 실명 확인을 가능하게 했다. 김연준 디지털사업부장은 "기본적인 금융인프라가 구축됐다는 의미"라며 "단순히 비대면 계좌 개설을 넘어 다양한 서비스를 은행이 제공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신한베트남은행은 향후 전자지갑 업체가 제공할 수 없는 기능에 집중할 계획이다. 대표적인 예가 여신 기능이다. 베트남에서는 아직 비대면 대출이 시작되지 않았다. 신용카드, 신용대출 등 상품에 대해 심사부터 발급까지 비대면으로 가능한 프로세스를 구축 중이다. 대출시 반드시 대면이 필요한 부분이 있지만, 최근 베트남 정부의 디지털 전환 의지를 보면 조만간 제도가 개선되지 않겠냐는 게 신한베트남은행의 기대다.

정 부행장은 "베트남 외국계 은행 1위라고는 하지만 점포 수는 현지 은행에 비해 부족하고, 확대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며 "퓨처 뱅크 그룹을 설립한 올해 5월을 기점으로 디지털을 통해 한 단계 점프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어 "베트남에는 노력만 하면 닿을 수 있는 목표들이 많다"며 "2030년에는 베트남에서 디지털 부문 1위 은행이 되겠다도 그런 목표 중 하나"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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