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스·메르스 겪고도 또 '헛발질'…코로나 이후가 더 걱정되는 이유

머니투데이 안정준 기자, 이창섭 기자, 박다영 기자 | 2022.06.03 08:00

[MT리포트]동물의 역습, 울리지 않는 조기경보(下)

편집자주 | 1997년 코로나19 대유행을 경고한 도널드 버크 피츠버그대학 공중보건대학원 교수는 인수공통감염병과 맞설 무기로 '과학적 근거를 강화한 대비'를 강조했다. 어떤 바이러스가 어디서 어떻게 발생했는지 신속히 파악해야 준비를 갖춰 대응할수 있으며 이것이 '과학방역'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안타깝게 '사후 대응' 수준에 머물고 있다. 그 사이 인류를 위협할 바이러스를 품은 원숭이, 박쥐 등은 각종 인수공통감염병 유행을 통해 우리에게 불길한 신호를 보낸다. 윤석열 정부의 '과학방역'이 나가야할 방향을 짚어본다.



사스·메르스부터 코로나까지…6년마다 '인수공통감염병' 헛발질




6년 주기로 인수공통감염병 충격을 20년째 겪고 있지만 정부에는 감염병 감시에 나설 뚜렷한 '컨트롤타워'가 아직 마련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보건기구(WHO)등 국제기구와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유럽 질병예방통제센터(ECDC) 등 선진 감시체계와의 공조를 이끌 인력 구성도 걸음마 단계다. 또 다른 감염병 위기가 도래하면 지금까지와 다름없이 유입 후에야 대응에 나서는 '사후약방문'에 머물 수 있는 셈이다. 의료계에서는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청에 감염병 감시를 주도할 힘을 실어주는 한편, 감염병 감시 전문인력 확보를 위한 확실한 인센티브 제공이 선행돼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2일 정부와 의료계에 따르면 국내에서 자체적으로 인수공통감염병을 감시하고 연구해 대응하기 위한 정부 컨트롤타워는 사스와 신종플루, 메르스, 코로나19(COVID-19)까지 겪은 현재도 사실상 갖춰지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현재 감염병과 바이러스에 대한 연구는 사람, 야생동물, 해양 등 바이러스 종류와 바이러스 연구·개발 및 임상시험 단계에 따라 보건복지부와 농림축산식품부, 환경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주무부처 산하에 따로 떨어져 있다. 이러다보니 빠른 감시를 통한 선제적 대응은 물론, 제대로된 연구에도 한계가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사람으로 넘어올 위험이 큰)조류독감이 돌면 농림축산검역본부와 질병청이 따로 대응한다"고 지적했다.

코로나19를 겪으며 중장기 감염병 대응 연구기반 마련을 위한 연구소가 마련됐지만 이 역시 질병관리청 산하 국립감염병연구소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한국바이러스 기초연구소로 나눠져 있다. 감염병 대부분이 동물에서 사람으로 건너오는 인수공통감염병이어서 통합 감시 체계가 필요하지만 연구는 따로하는 셈이다.

부처별 통합 감시시스템 확보는 앞선 감염병 유행때 마다 지적된 문제였다. 코로나19가 국내 유입된 2020년 국회 입법조사처가 발행한 '2020 국정감사 이슈 분석'에는 이 같은 내용이 고스란히 담겼다. △해외 감염병 사전 예측 역량 강화를 위한 독자적 관찰 시스템 구축 필요△관계기관 감시 시스템 연계 구축에 국한된 협력체계의 범부처 협업 전환 등이 골자였다.

민경덕 충북대 수의학과 교수는 "부처 간 협력 방식이 아직은 체계적이지 않은 면이 있다"며 "각 부처에서 관리되는 감시 정보가 따로 요청을 주고받지 않아도 실시간으로 공유되고 활용될 수 있는 환경이 구축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방역당국도 이 같은 문제를 인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질병관리청은 인수공통감염병 범부처 대응 R&D 관련, 홈페이지를 통해 "국가차원의 관련부처 연계 통합 감시시스템 및 시스템 개발연구가 미흡하다"고 설명해놨다.

해외 기구와의 공조 감시체계도 느슨하다. 질병관리청이 세계보건기구(WHO)에 파견한 역학조사관은 현재 서태평양지역 사무소 2명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은 한국과 중국, 일본, 호주 등 서태평양지역 사무소가 담당하는 37개 국가에서 발생하는 감염병 이상징후를 포착한다.

문제는 감염병이 서태평양 지역에서만 오지 않다는 점이다. 2015년 한국을 강타한 메르스는 중동에서 발원했고, 최근 전 세계에서 확산하는 원숭이두창은 아프리카에서 발원해 유럽을 시작으로 퍼졌다. 아기의 소두증(이상하게 작은 머리)과 뇌조직 손상을 유발하는 지카바이러스는 남미에서 시작됐다.

이들 감염병 감시와 지역 보건을 위해 WHO는 서태평양을 포함,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 유럽, 동부지중해, 미국 등 6곳에 사무소를 운영하는데 정부는 이중 서태평양 한 곳에만 역학조사관을 파견한 셈이다. 그나마 상시 파견 체제가 아닌 것으로 파악된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서태평양 지역에 공식 파견이 있을때도 있고 없을때도 있는 것으로 알고있다"며 "주요 감염병 발생 우려지역에는 전문가가 나가있어야 빠른 감염병 발생 인식과 이를 통한 빠른 대응이 가능한데, 그런 체계가 갖춰지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 상태로 코로나19를 넘긴 후 또 다른 감염병이 유입되면 기존과 다름없이 검사·추적·치료 등의 '3T(Test·Trace·Treatment)'만으로 대응하는 전략 외엔 뾰족한 수가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규모 백신 개발 지원 등 발빠른 대응도 그만큼 늦어질 수 밖에 없다. 정부의 백신 개발 지원이 국내 코로나19 유입 후 1년이 지난 시점에야 언급되기 시작한 점도 감시가 늦었고, 바이러스 특성 파악 역시 그만큼 늦었던 것과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청을 중심으로 감염병 감시를 주도할 컨트롤타워를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기석 전 질병관리본부장(한림대성심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인수공통감염병 대응을 위해 환경부와 농림축산식품부 등도 해야할 일이 있지만 사람에게까지 옮겨오는 병은 질병관리청이 주도권을 갖고 연구도 하고 예산도 따야한다"며 "타부서도 연구를 충분히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게 중요하지만 사람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질병청이 중심이 돼야한다"고 말했다.

궁극적으로 보건복지부에서 보건부가 독립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조언도 나온다. 민 교수는 "이탈리아와 같은 일부 국가에서는 인간 감염병과 동물 감염병을 하나의 부처에서 다루는 경우도 있다"며 "이러한 조직 구성은 인수공통감염병을 다루는 데 매우 효율적일 수 있다. 국내에서도 보건부를 독립시키고 그 조직 내에 동물에서의 감염병을 다루는 하위조직을 두자는 의견이 있다"고 말했다.

감시 기구를 내실있고 실력있는 전문가들로 채우고 그들에게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우주 전 대한감염학회 이사장(고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질병관리본부가 질병관리청으로 승격됐지만, 결국 행정고시를 거친 공무원들이 일을 쥐고 있다"며 "전문가를 키워서 조직을 구성해야 하는데 조직만 커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 전 본부장은 "각국 대사관과미국 CDC, 유럽 ECDC, WHO등에도 역학조사관을 파견해 빠른 감시와 대응체계를 갖춰야 한다"며 "동시에 내과 전문의, 감염내과 전문의 등 역학조사관으로 오려는 전문가들에게 확실한 인센티브를 줘서 오고싶은 조직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동물→사람' 감염병 대가의 전략은? 가장 먼저 튀어나온 말 "중국"



"중국이 인수공통감염병의 '에피센터'(epicenter, 진원지)'가 됐다는데 주목해야 합니다."

송창선 대한인수공통감염병학회장(건국대 수의학과 교수)은 갈수록 자주, 광범위하게 유행하는 인수공통감염병을 빠르게 인지할 감시 전략을 묻는 질문에 우선 '중국'을 언급했다. 빠르고 효과적 감시를 위해 먼저 문제가 어디서 가장 심각하게 자주 발생하는지부터 추려야 한다는 것.

송 회장은 동물과 사람 사이에서 같은 병원체에 의해 전파되는 인수공통감염병 연구의 대가로 꼽힌다. 건국대 수의학과를 졸업하고 도쿄대 대학원에서 조류질병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국립수의과학검역원 연구관을 거쳤다.


30년 이상 인수공통감염병, 그중에서도 닭 코로나를 중점적으로 연구한 송 회장에게 세기가 바뀐 2000년은 특별한 시점이었다고 한다. 송 교수는 "조류코로나의 첫 팬데믹은 유럽에서 발생했지만 이후 발생한 것들은 2000년 전에는 어디서 온지를 몰랐다"며 "그런데 2000년부터 연구결과가 나오기 시작했고 이 것이 중국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알려졌다"고 말했다.

배경은 중국의 경제 급성장이라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송 회장은 "2000년을 기점으로 중국의 경제가 급성장했고, 식도락을 좋아하는 중국 문화 특성을 타고 돼지, 닭, 오리 사육이 크게 늘었으며 야생동물을 식용으로 파는 전통시장 규모도 커졌다"며 "동물 사이에서 돌던 바이러스가 사람을 타고 보다 빈번히 넘어올 수 있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야생동물 바이러스를 수집하던 송 교수도 처음에는 중국에서 바이러스 정보를 받으려 했다. 하지만 공유는 쉽지 않았다. 송 회장은 "전 세계 야생동물에서 문제가 되는 바이러스를 수집하는 과제를 진행하고 있는데 중국은 바이러스를 달라고 하면 주지 않았다"며 "플랜B가 필요했다"고 말했다.

그가 세운 전략은 '중국 포위작전'이었다. 송 회장은 "(중국에서 발생한 바이러스가 지리적으로 먼저 퍼지는)몽골과 베트남, 러시아, 인도네시아 등 중국을 둘러싼 국가로 가게 됐다"며 "이들 국가와 연계해 자료수집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과 뚝 떨어져 있는 이집트도 이 같은 포위망 중 하나다. 송 회장은 "돼지를 안먹는 대신 닭을 많이 먹는 중동 지역 특성 상 중국에서 발원한 조류바이러스는 중동으로 넘어간다"며 "하지만 중동 국가 상당수가 정치, 군사적 이유로 접근이 어려워 중동과 접한 첫 번째 국가인 이집트에서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고 말했다.

로이터=뉴스1

주변을 더듬어 중심부의 감염병 양상을 그려나가는 이 작업은 현지 후학 양성으로도 이어진다. 이미 몽골에는 송 회장이 데려와 가르친 몽골 학생이 교수가 돼 다시 현지로 나가 바이러스를 수집하고 연구를 진행 중이다. 송 교수는 "이집트 학생도 현재 (건국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고, 본국으로 돌아가면 교수를 하게 된다"며 "현지 인력이 현지에 뿌리내려 감염병 연구를 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송 회장은 코로나 외에도 소, 돼지, 닭 등을 감염시키는 파라믹소 바이러스와 이미 인류에 큰 피해를 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군 가운데서도 또 다른 변이를 거쳐 사람으로 건너와 위협적인 새 감염병이 될 우려가 있다고 경고했다. 송 교수는 "코로나, 인플루엔자, 파라믹소 세 가지가 돌아가며 인류를 괴롭힐 것"이라며 "현재 세 바이러스를 지목해 연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사실 인수공통감염병을 따로 연구하는 사례는 드문것이 현실"이라며 "국가 지원이 사실상 없는 상황에서 수의과 졸업생들 절대 다수가 임상으로 빠진다"고 덧붙였다. 수의과학자가 되는 대신 벌이가 좋은 수의사가 된다는 것. 이는 의료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의대 졸업생 중 절대 다수가 의학을 기반으로 과학연구를 하는 의과학자 대신 임상의의 길을 걷는다. 이 같은 풍토에서 인수공통감염병의 깊은 연구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의학, 수의학 전공자 모두 과학 연구의 길을 택할 경우 연구를 지속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춰져야 한다"며 "매년 수백 명의 의과학자를 뽑는 미국 국립보건원(NIH)과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좋은 사례"라고 말했다.



집 잃은 동물, 도시로 나온 감염병…결국 우리에게 달렸다



사진=뉴스1

"모든 것은 우리에게 달려있다."

내셔널지오그래픽의 특파원으로 전 세계 정글과 늪지를 누비며 감염병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기록한 데이비드 콰먼은 그의 저서 '인수공통 모든 전염병의 열쇠'를 이 같은 문장으로 끝맺는다. 오지에서 야생동물의 바이러스 추적하는 조사관과 연구실에서 바이러스의 진화 양상을 점검하는 감염병 석학 등 그가 만난 모든 인수공통감염병의 파수꾼들이 입을 모아 제시한 최선의 대비책은 "결국 우리가 진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내 감염병 전문가들의 시각도 같다. 송창선 대한인수공통감염병학회장(건국대 수의학과 교수)은 "인수공통감염병의 잦은 유행 배경은 인구의 폭발적 증가"라고 말했다. 1960년부터 약 10년 간격으로 10억명씩 불어난 세계 인수는 현재 80억명에 육박한다. 개체수가 늘어난 인류가 삶의 터전을 확장시키면서 이전에는 서로 섞일 일 없던 야생동물의 바이러스와 인간의 접점이 늘어난게 신종바이러스 등장의 원인이다.

때문에 문제의 해결은 "인수공통감염병 확산 경향의 원인이 인간에 있다는 것"을 깨닫는데서 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각종 인수공통감염병의 유행이 '어느날 갑자기', '운 나쁘게' 도래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야생동물의 무수한 접점에서 생겨난다는 점을 정확히 인식해야 한다는 것.

전문가들은 인수공통감염병의 조기 경보 시스템 구축이 그동안 적극적으로 추진되지 못한 이유도 이 같은 인식의 부재에서 출발한다고 지적한다. 이른바 '안전 불감증'이다. 언제든 대유행을 유발할 인간과 야생동물의 무수한 접점을 인식하지 못하는 안전 불감증이 매번 '감시와 예방'보다는 '사후 대응'으로 문제 해결에 나서는 원인이라는 것이다.

김우주 전 대한감염학회 이사장(고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신종감염병에도 안전 불감증이 작용한다"며 "평상시 감시 체계를 잘 갖춰놓고 상시 가동을 해야 하는데 잊어버리고 있다가 문제가 되면 찾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민경덕 충북대 수의학과 교수는 "코로나19 사태에서 볼 수 있듯이 수많은 연구 인력과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쏟아부어도 인간 사회에서 전파가 본격적으로 시작돼버린 후에는 유행을 통제하기 매우 어렵다"고 했다.


세계보건기구(WHO)등 국제기구와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유럽 질병예방통제센터(ECDC) 등이 쌓아둔 감시 노하우를 흡수하는 것도 필수라는 것이 의료계 조언이다. 우리 정부의 자체 감시 시스템 구축도 밖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현재 감염병과 바이러스에 대한 연구는 사람, 야생동물, 해양 등 바이러스 종류와 바이러스 연구·개발 및 임상시험 단계에 따라 보건복지부와 농림축산식품부, 환경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주무부처 산하에 따로 떨어져 있다. 이러다보니 빠른 감시를 통한 선제적 대응은 물론, 제대로된 연구에도 한계가 있다.

민 교수는 "이탈리아와 같은 일부 국가에서는 인간에서의 감염병과 동물에서의 감염병을 하나의 부처에서 다루는 경우도 있고, 이러한 조직구성은 인수공통감염병을 다루는데 매우 효율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코로나19 국면을 통해 모두가 익숙해진 '개인방역수칙'이 언제 어떤 모습으로 유입될지 모를 또다른 인수공통감염병 대응을 위한 마지막 무기라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는 것이 의료계 조언이다. △하루 3회 이상 환기를 하고 △흐르는 물에 30초 이상 손을 씻으며 △기침할 땐 입을 가리고 △마스크를 착용하는 개인방역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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