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한창인 나라에서, 사람과 동물이 포격으로 숨지는 와중에 '검역증'을 받아오란 게 웬말인가. 그러나 농림축산검역본부는 윤기를 계류장에 묶어둔 채 입국은 안 된다고 했다. 우크라이나 인접국인 폴란드 등 다른 유럽 나라 모두 '예외 상황'을 인정해, 함께간 동물 가족을 들여보냈는데도. 심지어 주우크라이나 한국 대사관에서 "검역증을 발급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공문까지 보내줬는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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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역본부 찾아가도 입국 안 된다는 말만, "너무 무섭고 갑갑하고 화났지요"━
윤기 아빠 : 일주일 정도 치료 받고 괜찮아졌어요. 계류장에 3주 있는 동안 애기 티가 많이 사라졌어요. 육안으로 보기엔 건강도 괜찮고요. 엄청 활발해보이지 않나요?(맞아요) 처음에 헤어질 때랑 눈빛이 완전 달라요. 이제 집에 간다는 걸 아나봐요.
형도 : 처음에 입국 안 된다는 걸 아셨을 땐 많이 힘드셨지요. 상상만해도 그래요.
윤기 아빠 : 너무 무섭고 갑갑하고 화가 나더라고요. 담당 공무원 마음도 이해하지만요. 결과적으로 보니까, 우리나라에도 예외 법령이 있었더라고요. '상대국 정부 기관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을 땐, 검역본부장 역량으로 할 수 있다'고 돼 있는.
윤기 아빠 : 그렇죠. 그런데 농림축산검역본부(김천)에 찾아갔을 땐, 담당자가 윗선에 보고도 안 했더라고요. 그게 너무 화났는데, 윤기한테 피해가 갈까봐 그냥 왔었어요.
심지어 국경없는 수의사회서 책임지고 검역을 해주겠단 말에도, 검역본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윤기 아빠는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이런 걸 예상했다면 한국에 안 들어왔을 거라고 했다. 그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도움을 호소하는 영상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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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락사' 위험도 있단 말에…진심으로 대신 화내준 사람들━
윤기 아빠 : 맞아요. 특히 고양이를 70여 마리 키우시는 '섭섭러브(유튜브 닉네임)'란 분이 정말 큰 도움을 주셨어요. 사실 전 어디에 도움을 요청할지 잘 몰랐거든요. 그런데 그 분이 여러 동물보호단체, 국경없는수의사회, 검역소, 각종 기관에 전화해서 도움 주셨지요.
윤기 아빠가 올린 영상의 댓글을 봤다. 사람들은 "진짜 말도 안 되는 상황"이라고, "당장 가족 품에 돌려보내라"며 대신 화를 내었다. "윤기가 눈물이 그렁그렁해 맘 아프다"며 공감(共感)이 번졌다. "후원이 필요하면 얼마든 하겠다"는 도움의 손길도 넘쳐났다. 방법을 꼭 찾겠다고, 절대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했다.
전쟁통을 뚫고 살아왔는데 아빠와 떨어진 윤기를 위해서, 생전 처음 보는 고양이임에도 말이다. 누군가는 언론사에 제보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카페와 SNS에 올리고 연대에 나섰다. 나 역시 독자의 제보를 받아 알게된 거였다.
윤기 아빠 : 처음 나서준 건 '나비야사랑해'였어요. 이어 '케어'에서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주셔서 안심을 시켜줬어요. 법령이 있지만 예외 규정으로 입국할 수 있다고, 네 개의 나라 사례를 보내주셨지요. 특히 케어가 "검역을 통과하지 못한 동물들이 안락사될 수 있다"고 SNS 등에 글을 올려주신 뒤에 반응이 오기 시작했어요. '동물자유연대'에서도 목소릴 내고, 검역본부와의 회의에 들어가주셨고요.
형도 : 연대의 힘이라는 게 느껴져요. 그게 효과가 있었던 거지요. 다행스럽게도요.
윤기 아빠 : 맞아요, 민원이 많이 들어가고 하니까 윗선까지 보고가 올라갔나봐요. '일주일만 기다려보자'했는데 생각보다 빨리, 윤기가 국내에서 검역할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자기들이 생각해도 말이 안 되니까, 달라진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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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속 방공호에서도 품었던 '윤기'…3주 만에 만나니 '두근두근', 기뻐━
그리고 이날(26일), 윤기 아빠는 윤기를 만나러 영종도에 오던 길에 '항체 형성 결과 통과입니다'란 문자를 받았다. 심장이 너무 두근거리고 기분이 좋았단다. 윤기를 데리고 나오는 순간엔 엄청 더 좋았다고. 이젠 헤어지지 않아도 되니까. 새삼 이런 걸 물었다.
형도 : 윤기는 아빠에게 어떤 고양이인가요?
윤기 아빠 : 올해 2월 5일에 우크라이나에서 처음 만났어요. 이상하게 꼬양이(고양이)를 키우고 싶더라고요. 전쟁이 난 뒤엔 다들 "고양이가 중요하냐, 네 목숨이 중하지"라며 이해를 잘 못했어요. 근데 윤기가 애기인데 어떻게 전쟁 지역에 두고 오겠어요.
윤기 아빠 : 우크라이나에서 전쟁 났을 때 겨울이라 추웠거든요. 저녁마다 방공호에 내려가고, 오후에도 사이렌 울리면 내려가고 했어요. 그때마다 윤기를 품에 안고 있었거든요. 안 도망가고 소변도 잘 참더라고요. 잘 때도 제 베개 옆에서 잤고요.
형도 : 그러니 한국서 윤기가 계류장에 있어야 해서, 3주나 떨어져 있는 시간이 얼마나 힘드셨겠어요.
윤기 아빠 : 매주 윤기를 보러 왔거든요. 두고 나올 때마다 너무 힘들었었어요. (계류장이 있는) 영종도에서 묵을 때도 있고, 내려갈 때도 발걸음이 무겁고요. 저는 떨어져 있는 이유를 아는데 얘는 모르니까요.
윤기 아빠는, 윤기가 들어올 수 있도록 함께 목소릴 내어준 이들에게 꼭 하고픈 말이 있다고 했다.
"혼자 힘으론 뭘 해도 움직여지지 않더라고요. 자기 일처럼 마음 아파하고, 대신해서 화내준 분들 덕분에 움직여진 거예요. 그게 아니었으면 지금 어떻게 됐을지 잘 모르겠어요. 심장이 약한 종이라 비행기를 다시 타고 나갔으면, 아파서 안 좋았을 수도 있고요. 정말 진짜로, 너무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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맺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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