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국가의 실력(2)

머니투데이 강기택 산업2부장 | 2022.05.31 03:11
애시당초 에너지나 식량, 환율에 '주권'은 없다. 정치적 수사로 존재할 뿐 실재할 수 없다. 자립도를 높이고, 공급처를 확보하고, 돈(달러)을 비축해 두는 것 외에 달리 할 게 없다.

한국은 석유와 가스를 전량 수입하고, 밀은 99% 사 온다. 자급자족이 안 된다는 것은 곧 독립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식량의 경우, 식량자급률 45.8%, 곡물자급률 20.2%가 한국의 실력이다. 하루 아침에 바꿀 수 있는 수치가 아니다.

러시아가 석유수출을 막으면서 1970년대 아랍국들의 석유 무기화에 따른 '오일쇼크'는 이제 과거의 일이 아니다. 세계 2위 산유국 물량이 시장에서 사라지는데 가격이 안정될 수는 없다. 사람들은 휘발유와 경유가 동시에 2000원대를 찍는 것을 매일 경험하고 있다.

26개 나라가 식량수출 금지 또는 제한에 나서면서 '푸드쇼크'도 점화됐다. 이를테면 인도의 밀과 설탕을 사 먹던 나라는 대체 공급지를 찾아야 하고, 수급 불균형에 따른 가격앙등은 전세계로 번진다. 미국, 호주, 캐나다의 밀을 가져온다고 안심할 수 없다. 이상기온에 따른 작황부진은 언제든 발생한다. 세계 4위 밀 수출국 우크라이나의 파종 감소는 확정된 미래다.

국내 업계의 밀 재고는 제분용은 8월초, 사료용은 10월초까지 남아 있다. 재고를 늘린다고 해도 기존에 쌓아둔 것보다 비싸게 주고 사 와야 한다. 제분용은 라면, 과자, 빵 등 가공식품 가격을, 사료용은 소고기 등 육류 가격을 밀어 올릴 것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끝나면 모든 것이 제 자리를 찾을 것이라고 말하는 이들은 그 이전부터 에너지와 식량 가격이 치솟고 있었다는 사실을 놓치고 있다. 지난해 국내 원유 수입과 LNG 수입은 각각 50.7%, 61.5% 급증했다. 농산물 수입은 22.4% 증가했다.

이 추세는 올해도 달라지지 않았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4월 수입금액지수는 1년 전보다 19.4% 높아졌다. 광산품과 농림수산품의 수입금액지수 상승률이 각각 69.6%, 27.7%였다. 수입 가격이 수출가격보다 오름세가 가팔라 순상품교역지수가 13개월째 떨어졌다.


무역수지 적자는 1월부터 지난 20일까지 100억 달러를 넘어섰다. 1996년 206억 달러의 사상최대 무역수지 적자를 낸 뒤 1997년 IMF 외환위기를 맞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나던 해에도 133억 달러의 무역적자를 냈다.

원재료나 반제품을 가져와 완제품을 만들어 파는 가공무역 국가는 구조적으로 무역적자가 나면 안 된다. 극적 반전이 없다면 연간 무역적자는 확실하고 역대 최대 무역적자도 각오해야 한다. 그 자체로 심각한 사안이다.

이대로 간다면 결론은 상투적이고 결과는 비극적일 것이다. 즉 '수출의존도가 높은 한국경제의 대외신인도가 떨어지고, 외국인 투자자가 이탈하면서 환율이 급등한다'는 공식을 따를 것이다. 1997년과 2008년의 반복이다.

에너지, 식량, 부채(달러)는 신흥국들부터 타격을 줄 것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5월에 이어 6·7월 연속 '빅스텝(금리 0.5%포인트 인상)'을 예고했고 그럴수록 신흥국의 돈줄은 더 마를 것이다. 한국도 원달러 환율 1200원대에 익숙해져야 하는 시점이 됐다. 이는 에너지,식량 등의 수입물가 상승을 의미하며 이렇게 소모된 달러는 다시 환율을 끌어올릴 것이다.

정부가 산업용 원자재와 밀, 식용유 등에 대한 할당관세 적용과 커피 등 일부 품목에 대한 부가가치세 면제 방안을 내놓았지만 한계는 명확하다. 기업은 가격전가 유혹에 시달릴 것이며 비록 정부가 가격통제를 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물밑에서 기업과 신경전을 벌이는 것까지 멈출 수 없을 것이다. 이 상황에서 개인들은 각자도생을 궁리하는 수 밖에 없다. 안타깝지만, 그런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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