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 적자 30조인데, 대책은 고작 1조 짜리?..."확 바꿔야"

머니투데이 세종=조규희 기자 | 2022.05.30 06:10

[MT리포트]억눌린 전기요금의 역습①

편집자주 | 지난 정부 시절 물가안정을 이유로 억누른 전기요금이 한국전력공사의 대규모 적자라는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시장의 원리를 거스른 대가는 혹독하다. 한전은 보유 부동산 자산, 자회사 지분 등 팔수 있는 건 모두 팔아 위기를 넘겠다는 각오다. 하지만 왜곡된 전기요금 체계, 전력산업 시장 구조를 개선하지 않고선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지적이다.

(나주=뉴스1) 박영래 기자 = 폭염이 이어지면서 냉방용 전력 사용이 늘고 경기회복에 따른 산업용 전력수요도 증가한 가운데 27일 오후 전력거래소 중앙전력관제센터 직원들이 전력 수급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전력거래소는 7월 2~3주 전력 예비율은 10% 이상 수준을 기록하며 전력수급은 안정적으로 유지관리되고 있다고 밝혔다.(전력거래소 제공)2021.7.28./뉴스1

1분기에만 8조원에 육박하는 역대 최악의 적자를 기록한 한국전력공사를 위해 정부가 '긴급정산상한가격 제도'(이하 상한제)라는 대책을 내놨지만 한전을 경영위기에서 구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예상되는 한전의 적자가 30조원에 달하는 반면 상한제 도입에 따른 효과는 1조원 수준에 그칠 것으로 분석된다는 점에서다. 민간 발전사들에게 일방적으로 부담을 떠넘기는 상한제와 같은 미봉책 대신 전력가격 결정 방식 개선과 전력시장 구조 개편 등 근본적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29일 산업통상자원부가 '전력시장 긴급정산상한가격 제도'를 행정예고하면서 제시한 규제영향분석서에 따르면 한전은 상한제 도입시 월 1641억원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으로 한전은 LNG(액화천연가스), 유연탄 등을 연료로 사용하는 민간발전사에 줘야하는 1422억원을 아낄 수 있다. 신재생 에너지 발전의 경우 219억원이다. 상한제는 무조건 매달 적용되는 것이 아니고, 발동에 조건이 있다는 점에 비춰볼 때 연간 비용절감 효과는 1조원 안팎으로 추산된다.

반면 올해 1분기 한전의 영업손실(잠정)은 7조7869억원이다. 이미 지난해 영업손실(5조8601억원)을 넘어섰다. 시장에서는 연말까지 최소 20조원에서 최대 30조원의 적자를 예상한다. 상한제로는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산업부 관계자는 "한전의 적자가 크게 누적돼 있는 상황에서 상한제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이라며 "현재 쌓여있는 적자를 걷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향후 지금과 같은 비상상황을 대비하기 위한 제도"라고 말했다.

상한제의 피해자인 민간 발전사들은 법적 대응도 불사한다는 입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얼마 전에도 용량요금을 줄인다며 시장에 개입해놓고 또 민간발전업체 마진을 깎으려고 하니 답답하다"며 "과거 민간발전이 힘들을 땐 구제할 생각도 없었으면서 이제와 이러는 게 말이 되느냐"고 말했다.

한전의 누적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국제 연료 가격 폭등 같은 비상 상황도 대비해야 하지만 전력 공급 시장의 구조적 문제 해결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단일 도매 가격의 결정 구조, 독점적 전력도매 시장 등은 한전의 구조적 적자의 원인일 뿐만 아니라 전력 시장 발전의 걸림돌로 평가된다.

국내 전력시장은 CBP(Cost Base Pool, 변동비) 반영 구조로 작동한다. 한전이 전력거래소를 통해 전기를 구매하는 가격은 전력도매가격(SMP)으로 결정되는데 SMP 결정 구조는 발전기 운영 비용과 연동된다. 전력거래소는 원전, 석탄, LNG, 신재생 에너지 등 발전사들이 보유한 발전기 운영 비용을 책정한 후 필요한 전력량 만큼 낮은 발전 단가의 발전기부터 돌린다.

발전 단가에는 발전 유형, 발전기 노후화 정도, 적용 기술 등이 영향을 미치지만 가장 비중이 큰 건 연료비다. 전력통계시스템에 따르면 27일 기준으로 연료비 단가는 1 kWh(킬로와트시) 당 원자력 6.36원, 유연탄 91.36원, 무연탄 105.09원, LNG 178.47원, 유류 297.56원 순이다.


전력 수급을 위해 원전, 석탄 발전소에서 전력을 생산하다 LNG 발전소까지 돌리게 되면 SMP는 LNG 발전기 단가로 결정된다. 연료별, 발전기별 발전 단가가 다름에도 SMP는 가장 높은 발전 단가로 고정되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발전 단가가 낮은 원전과 유연탄 발전소는 이익을 보게 되는 구조다. 업계와 전문가들 사이에서 연료원별, 발전유형별 공급가격 시스템을 구축하거나 가격 입찰제 도입 필요성을 제기하는 이유다.

조영탁 전 전력거래소 이사장은 "현재 SMP는 발전 단가가 낮은 발전사는 큰 이익을 보는 구조로 돼 있다"며 "연료원별로 전력도매 가격을 산정하는 시스템이 있다면 이런 비합리적 구조도 해소될 뿐 아니라 한전의 적자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발전유형별 가격 시스템 구축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지난해 생산된 총 전력은 13만4139MW(메가와트)로 원자력 2만3250MW, 유연탄 3만6938MW, LNG 4만1683MW, 바이오 1445MW, 풍력 1708 MW, 해양 256MW 등이다. 전력 공급 규모에서 원자력, 화력, 신재생 등 유형에 따라 공급량이 다르고 발전 단가도 다른 만큼 유형별 가격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발전사 간의 가격 경쟁을 유도하는 가격입찰제 도입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있다. 정부 관계자는 "전력거래소가 가격입찰제 도입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안다"며 "현행 SMP는 정부가 독점적으로 단일 가격을 정하는 구조라면 가격입찰은 사업자가 생산원가에 이윤을 반영한 가격으로 입찰을 하고 정부는 낮은 가격의 사업자부터 선택을 하면 되는 구조"라고 말했다.

이밖에 정책 전원과 시장 전원의 분리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원전, 재생발전설비, 신기술설비 등은 정부의 정책이나 감축 목표에 따르는 정책 자원으로 분류되고 LNG, 유연탄, 원유 등은 시장 전원으로 볼 수 있다. 이같은 분류를 통해 사실상 독점 시장인 전력 도매시장을 국책 시장과 민간 시장으로 나누는 방안도 제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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