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쇄살인과 타임리프의 절묘한 결합, '샤이닝 걸스'

머니투데이 이주영(칼럼니스트) ize 기자 | 2022.05.25 14:27
사진제공=애플TV+


단순한 연쇄 살인마에 대한 이야기인 줄 알았다. 아니었다. 연쇄 살인이 중심에 있지만 그 곁엔 타임 리프라는 시공간 초월의 기폭 장치가 숨겨져 있다. 경찰 또는 FBI에 의한 사건 조사가 아닌 피해자와 신문 기자의 사건 추적이 중심에 있다. 그래서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조디악’ 같은 전개인 듯 하다가, 어떨 때는 한국 드라마 ‘터널’과도 유사한 점이 있어 보였다. 하지만 이 시리즈는 뭔가 다르다. 애플티비+의 오리지널 시리즈 ‘샤이닝 걸스’에 대한 이야기다.


이 시리즈가 처음에 필자의 주목을 끈 건 다름 아닌 캐스팅이었다. ‘인비저블맨’을 위시해 공포 스릴러 장르에서 독보적 존재감을 드러낸 배우 엘리자베스 모스가 주연으로 나섰다는 점. OTT 플랫폼에 올라온 시놉시스, 그러니까 잔혹한 공격의 피해자가 신문에서 자신과 유사한 피해자 기사를 보고, 그 기사를 쓴 기자와 함께 살인마를 찾아 나선다는, 것만 보고도 그와 작품이 찰떡궁합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넷플릭스 시리즈 ‘나르코스’에서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를 완벽하게 재현했던 배우 와그너 모라가 신문기자로 출연한다는 것 역시 주목할 만한 점이었다. 여기에 더해 타이틀 롤에선 마치 특별 출연처럼 언급되지만 그 누구보다 주인공에 가까운 ‘빌리 엘리어트’의 제이미 벨이 살인범으로 나온다는 것 역시 ‘샤이닝 걸스’를 플레이할 수 밖에 없는 매혹 포인트였다.


‘샤이닝 걸스’의 캐스팅은 일단 완벽하다고 말할 수 있다. 시즌 1의 에피소드 6까지 본 현 상황(필자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에선 여기까지가 최신작이다)에서 엘리자베스 모스가 연기한 커비의 주변 환경이 변하는 이유를 명확하게 알 수 없다. 심지어 제이미 벨이 맡은 연쇄 살인범 하퍼는 어떻게 시공간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지에 대한 과학적 설명도 충분치 않다. 그럼에도 커비 역의 엘리자베스 모스는 피해자로서의 트라우마를 잘 표현해내고, 하퍼 역의 제이미 벨은 언제 어느 때나 존재했던 광기 어린 살인마로서의 캐릭터를 잘 그려낸다.


사진제공=애플TV+


‘샤이닝 걸스’는 2013년 발간되었던 남아공 출신의 작가 로런 뷰크스의 베스트셀러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소설은 살인마 하퍼에 대해 먼저 설명하고 내러티브를 이어간다면, 시리즈의 경우는 그에 대한 설명이 후반부에 자리한다.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의 논쟁이 일어날 수 있는 부분인데, 시리즈의 경우는 그 덕분에 더 흥미롭게 진행되고 있지 않나 싶다. 사실 이 작품의 에피소드 1에서부터 거의 5화에 이르기까지 커비의 주변 콘텍스트(헤어 스타일이 달라지거나, 갑작스레 결혼한 상태이거나, 반려동물이 고양이였다가 강아지였다가 하는 등)가 왜 시시각각 변하는지, 하퍼가 어떻게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살인행각을 벌일 수 있는지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없다. (원작 소설을 접하지 않은 시청자라면) 일정 부분 답답한 점이 없진 않지만 그 점이 되려 다음 화를 기다리고, 시청하려는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결국 이 의문은 대략 에피소드 6 정도에 이르러서야 조금이나마 해소된다. 바로 ‘더 하우스’라는 공간의 존재다. 이 곳이 타임리프를 가능하게 하는 일종의 장치라는 게 밝혀지면서다. 이로써 ‘샤이닝 걸스’는 8화로 예정되어 있는 시즌 피날레로 의미 있게 나아간다. 물론 여전히 커비와 기자 댄이 어떻게 하퍼의 타임리프를 멈추게 할지는 오리무중이다. ‘샤이닝 걸스’가 주는 또 다른 매력은 오랜만에 시리즈로 만나는 촘촘하게 잘 짜여진 타임리프 소재의 스릴러라는 점이다. 조나단 드미의 걸작이라 해도 무방한 영화 ‘양들의 침묵’은 수사관 클라리스(조디 포스터)는 물론 살인마 한니발 렉터(앤서니 홉킨스)에 포커싱을 맞추었다. ‘샤이닝 걸스’ 역시 제이미 벨의 하퍼에게 많은 무게가 실려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사실 이 작품 속에서 타임리프라는 건 일종의 장치일 따름이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과학적으로 더 하우스의 존재를 설명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 작품이 ‘백 투 더 퓨쳐’처럼 드로리안에게 포커스를 두는 게 아니니 말이다.


사진제공=애플TV+


그런 이유로 ‘샤이닝 걸스’는 시공간을 오가는 하퍼의 기술적 의문보다는 반복 형태의 살인을 저지를 수 밖에 없는 심리 기제에 더 집중한다. 그래서 에피소드를 몇 번 돌려보면 발견할 수 있는 굉장히 미세한 장치들이 존재한다. 어린 시절의 커비를 만난 하퍼의 얼굴에 아로새겨진 긴 상처 자욱과 같은 장치 등 말이다. 참, 여기에 좀 누락된 인물이 한 명 있다. 앞에서 언뜻 이름만 호명하고 넘어간 기자 댄 역의 와그너 모라다. 시즌 1의 첫 중반까지는 커비와 댄이 주인공처럼 보인다. 후반부로 가며 하퍼와 커비가 전면에 나서며 그의 존재감이 살짝 흐려지긴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퇴물 기자이지만 여전히 촉은 날카로운 댄의 캐릭터도 꽤나 매력적이다. ‘나르코스’에서 범죄 집단 두목으로서의 잔혹과 가족에 대한 철저한 사랑을 극단으로 보여줬던 것처럼 이 작품에서도 기자로서의 도덕성과 특종에 대한 갈망 사이의 혼란을 잘 표현해낸다.


각설하고 ‘샤이닝 걸스’는 훌륭한 원작을 토대로 잘 각색된 각본, 좋은 배우들의 절묘한 합이 시카고라는 도시의 시간 변화 속에 잘 어우러져 있다. 그래서 보는 이는 스릴러 특유의 긴장감을 지속적으로 간직한 채 캐릭터들에게 가졌던 의문에 대한 답을 에피소드별로 조금씩 얻어나가게 된다. 아직 진행 중이고, 또 시즌 2가 제작될지에 대해선 아무런 정보가 없지만 ‘샤이닝 걸스’는 한 번쯤 몰아보기를 해도 될 만한 충분한 저력을 가진 작품임에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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