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후]굿바이 코로나, 굿바이 정은경

머니투데이 채태병 기자 | 2022.05.21 05:30

편집자주 | 뉴스와 이슈 속에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통해 뉴스와 이슈를 짚어봅니다.

정은경 전 질병관리청장의 변화 모습. 윗줄 왼쪽 사진부터 시계 방향으로 2017년 7월 질병관리본부장 취임, 2018년 9월 메르스 재확진 브리핑, 2020년 1월 코로나19 첫 브리핑, 2020년 9월 질병관리청장 임명, 2021년 5월 중대본 회의, 2022년 5월 중대본 마지막 회의. /사진=뉴스1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로 코로나19(COVID-19) 팬데믹의 어두운 터널이 끝나가고 있다는 희망이 고개를 드는 가운데 코로나 시대의 K 방역의 아이콘이자 영웅이었던 인물이 조용히 무대를 내려왔다. 지난 2020년 1월말 국내 최초 확진자 발생 이후 약 2년4개월 동안 대한민국의 '대(對) 코로나19 방역' 최전선에서 야전사령관 역할을 수행한 정은경 초대 질병관리청장이 그 주인공이다.

질병관리본부가 청 단위의 조직으로 승격(2020년 9월)되기 이전에도 정 전 청장이 질병관리본부장(2017년 7월 임명)을 역임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정 전 청장은 무려 4년10개월가량을 'K 방역의 수장' 역할을 담당한 셈이다.

새로 출범한 윤석열 정부가 신임 질병관리청장으로 백경란 성균관대 의대 교수를 임명하면서 정 전 청장은 지난 17일 퇴임했다. 국내 코로나19 억제를 위해 그가 보여줬던 헌신과 성과, 그럼에도 돌출됐던 정치적 방역논란 등을 되짚어본다.



'코로나 소방수' 활약…과학 방역 집중한 '헌신의 아이콘'


정은경 초대 질병관리청장이 지난해 10월 서울 종로구 정부청사에서 언론 브리핑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김휘선기자
정 전 청장은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2017년 7월 질병관리본부장으로 임명됐다. 의사 출신의 감염병 위기관리 대응 전문가로 낙점받았다.

그로부터 약 2년6개월 후인 2020년 1월 국내에서 최초로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하며 초유의 팬데믹이 발발했다. 코로나19 바이러스와의 길고 긴 전쟁의 시작이었다.

예방법이나 치료법을 전혀 알지 못하는 새로운 감염병의 등장에 국민적 공포감이 사회를 뒤흔들었다.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정 전 청장은 '헌신의 아이콘'으로 거듭났다.

코로나19 유행 초기 대구·경북 지역에서 확진자 수가 폭증했을 당시 머리 감는 시간도 아끼겠다며 숏컷을 감행하고, 점점 늘어가는 흰머리와 닳고 닳은 구두의 모습 등이 포착돼 화제를 모았다. 당시 그런 정 전 청장의 모습을 보며 국민들은 코로나 공포와 불안감을 떨쳐낼 수 있었다.

또 정 전 청장은 데이터와 실제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한 '과학 방역'에 초점을 맞춘 정책 추진에 힘썼다.

정 전 청장은 퇴임 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코로나19 유행 초기에는 관련 지식이 부족해 (방역 정책의) 과학적 근거가 낮았다"라며 "이후 오랜 기간 대응하며 발현 증상, 위험 요인, 면역도 등 데이터를 축적해 체계적 방역이 가능해졌다"라고 밝혔다.



공직자 정은경의 삶…메르스 사태로 위기 겪기도



정은경 초대 질병관리청장이 17일 오후 충북 청주시 질병관리청에서 직원들과 이임 인사를 나누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

1965년생인 정 전 청장은 광주 출신으로 전남여고, 서울대 의과대학(학사), 서울대 보건대학원(석사), 서울대 의학대학원(박사) 등을 졸업했다.

정은경 전 청장은 1995년 질병관리본부의 전신인 국립보건원 연구관 특채로 공직에 입문했다. 이후 보건복지부 응급의료과장, 질병관리본부 만성질환과장·질병예방센터장·긴급상황센터장 등을 역임했다.

2015년 국내에서 첫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MERS) 사태가 벌어졌을 당시 정은경 전 청장은 질병예방센터장으로 근무했다. 당시에도 국내 방역 정책을 이끄는 역할을 맡고 있었던 것.


그러나 당시 과거 겪어보지 못한 신종 감염병 사태에 질병예방센터는 효과적인 대응에 실패했다는 평을 받았고, 결국 정은경 당시 질병예방센터장은 정직 권고를 받기도 했다.

2020년 1월 국내에서 처음 시작된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자, 정부는 2020년 9월 질병관리본부를 질병관리청으로 승격시켰고, 초대 질병관리청장으로 당시 질병관리본부장이었던 정 전 청장을 승진 임명했다.

정 전 청장은 문재인 전 대통령으로부터 "내가 뽑은 사람"이라고 불리며, 무한 신뢰를 받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가 초대 질병관리청장으로 임명될 때 문 전 대통령은 직접 임명장을 전달하기 위해 충북 청주시로 향하기도 했다.

당시 문 전 대통령은 정 전 청장과 질병관리청 직원들에게 '홍삼 스틱'을 전달하며 격려와 응원을 보내 화제를 모았다.



통제하고 또 통제했지만…확진자 규모 '세계 8위'


/사진=세계보건기구(WHO) 코로나19 대시보드
정 전 청장이 이끌었던 'K 방역'은 코로나19 유행 초기부터 신속한 확진자 격리, 감염병 전파 억제를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 통제로 가시적인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20일 기준 한국의 코로나19 누적 확진자 규모는 세계 8위에 올라있다. 이날 세계보건기구(WHO) 코로나19 대시보드에 따르면 국내 누적 확진자 수는 1786만1744명에 달한다.

미국(약 8202만명), 인도(약 4312만명), 브라질(약 3072만명), 프랑스(약 2840만명), 독일(약2594만명), 영국(약 2220만명), 러시아(약 1827만명) 등 7개 국가만이 한국보다 누적 확진자 수가 많다.

코로나19와 관련해 시민들에게 강력한 통제를 걸지 않았던 해외 국가와 달리, 한국은 특정한 시간에 시설 이용을 제한하거나 일정 수 이상의 사람이 모이는 것을 금지하는 등 조치를 취했다는 점을 고려 시 빼어난 성적표를 받았다고 분석하긴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또 2020년 12월 국내 3차 대유행 당시 병상과 인력을 원활하게 수급하지 못해 하루 1000명이 넘는 확진자가 입원하지 못하는 등 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안정성이 낮다는 이유로 정부가 감염병 사태 초기 백신 확보에 적극 나서지 않아 '백신 대란'이 발생한 것도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백신 수급에 어려움을 겪자 정부는 지난해 5월 고령층 접종 중단, 1차와 2차 접종 간격 조정 등에 나선 바 있다. 다만 국민의 3분의 1가량이 코로나19에 노출된 높은 확진율에 비해 치명률이 약 0.13%로 세계 최저 수준인 점은 우수한 성과다.

특히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방역당국이 이전과 달리 적극적으로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 조치에 나서고 대규모 확진자가 발생하면서 정치적 방역 논란이 일어났고 정 전 청장에게도 비판이 쏟아졌다. 정 전 청장은 퇴임 당일인 17일 국회에서 정치방역 논란에 대해 "질병관리청은 과학적인 전문성을 기반으로 한 공중보건기관이기 때문에 항상 과학적 근거를 기반으로 의사결정 해왔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일부 논란에도 국민들이 힘겨운 코로나 시대의 삶을 버티며 살아내는 데 있어 정 전 청장이 버팀목 역할을 담당했다는 사실을 부인하긴 어렵다. 정 전 청장의 퇴임은 그만큼 팬데믹의 끝이 다가오고 있다는 신호로도 읽힌다. 떠나가는 그의 뒷모습에 박수를 보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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