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물가 때문에…" 30년만에 반찬 줄이는 무료 급식소 [르포]

머니투데이 김성진 기자 | 2022.05.19 05:00
30년 동안 운영된 서울 종로구 원각사 무료급식소의 18일 점심 식단. 평소였다면 반찬 세 종류가 올라야 했지만 최근 식재료 값이 올라 반찬을 한 종류 줄여야 했다. 8년간 총무 일을 한 강소윤씨(55)는 "여기에 나물 반찬이 올라갔다면 얼마나 예뻤을까"라 말했다./사진=김성진 기자
"여기에 초록빛 나물 반찬이 올라갔다면 얼마나 예뻤을까요."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원각사 무료급식소에서 만난 급식소 총무 강소윤씨(55)는 점심 식판을 보면 한숨을 내쉬었다. 적어도 세 종류는 제공돼야 할 반찬이 어묵볶음과 김치만 올라가 있었던 탓이다. 3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강씨는 "식사가 부실해진 게 사실"이라며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식재료값 상승 탓이다. 원각사 급식소는 1992년에 문을 연 이후 이날 처음으로 반찬 가짓수를 하나 줄였다. 1년 전쯤 1800~2000만원 수준이던 한달 재료비가 이달 2300만~2500만원 수준으로 불었다. 고기 반찬은 엄두도 못 낸다. 이날 어묵볶음에도 평소보다 어묵은 적게, 양파·당근은 많이 들어갔다. 강씨는 "맘 같아선 밥 위에 계란 후라이라도 넉넉히 올려드리고 싶다"며 "하지만 물가가 곧 잡힐 것 같지는 않아 걱정"이라고 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등 악재가 겹쳐 식재료값이 전에 없던 수준으로 오르자 무료급식소들이 대책 마련에 나섰다. 반찬 가짓수를 줄이고, 값싼 재료를 찾지만 결국 물가가 잡히기만을 기다리는 실정이다. 급식소들 사이에선 물가가 계속 오른다면 곧 문을 닫는 곳이 잇따를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4.8% 올랐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13년 6개월만에 최고 상승률이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세계 각국이 식량 안보에 열을 올리고, 이상 기후도 겹쳐 식량 물가 오름세가 가파르다.
18일 오후 12시쯤 서울 종로구 원각사의 무료급식소에서 고령층 10여명이 점심 식사를 하고 있다./사진=김성진 기자
무료급식소들은 허리를 졸라맨다. 원각사 급식소를 비롯한 수많은 무료급식소는 정부 지원 없이 재정을 개인과 기업 후원에 의존한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후원도 줄어 '긴축 재정'이 불가피하다. 원각사 급식소는 하루 수백명에게 제공하던 도시락 사업을 이달 초에 접었다. 하루에 약 10만원씩 들어가는 포장 비용도 줄여야하는 상황이다.

통상 밥통 세개로 200여명의 끼니를 해결해야 한다. 밥이 다 떨어지면 급식소 반장 김정호씨(71)는 줄을 선 사람들을 돌려보낸다. 어떨 때는 300~400명씩 급식소를 찾아올 때도 있다.


준비된 양은 한정돼 있어 밥이 늘 부족하지만 밥 만큼은 더 달라는 사람들에게 언제나 넉넉히 더 배식한다. 이날도 5명 중 한명 꼴로 밥을 더 달라고 했다. 급식소를 찾은 사람들은 "왜 이것밖에 안 주느냐, 고양이 밥이냐"고 했다.

노인들 중에는 급식소가 주는 점심 한끼가 하루 식사의 전부인 이들도 있다. 한끼를 아침, 점심, 저녁 나눠서 먹으려고 비닐 봉투에 담아가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김덕영씨(77)도 이날 아침을 라면으로 떼우고 점심에 급식소에 왔다. 김씨는 "근처에 한 급식소는 코로나19로 형편이 어려워지자 밥 말고 떡을 주더니 어느 새부터 물 한병만 줬다"며 "반찬이 한 종류 줄었지만 이렇게 밥을 주는 것만으로 고마운 마음이 크다"고 말했다.

이런 사정을 알기 때문에 반찬을 줄인 급식소 봉사자들의 가슴은 찢어진다. 한형주씨(54)는 이날 어묵볶음 배식 봉사를 맡았다. 한씨는 "마음 같아선 양껏 드리고 싶다"며 "돌려보낼 때 마음이 무너져내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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