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학 아워홈 회장 별세… '한국 산업화 역사의 산 증인'

머니투데이 박미주 기자 | 2022.05.12 10:14

LG그룹 창업주 삼남, 1959년 소령 전역후 줄곧 산업현장서 뛰어… '국민치약' 페리오 등 개발

고(故) 구자학 아워홈 회장/사진= 아워홈
구자학 아워홈 회장이 12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2세다. 1930년 7월15일 경상남도 진주시에서 고(姑) 구인회 LG그룹 창업주의 셋째 아들로 태어난 그는 해군사관학교에 진학해 1959년 소령으로 전역한 뒤 줄곧 산업현장에 있었다. 군복무 시절엔 6.25 전쟁에 참전했고 충무무공훈장, 화랑무공훈장, 호국영웅기장 등 훈장을 받기도 했다. 1957년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둘째 딸 이숙희씨(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누나)와 결혼으로 삼성가와 인연을 맺었다.



'사업보국' 일념으로 산업 불모지 개척


구자학 회장이 1981년 럭키그룹 시무식에서 임직원들에게 신년사를 전하는 모습/사진= 아워홈
그는 한창 산업화가 진행되던 당시 "나라가 죽고 사는 기로에 있다. 기업은 돈을 벌어 나라를, 국민을 부강하게 해야한다"는 '사업보국(事業報國)'의 일념으로 산업 불모지를 개척했다. 1960년 한일은행을 시작으로 호텔신라, 제일제당, 중앙개발, 럭키(現 LG화학), 금성사(現 LG전자), 금성일렉트론(現 SK하이닉스), LG건설(現 GS건설) 등 여러 산업을 거치며 일선에서 뛰었다.

1980년 럭키 대표이사 재직 시절 구 회장은 기업과 나라가 잘 되려면 기술력만이 해답이라고 여겼다. 당시 세계 석유화학시장 수출 강국인 일본과 대만을 따라잡기 위해 기술개발에 모든 역량을 집중했다. 구 회장은 "우리는 지금 가진 게 없다. 자본도 물건을 팔 수 있는 시장도 없다. 오직 창의력과 기술, 지금 우리 위치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해 고민하고 실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모든 현장을 누볐다. 어느 공장을 가도 그의 손때가 묻지 않는 곳이 없는 이유다.
1986년 금성사 대표이사 재직 시절 마이크로웨이브 오븐 공장 준공식 참석한 구자학 회장/사진= 아워홈
"남이 하지 않는 것, 남이 못하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던 구 회장은 '최초'라는 수식어를 달고 살았다. 럭키는 1981년 당시에 없던 잇몸질환을 예방하는 '페리오' 치약을 개발해 '국민치약'으로 등극시켰다. 1983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플라스틱 PBT(폴리부틸렌테레프탈레이트)를 만들어 한국 화학산업에 일대 전기를 마련했다. 1989년 금성일렉트론에서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램버스 D램 반도체를 개발했다. 1995년 LG엔지니어링에서는 굴지의 일본 기업들을 제치고 국내 업계예선 처음으로 일본 플랜트 사업을 수주했다. 현재 LG의 근간이 된 주요사업의 시작과 중심에는 늘 그가 있었다.




일개 사업부를 종합식품기업 아워홈으로 만들기까지


2009년 아워홈 매출 1조원 달성 후 연 비전선포식에 참석한 구자학 회장/사진= 아워홈
구 회장은 2000년 LG유통(現 GS리테일) FS사업부(푸드서비스 사업부)로부터 분리 독립한 아워홈의 회장으로 취임해 20여년간 아워홈을 이끌었다. 그동안 아워홈 매출은 2125억원(2000년)에서 지난해 1조7408억으로 8배 이상 성장했다. 사업 포트폴리오도 다양해졌다. 단체급식사업과 식재유통사업으로 시작한 아워홈은 현재 식품사업, 외식사업과 함께 기내식 사업, 호텔운영업까지 영역을 확장했다.

LG에서 화학, 전자, 반도체, 건설, 화장품에 이르기까지 핵심사업의 기반을 다진 경영자가 LG유통에서 가장 작은 아워홈 사업부를 가지고 분사 독립할 때 주변에서 의아해했다. 역량에 비해 너무 작은 규모의 사업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는 이 사업부를 연매출 2조원에 가까운 종합식품기업으로 키웠다.

구 회장은 음식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다. 먹는 만큼이나 만드는 과정을 좋아했다. 미국 유학 중 현지 한인마트에 직접 김치를 담가주고 용돈벌이를 했을 정도다. LG건설 회장 재직 당시 LG유통 FS사업부에서 제공하는 단체급식이 개선할 점이 많다고 느꼈다. 2000년 아워홈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맛과 서비스, 제조, 물류 등 각 과정에 깊이 관여했다.


그는 단체급식사업도 연구개발(R&D) 인프라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아워홈은 2000년 단체급식업계 첫 식품연구원을 설립하게 된 배경이다.. 당시 "단체급식 회사가 대량 생산만 하면 되는데 굳이 연구원까지는 불필요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으나 구 회장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아워홈 식품연구원은 설립 이래 지금까지 1만5000건의 조리법을 개발했다. 노로바이러스 조사기관, 축산물위생검사기관, 농산물안전성검사기관 등 공인시험기관으로서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해외로도 나갔다. 아워홈은 2010년 중국 단체급식사업을 시작했다. 2017년 베트남 하이퐁 법인 설립을 통해 베트남 시장에 진출했으며 2018년에는 기내식 업체 HACOR를 인수하며 기내식 사업에도 발을 디뎠다. HACOR는 현재 LA국제공항에 취항하는 항공사들에 기내식을 납품하고 있다. 지난해엔 미국 공공기관 식음서비스 운영권을 수주했다. 이어 폴란드에 법인을 설립하고 유럽 시장에 입성했다.



겸손한 경영자 구 회장… "같이 고생한 직원들에 감사"


2018년 직원과 이야기 나누는 구자학 회장/사진= 아워홈
"국민 생활과 가장 밀접한 먹거리로 사업을 영위하는 식품기업은 막대한 사회적 영향력과 책임감을 동시에 짊어져야 한다"는 철학을 바탕으로 아워홈을 경영한 구 회장은 직원들에 항상 감사의 뜻을 표한 겸손한 경영자로도 유명하다.

와병 전 아워홈 경영회의에서 구 회장은 "요새 길에서 사람들 보면 정말 커요. 얼핏 보면 서양사람 같아요. 좋은 음식 잘 먹고 건강해서 그래요. 불과 30년 사이에 많이 변했습니다. 나름 아워홈이 공헌했다고 생각하고 뿌듯합니다"라고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구 회장은 또 "은퇴하면 경기도 양평에 작은 식당 하나 차리는 게 꿈이었는데, 이렇게 커져 버렸어요. 그동안 같이 고생한 우리 직원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해요"라고도 했다.

베스트 클릭

  1. 1 의정부 하수관서 발견된 '알몸 시신'…응급실서 실종된 남성이었다
  2. 2 "건드리면 고소"…잡동사니로 주차 자리맡은 얌체 입주민
  3. 3 [단독]음주운전 걸린 평검사, 2주 뒤 또 적발…총장 "금주령" 칼 뺐다
  4. 4 22kg 뺀 '팜유즈' 이장우, 다이어트 비법은…"뚱보균 없애는 데 집중"
  5. 5 "이대로면 수도권도 소멸"…저출산 계속되면 10년 뒤 벌어질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