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횡령 책임론에 대한 괜한 걱정

머니투데이 이학렬 금융부장 | 2022.05.04 03:02
우리은행 본점 직원이 614억원을 횡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영업점 직원이 횡령하는 사건은 종종 있었지만 본점 직원이 대규모로 돈을 빼돌린 사건은 드물다. 금융당국 관계자조차 "처음에 소식을 들었을 때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다"라고 말할 정도다.

우리은행 직원 A씨는 2010~2011년 우리은행이 매각을 주관한 옛 대우일렉트로닉스 매각 과정에서 이란 가전업체 엔텍합이 낸 계약금과 이자를 3차례에 걸쳐 빼돌렸다. 횡령 사실은 몰취한 계약금을 돌려주기 위해 계좌를 확인하면서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이란 제재로 이란 자금이 묶이자 A씨는 자신이 관리하던 계약금 역시 방치되는 걸 확인하고 '악한 마음'을 품었다. 하지만 계약금 송금이 특별허가되면서 '이기적인 범죄'가 드러났다.

횡령은 내부통제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서 발생했다. A씨는 2012년부터 10년 넘게 기업구조개선 관련 업무를 담당해왔다고 한다. 은행권에선 '고인 물은 썪는다'라는 말이 있다. 순환근무제를 도입, 주기적으로 업무를 바꿔준다. 오랫동안 같은 업무를 하면 전문가가 될 수 있지만 사고 발생 가능성 때문에 전문가 양성을 포기한다. 하지만 A씨는 예외였다.

명령휴가제는 성과를 내지 못했다. 금융회사 지배구조 감독규정에는 금융회사의 내부통제기준에 명령휴가제 도입을 명시하고 있다. 우리은행이 불시에 휴가를 보냈는지, 보냈음에도 비리 등을 확인하지 못했는지는 금융당국 검사를 통해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대규모 자금에 대한 크로스체크도 없었다. A씨가 윗선을 비롯해 주변을 속였다고 하더라도 같이 근무한 다른 사람이 단 한번이라도 크로스체크했다면 발생하지 않을 사고였다. 우리은행은 "매각 당시 근무했던 기업개선 담당 직원들이 거의 퇴사하거나 부서를 이용해 계좌 존재 자체를 아는 직원이 거의 없었다"고 해명했다.

고액현금거래나 이상거래를 걸러내는 시스템도 무용지물이었다. A씨는 2012년, 2015년, 2018년 세차례에 걸쳐 돈을 빼돌렸다. 갑자기 수백억원의 자금이 인출, 입금됐는데도 어디에서도 확인하는 과정은 없었다.


회계법인과 금융당국도 이번 사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회계법인이 감사할 때는 실제 돈이 있는지 확인해야 하지만 등한시했다. 정은보 금융감독원장은 "회계법인이 외부 감사를 하면서 왜 놓쳤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금감원은 당시 우리은행 감사한 회계법인에 대한 현장조사에 착수, 사실상 감리를 개시했다.

A씨가 돈을 빼돌릴 때 금감원은 여러 차례 우리은행을 검사했다. 특히 금감원은 지난해말부터 2개월간 우리은행 종합검사를 벌였지만 횡령 사실을 파악하지 못했다. 정 원장은 "왜 감독을 통해 밝혀지지 않았는지도 조사할 것"이라고 했다.

거래 과정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거래가 끝나기 전까지 누구도 관련한 돈을 손대지 못하도록 은행 에스크로 계좌에 예치한다. 안전하게 보관하고 있으라고 은행에 맡긴건데 그걸 빼돌린 것이다. 누가 은행을 믿고 돈을 맡길 수 있겠냐라는 우려가 나올 수 밖에 없다. 이원덕 우리은행장은 "고객의 신뢰를 회복하는데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했다. 무엇보다 우리은행과 금융당국이 빠르게 이를 해결해 신뢰가 무너지는 일이 은행권 전체로 번지지 않길 바란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번 사건으로 부실 내부통제시스템과 감사, 검사에 대한 책임론이 불거질 수밖에 없다. 과거 은행 횡령 사고때 임원들은 문책경고를 받았다. 이번에도 예외가 될 순 없을 것이다. 횡령 규모를 고려하면 CEO(최고경영자)도 책임에서 자유롭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회계법인은 부실 감사, 금융당국도 부실 검사에 대해 책임져야 할 것이다.

다만 괜한 걱정이겠지만 책임을 묻는 것이 누구에게 자리를 내주기 위해 누군가를 내보내기 위한 수단으로 쓰이진 않길 바란다. 그건 너무 올드한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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