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도 유쾌했던 아즈텍문명, '인신공양' 넘어선 세계관 본다

머니투데이 유승목 기자 | 2022.05.02 14:53

국립중앙박물관, 한-멕시코 수교 60주년 기념한 특별전…아즈텍 주요 유물 208점 통해 새 인식 제공

지하세계의 신 믹틀란테쿠틀리. /사진제공=국립중앙박물관
2006년 나온 영화 '아포칼립토'는 한국에서 아스텍 문명을 표상할 때 가장 빈번하게 떠올리는 매개체다. 잔인한 정복자들이 피정복민의 심장을 신에게 바치는 '인신공양'은 우리로 하여금 흔히 아스텍과 그들로 대표되는 메소아메리카(Mesoamerica·중앙아메리카 문화권)를 잔혹하고 미개한 집단으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우리가 배우는 세계사는 아스텍의 어리석음을 더욱 부각한다. '바다를 건너 온 하얀 피부를 가진 사람'이란 이유로 스페인에서 온 피사로를 자신들의 신 '케찰코아틀'로 착각해 왕국으로 들여 멸망을 초래한 망국의 군주 목테수마 이야기나, 잔혹했던 아스텍에 대한 증오로 새로운 정복자 코르테스를 도와 동족을 무너뜨린 '메스티소(Mestizo)의 어머니' 말린체의 존재는 아스텍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부추긴다.

사실 아스텍은 마야·잉카와 함께 라틴아메리카(중남미)를 대표하는 역사상 가장 강력했던 제국이자 문명이다. 수도 테노치티틀란 인구만 10만명 안팎으로 당시 유럽을 대표하던 도시인 런던이나 파리, 리스본보다 거대했다. 죽음과 저승의 삶도 유쾌하게 받아들이는, 꽤나 복잡미묘한 세계관과 정치체제를 가졌던 문명으로 잔혹함과 미개함만으로 설명하기엔 무리가 있다.
물과 풍요의 신 찰치우틀리쿠에 화로 . /사진제공=국립중앙박물관
그래서 멕시코인들에게 아스텍은 상처 가득한 역사다. 아스텍 이후 수 백년의 식민지를 거치며 유럽 중심의 역사관으로 왜곡된 아스텍의 이미지가 굳어졌기 때문이다. 문화와 역사의 다양성을 전시 키워드로 내세운 국립중앙박물관이 5월 '이건희 컬렉션'과 함께할 콘텐츠로 아스텍 문명을 고른 까닭이다. 한국과 멕시코가 수교를 맺은 지 60년이 흘렀단 점에서 잔혹한 정복자 이면의 모습을 알리기 위한 것이다.

2일 국립중앙박물관에 따르면 오는 3일부터 한-멕시코 수교 60주년을 기념해 아스테카 문명의 참모습을 만나볼 수 있는 '아스테카, 태양을 움직인 사람들' 특별전이 특별전시실에서 열린다. 물리적·정서적 거리감이 상당한 아스테카 특별전을 국내에서 소개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이번 전시를 위해 적지 않은 공을 들였다. 세계3대 박물관 중 하나로 꼽히는 멕시코 국립인류학박물관을 비롯해 독일 슈튜트가르트 린덴박물관, 네덜란드 국립세계문화박물관 등 멕시코와 유럽의 11개 유수 박물관이 소장한 아스테카 관련 문화유산 208점을 공수했다. 특히 최근 연구 성과를 기반으로 전시를 꾸며 멕시코시티(옛 테노치티틀란)에서 최신 출토된 문화재를 처음으로 공개한다.

신전을 장식한 독수리 머리 석상. /사진제공=국립중앙박물관
이번 전시는 △태양을 움직인 사람들 △아스테카의 자연과 사람들 △정복과 공물로 세운 아스테카 △번영의 도시 테노치티틀란 △세상의 중심, 신성 구역과 템플로 마요르 등 5부로 구성된다. 아스테카 문화와 종교 등 그들의 독특한 세계관과 신화를 소개한 뒤 자연환경과 정치·경제 체재를 설명한다. 수도였던 테노치티틀란의 모습과 이들의 생활상에 대해서도 살펴본다. 25톤(t)에 달하는 아스테카 최고의 조각품 '태양의돌'을 정교하게 만든 재현품과 원주민 그림문자로 제작한 '멘도사 고문서' 속 이미지들은 아스테카에 대한 이해를 높인다.

전시는 아스텍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3부에선 멕시코 전역을 하나로 연결한 아스테카의 활발한 정복전쟁과 공물 징수 체계를 설명하고, 이어지는 4부에선 서로 다른 생태환경의 다양한 물자와 문화를 공유한 꼭지점인 테노치티틀란 곳곳을 꾸몄던 '독수리 머리' 같은 석상 등을 통해 이들의 발전상을 실제 500년 전 이곳에 도착해 놀라움을 금치 못했던 스페인 군인들처럼 몸소 느낄 수 있다.

백미는 5부 '세상의 중심, 신성 구역과 템플로 마요르'다. 테노치티틀란의 신성 구역에서 벌어진 다양한 제의와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살펴보는데, 이를 위해 아스텍에서 가장 유명한 신인 케찰코아틀이 아닌 지하세계으 신 '믹틀란테쿠틀리'를 소환했다. 이를 통해 잔혹하기만 한 것으로 전해진 인신공양이 사실은 사람들을 지배하고 주변 정치집단을 통합하기 위한 방편이었다는 새로운 시사점을 제공한다.
두개골 가면(왼쪽)과 얼굴모양 제의용 칼. /사진제공=국립중앙박물관
이 곳에서 보은 믹틀란테쿠틀리의 해골 같은 모습은 낯설지 않다. 2017년 한국 관객을 눈물바다에 빠뜨린 영화 '코코'의 해골과 묘하게 닮았기 때문이다. 실제 영화의 시간적 배경이자 멕시코의 대표 명절인 '죽은 자의 날'은 그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아스텍까지 닿는다. 죽음을 유쾌하게 받아들이는 영화를 떠올리면 아스텍을 잔혹한 인신공양만으로 재단하기 쉽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민병찬 국립중앙박물관 관장은 "그동안 국립중앙박물관은 대중에게 문화향유 기회를 확대하고 문화와 역사의 다양성을 경험하도록 세계 주요 문명과 문화를 소개하는 특별전을 개최해왔다"며 "이 전시가 역사와 신화가 혼재하고 과장과 왜곡으로 가려졌던 아스테카의 진정한 모습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사진=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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