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엔 진짜 달았어"…멸종한 바나나, 제주서 부활한다

머니투데이 제주=류준영 기자 | 2022.04.28 11:01

[르포]'제주형 그로미셸 바나나' 생산에 나선 제이디파크 데이터팜 가보니

제이디테크 바나나 데이터팜 내부 모습/사진=류준영 기자
16종, 상업용으로 재배 가능한 바나나 품종이 이렇게나 많은지 몰랐다. 개중에는 빨간색, 파란색 바나나도 있다. 더 놀라운 건 전 세계 인류가 현재 일반적으로 먹는 식용 바나나는 단 1종이라는 점이다.

그로미셸과 캐번디시
2018년부터 '제주형 바나나' 생산을 위한 데이터팜을 운영 중인 김희찬 제이디테크 대표는 "지금 우리가 흔히 먹고 있는 바나나 품종은 '캐번디시'로 과거 사람들이 즐겨 먹던 '그로미셸' 품종은 파나마병에 걸려 1960년대 대부분 멸종했다"며 "작년 태국 등 아시아권에서 어렵게 그로미셸 모종을 공수,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과 함께 '그로미셸 되살리기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그로미셸은 당도가 높고 향이 진해 현재 시판중인 바나나 보다 식감이 더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길이는 대체로 짧지만 껍질이 두꺼워 운송 중 멍이 잘 들지 않고 다발의 밀도가 높아 적재가 쉽다. 이런 장거리 운송의 편의 덕분에 상품가치가 높은 편이다.

그로미셸의 원산지는 말레이시아, 태국 등 동남아시아로 1800년초 미국·유럽 등 서양에 소개되면서 최고 수출품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바나나 암'이라고 불리는 파나마병이 유행하면서 집단폐사했고 1960년대 이후 생산이 중단됐다. 그 뒤로 파나마병에 잘 견디는 '캐번디시'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김 대표는 "그로미셸보다 맛과 향이 떨어졌지만 그 당시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로미셸은 국내 농가에서 단 한 번도 키워보지 못한 품종인 탓에 슈퍼컴퓨터·빅데이터 전문 연구기관인 KISTI가 'K-마루기업(패밀리기업)지원사업'을 통해 생육 관련 빅데이터 수집·분석 R&D(연구·개발)을 지원하고 있다.

제이디테크 바나나 데이터팜 내부 환경 제어 컨트롤 박스/사진=제이디테크

지난 21일 오전 제주시 구좌읍 김녕리, 인적이 드문 곳에 약 6m 높이의 빌딩처럼 세워진 1천평 규모 온실 2동이 눈에 들어왔다. 제이디테크의 바나나 데이터팜이다. 내부엔 하늘을 뚫을 듯한 기세에 초록나무들이 1~2m 간격으로 자라고 있었다. 그로미셸 바나나 나무다. 김 대표는 "6개월에 4~5m씩 자란다"고 했다. 바나나 나무는 가로·세로 각각 1m 정도의 특수용기에 담겨 땅에 묻는다. 김 대표는 "비료와 물의 투입물량을 정확하게 산출하기 위해 거대 화분에 넣는 것"이라며 "그러면 순도 높은 데이터를 뽑을 수 있다"고 했다.

제이디테크 바나나 데이터팜 외부/사진=제이디테크
한켠에선 제이디테크 정밀농업팀 직원이 수기로 뭔가를 관찰·기록하고 있었다. 표를 보니 A지역 BL1이란 나무의 수고(나무의 높이)=328, 지하고(나무잎과 지면 간의 간격)=76.5, 직경=14.5, 잎자루(잎몸 부분을 받치고 줄기에 붙어 있는 자루 부분)=15, 잎몸(잎사귀를 이루는 넓은 부분)=73, 잎폭=23.5, 잎수=14 등이 자세히 적혀 있었다. 직원은 "매일 정해진 시간에 맞춰 자로 체크한 뒤 컴퓨터에 입력한다"고 설명했다.

제이디테크 바나나 데이터팜에서 나무 상태를 매일 정해진 시간에 맞춰 수기로 기록한다/사진=류준영 기자
내부는 온도차로 구분, 총 5개 영역으로 나눠 관리한다. 제어실 모니터를 보니 A지역은 21도씨(℃), E지역은 26도씨로 같은 공간 안에서 거리에 큰 차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온도차가 5도씨 정도 났다. 이런 온도와 습도 등의 데이터는 1분 단위로 수집·저장된다.

정밀한 생육환경 파악을 위해 땅속에도 검정색 토양측정센서가 설치됐다. 총 11개의 센서는 PH(수소이온농도) 농도뿐 아니라 지열도 탐지한다. 이 센서가 박힌 땅 속 온도와 해당 위치의 공기 중 온도가 많게는 9도씨까지 벌어졌다. 김 대표는 "토질 특성 뿐만 아니라 그간 간과해 왔던 토양 온도도 상당한 변수"라고 말했다.


제이디테크 바나나 데이터팜 내부, 기둥에 환경측정센서가 설치됐다/사진=류준영 기자
그밖에 사물인터넷(IoT) 기반의 자동 토양수분 조절시스템, 최적 당도의 작물생산을 위한 자동관수, 온도, 습도 등 환경조절이 가능한 전기 제습기·온풍기 등이 설치돼 가동됐다. KISTI 데이터 분석본부 이은지 박사는 "바나나 수확량을 최대한으로 끌어낼 정밀 환경데이터를 확보하면 시베리아에서도 다량으로 키워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제디이테크는 그로미셸 바나나를 애플망고처럼 고소득 전략 작물로 키운다는 복안이다. 김 대표는 "현재 바나나 시세는 약 3000원 수준으로 단가가 낮아 농가 채산성이 떨어지는 데 '프리미엄급 상품'으로 개발함과 동시에 '더 제주 바나나 빵·주스' 등 F&B 상품도 여럿 선보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희찬 제이디테크 대표가 바나나 데이터팜 내부 시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사진=류준영 기자
한편, 향후 제이디테크의 데이터팜은 가상발전소(VPP) 역할도 겸하며 에너지 판매 수익도 얻게 될 전망이다. 제주 지형 특성상 바닷물과 민물의 농도 차이를 이용해 전기를 생산하는 염분차 발전과 태양광 발전으로 내부에 필요한 에너지를 자체적으로 수급하고, 잔여 전기는 ESS(에너지저장장치)에 저장해 필요한 곳에 판매하는 형태로 개조될 예정이다. 제이디테크는 이 같은 시스템 구축을 위해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과 공동 R&D를 진행중이다.

김 대표는 "어떤 지역에 온실을 세우면 투박한 외관도 외관이나 지역농가·주민 소득에 별 도움될 게 없다고 건립을 반대하는 분들이 많았다"면서 "스마트팜이 VPP 역할을 하면 값싸게 전기를 쓸 수 있어 서로 오라할 것"이라고 말했다.

제이디테크 김희찬 대표와 직원들이 바나나 데이터팜에서 단체 사진 촬영을 했다/사진=제이디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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