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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그런 사람을 변호해" 로펌 현관에 계란세례...변호사들의 '수난시대'━
헌법은 피의자나 피고인 누구라도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는 이들의 사건을 수임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려운 분위기라고 변호사들은 입을 모은다.
전 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던 고유정(당시 36세)이 선임한 변호인들은 쏟아지는 항의 전화를 받아야 했다. 항의 방문에 홈페이지가 마비되기도 했다. 로펌도 손해를 입었다. 당시 변호인들은 법원에 사임계를 내고 "이 사건과 관련 없는 동료들이 피해를 입고 있다"고 했다.
1심에서 고씨를 변호한 남윤국 변호사(법률사무소 든든한 내편)도 엄청난 항의를 받았다. 법정에서 변론할 때도 야유를 받았다. 2020년 2월 1심 선고가 내려지고 사건을 그만 맡았는데도 항의는 이어졌다. 1년쯤 지난 후에도 밤 10시가 넘은 시간에 카카오톡 영상통화로 항의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남 변호사는 "당시 얼굴이 알려졌다 보니 길에서 날 알아보고 해코지 할까봐 신경도 쓰였다"며 "이런 분위기 때문에 변호사들은 국민적 지탄을 받은 피고인 변호는 꺼리게 된다"고 말했다.
법무법인 광야의 양태정 변호사는 올해 초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을 수임받았다가 반대편 지지자들에 극심한 항의를 받았다. 지지자들은 수도권 외곽에 있는 사무실에 찾아와 현관문에 계란을 던졌다. 항의 전화가 쏟아져 업무가 마비되기도 했다.
이씨가 사선 변호인을 구하기 어려운 이유도 이같은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 법무법인 창과방패 이민 변호사는 "이씨와 조씨 사건을 맡는 것만으로 엄청난 비판을 받을 수 있다. 앞으로 변호사 생활에 지장이 될 수도 있다"며 "누구도 이 사건을 맡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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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 측 변호인이 무죄만 주장하는 건 아냐...자백 유도 등 다양한 역할"━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아무리 흉악한 범죄를 저질렀더라도 변호인이 그를 변론했다는 이유로 비난받는다면 재판에서 유죄가 확정되기 전까지 무죄를 추정하고 방어권을 보장하는 형법 체계가 흔들릴 수 있다"며 "피의자·피고인의 방어권 보장을 위해 조력을 제공하는 변호인을 비난하는 것은 성숙하지 않으며 온당치 않은 일"이라 말했다.
법률사무소 수훈 박도민 변호사는 "변호인이 무작정 무죄를 받아내려고 사건을 은폐하는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피고인을 설득해서 자백하게 하는 역할도 한다"고 말했다. 이어 "변호인들도 피해자의 피해 회복과 양형에 의한 정의 구현을 위해 힘쓴다"며 "이런 변호인의 역할을 국민들이 알아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변호인선임권이 헌법에 보장된 권리임을 변협과 법무부가 나서서 홍보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남 변호사는 "누구든지 피고인이 될 수 있다. 억울하게 유죄판결 받지 않도록 변호인의 도움받는 것은 모두의 권리"라며 "국민적 지탄을 받는 자들에게도 해당하는 권리임을 변호사 협회와 법무부가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변호인을 물리적으로 위협하거나 과하게 비난하면 강하게 처벌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양 변호사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은 변호사들이 지지자들에 의한 외압이 무서워 꺼리는 경우가 많다"며 "변호인을 위협하는 행위는 무겁게 처벌해 그것이 잘못됐음을 경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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