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국의 아포리아]혐오표현도 정당한 권리일까?

머니투데이 김남국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2022.04.26 02:05

편집자주 | 아포리아는 그리스어의 부정 접두사 아(α)와 길을 뜻하는 포리아(ποροσ)가 합쳐져 길이 없는 막다른 골목, 또는 증거와 반증이 동시에 존재하여 진실을 규명하기 어려운 난제를 뜻하는 용어. '김남국의 아포리아'는 우리 사회가 직면한 여러 문제에 대해 지구적 맥락과 역사적 흐름을 고려한 성찰을 통해 새로운 해석과 대안을 모색한다.

김남국 교수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 사회의 핵심 가치이자 원칙이다. 자유주의 근본주의자들은 이 가치가 너무 소중하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도 절대로 포기할 수 없다고 말한다. 표현의 자유가 이처럼 중요하게 간주되는 이유로는 무한한 표현의 자유 아래서만 진실추구가 가능하기 때문이라는 주장, 모든 구성원의 목소리가 정치과정에 반영될 때 민주적 정당성이 보장된다는 주장, 사회계약론 입장에서 계약 당사자인 시민들의 의사표현이 자유롭게 전제돼야 비로소 계약이 성립한다는 주장 등이 있다.

그렇다면 누군가를 혐오하는 표현도 이처럼 중요한 표현의 자유에 포함되는 권리일까. 케임브리지 사전은 혐오에 대해 '인종, 종교, 성별 또는 성정체성에 근거해 개인이나 집단에 대해 증오를 나타내거나 폭력을 선동하는 공개된 표현'으로 정의했다. 다시 말하면 혐오는 우리가 선택할 수 없었던 어떤 특징을 갖는 집단과 그 집단의 구성원을 대상으로(targeting) 그들의 인격을 무화하는 부정적 낙인을 찍은 다음(naming) 사회적 적대감의 대상으로 몰아 차별하는 행위(discrimination)다.

누스바움은 혐오에 대해 자신의 몸 안과 밖의 경계에서 문제 있는 물질이 자신의 몸 안으로 들어온다고 여길 때 생기는 감정으로 정의하고 실제 일어난 위험에 대해 느끼는 분노와 달리 혐오는 자신이 오염될 수 있다는 상상적 추론에 근거한다고 본다. 반면 혐오를 옹호하는 이들은 혐오가 인간성의 핵심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하게 남겨진 목소리며 사회는 자신을 보존할 권리를 지니기 때문에 사람들의 혐오에 반응해 법을 제정하지 않으면 사회가 유지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즉 누구나 자신의 공포와 선입견을 표현할 자유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물론 혐오표현의 권리도 다른 사람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그쳐야 하고 대부분 국가에서 시민의 권리는 국가안보, 공공질서, 공중보건을 이유로 법률에 근거해 본질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제한될 수 있다. 혐오표현에 대한 규제는 유럽의 광범위한 규제와 미국의 최소규제로 나뉜다. 예컨대 영국은 '인종과 종교 혐오금지에 관한 법'을 통해 혐오표현을 최대한으로 규제하는 반면 미국은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협'과 '내용 중립적 규제'라는 원칙에서 국가의 사전적, 자의적 개입을 최소화하고 표현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한다.


그러니까 차별금지법 제정을 통해 사회적 소수를 보호하기 위한 원칙을 분명히 하는 것은 필요한 절차다. 그렇지만 법적 접근이 혐오를 줄이기 위한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사람들은 법이 규정한 혐오표현을 우회해 법을 무력화할 수 있고 나아가서 버틀러의 지적처럼 법은 금지하고 배척된 것을 오히려 생산하고 보존하는 금지와 생산의 동시성을 갖는다. 말은 끊임없이 인용되며 행해지는 수행성 때문에 발화의 유일한 발신자나 주체를 가정하는 것이 쉽지 않다. 따라서 낙인을 찍는 억압적 언어를 빼앗아 전복적으로 전유하거나 재의미화하는 실천이 오히려 더 중요할 수 있다.

역사에서 대부분 혐오는 특정 집단을 배척하기 위한 무기로 사용됐다. 그러나 혐오가 진정으로 빛날 때는 사회적 소수를 대상으로 그들의 존재를 부정하는 모욕에서가 아니라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 사회적 권위와 권력을 향해 조롱과 비하, 풍자를 퍼부음으로써 우리의 위선을 해체하는 순간이다. 그러니까 혐오가 아주 의미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적절한 회의를 필요로 한다. 인간의 복수성(human plurality)이라는 특징으로부터 기원하는 차이와 그 차이를 가능하게 하는 관용을 생각할 때 혐오에 대한 철저한 배제로 개인 사이의 차이마저 지워버리면 인간의 복수성이라는 본질을 훼손하는 역설에 이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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