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정부R&D투자·평가, 이젠 자율과 책임으로

머니투데이 이길우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부원장 | 2022.04.22 02:03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이길우 부원장
우리나라는 곧 국가R&D투자 100조원, 정부R&D예산 30조원 시대를 맞이할 전망이다. 정부R&D예산은 과학기술기본법이 시행된 1999년 3조2000억원에서 2022년 29조8000억원으로 성장했다. 국가R&D사업(program) 수는 1200여개, 과제(project) 수는 7만3500여개로 외형 성장은 눈부시다. 그러나 정부의 꾸준한 투자확대에도 불구하고 부처간 장벽, R&D관리기관의 기획력 부족, 정량지표에 집중된 평가방식, 과중한 연구자 행정부담 등 낡은 관리형 R&D체계의 한계가 여전하다.

SCI 논문게재 수는 세계 12위인데(2018년) 논문의 질을 평가하는 피인용 횟수 세계 점유율은 2.15%에 불과하다(2014~2018년). 건수 중심의 부실특허가 양산됨에 따라 과제 성공률은 99% 이상인데 사업화 성공률은 20%에 그친다. 정부R&D예산 배분·조정은 '상향식 요구 후 하향식 조정' 체계로 핵심기술이 누락되거나 사업간 중복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여러 부처가 옥상옥으로 쌓아올린 관리체계에서 R&D정책은 파편화하고 투자의 전략성은 약해진다.

글로벌 기술경제의 확장과 기술패권 경쟁의 가속화 속에 경쟁자들은 우리 못지않게 변화에 목마르다. 국가R&D투자 연평균 증가율(2013~2018년)은 중국 7.68%, 한국 7.61%, 유럽연합(EU) 5.52%, 미국 5.04% 순이다. 첨단기술 중심의 미래성장동력 확보, 국가 안전 및 생존 핵심기술 확보 등 임무(mission) 지향의 범부처 하향식 R&D투자와 민관협력의 R&D 생태계 조성 움직임이 공통으로 눈에 띈다.

우리 정부도 퍼스트무버(first mover)로의 기술혁신전략 전환을 대내외에 선언하고 '국가연구개발혁신법' 등으로 뒷받침하지만 정부R&D투자·평가 시스템의 변화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빠른 기술혁신 속도, 연구생태계의 다양화, 연구자의 자율성 요구 등 글로벌 과학기술 환경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거시적이고 전략적인 정부R&D투자·평가 시스템으로의 조속한 전환이 필요하다. 이른바 자율과 책임의 R&D다.

우선 국가 핵심정책과 전략기술에 대해 부처간 R&D 포트폴리오를 수립하고 유관 계획 및 이행 로드맵을 점검하는 등 거시적이고 전략적인 정부R&D예산 배분·조정이 필요하다. '국가R&D 중장기 투자전략' 수립, '국가첨단전략기술 육성 등 범부처 R&D사업 중심으로 전략성을 강화해 예산을 배분해야 한다.


신규 사업의 투자 적정성에 대해서는 과학기술혁신본부가 예비타당성조사를 통해 국가전략과의 부합성을 면밀히 살펴보되 계속사업의 예산은 부처가 중간·자체평가를 고려해 지출한도 내에서 자율적으로 편성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과학기술혁신본부는 개별 사업에 대한 예산요구액 조정보다 지출한도 총액규모의 적절성 심의, 한도 외 요구사업에 대한 심의, 평가결과에 따른 지출구조조정 반영 등에 집중해야 한다.

다음으로 '자율과 책임'의 국가R&D사업 평가체계 혁신이다. 목표달성도 평가 대신 자율과 책임의 효과(impact) 평가로 전환하자는 것이다.

기획단계에서는 부처의 사전기획, 전략목표 및 단계별·연차별 성과목표 수립의 적절성을 점검하고 이에 근거해 사업관리와 성과평가를 추진해야 한다. 수행단계에서는 중간평가 권한을 부처에 대폭 이양하고 과학기술혁신본부는 중간평가의 적절성 모니터링과 성과미흡사업 및 현안사업에 대한 특정평가에 집중해야 한다.

우리 앞에 놓인 도전에 국가적 역량을 모아 대응해야 한다. 부처가 따로 없고 여야가 따로 없다. R&D에서 사업화까지 민과 관이 손을 맞잡아야 한다. 기술패권 대응을 위한 국가전략기술, 혁신도전형 R&D를 위한 한국형 DARPA, 국가난제 해결을 위한 임무 중심의 K문샷 프로젝트 등 새 술은 충분하다. 전략적 R&D투자·평가 시스템이라는 새 부대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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