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경제 '막다른 골목'으로? 왜 이번엔 '나쁜 엔저'라고 하나

머니투데이 박진영 기자 | 2022.04.20 06:35

[MT리포트] 안전하지 않은 엔화?①
미국과 금리 엇박자로 엔저 가속화…
경제 체력저하로 '긴축' 어려운 상황

편집자주 | 안전자산으로 꼽히던 엔화가 전쟁 발발에도 되레 급격히 가치를 잃고 있다. 일본정부는 이를 지켜보고 있는데 대응이 힘들다는 지적도 나온다. 엔저 현상은 왜 생겼고 일본경제엔 무슨 영향이 갈까. 또 우리나라는 이를 어떻게 보고 대응해야 할까.

엔화. /사진=뉴스1
'1달러=128.3엔'

엔화가 반세기 만에 13일 연속 하락하며 일본의 기록적인 엔저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한때 '아베노믹스' 등 일본 정부의 경기 부양책의 일환으로 의도되기도 한 엔저였지만 지금은 상황이 사뭇 다르다. 일본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 '나쁜 엔저'라는 지적에 정치권에서도 '위기론'이 대두되는 상황이다.

미국의 금리인상에 역주행하는 '나홀로 금리인하'가 엔화 추락의 근본 원인으로 꼽히지만, 일본은행이 금융완화 정책을 돌리기 쉽지 않다는 점이 문제다. 블룸버그 등 외신에서 내년 3월 '1달러=150엔'이라는 초유의 엔저를 상정하는 이유다.


'1달러=130엔'도 코앞? '셀(sell) 재팬' 우려도


19일 일본 외환시장에서 장중 1달러는 128.3엔에 거래됐다. 이는 2002년 5월 이래 약 20년여 만의 최저 수준으로, 1971년 이후 최장인 12거래일 연속 하락이기도 하다. 같은 해 1월의 135엔까지 환율이 오르는 것(엔화가치 하락)도 시간문제라는 말이 나온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긴축정책으로 미국 장기금리가 오르는 사이 일본 금리상승은 억제되면서 양국 간 금리 격차가 커졌고, 이로 인해 엔 매도는 더욱 가속화했다. 일본 내 자산을 처분하고 투자금을 회수하는 '셀 재팬'(Sell Japan) 기조가 본격화 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수출기업들이 엔저를 바탕으로(제품가 하락) 상품을 더 팔아 외화를 번 뒤 이를 엔화로 바꿔 엔화 가치를 떠받치던 흐름도 예전보다 약하다. 일본 제조업이 생산거점을 대거 해외로 옮긴 탓이다. 일본기업의 해외생산 비율은 2002년도 17.1%였지만, 2019년도는 23.4%로 확대됐다. 기업들은 벌어들인 돈을 국내로 들여와 엔화로 바꾸지 않고, 해외에서 재투자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일본에 도움될 것 없다"…'나쁜 엔저'의 영향은


엔저 상황을 일본 경제가 적극 활용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기존에는 엔화 약세가 수출 기업의 실적을 끌어올린다는 기대감이 있었지만 이제 해외 생산이 늘어났기 때문에 그것도 옛말이 됐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다이와증권이 주요 상장 200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달러 대비 1엔 가치 하락시 경상이익의 상승 효과는 2022년 현재 0.43%로 2009년 대비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요즘 같은 고유가 상황에서 엔저는 되레 수입물가를 상승시키고, 기업 손익이 악화해 개인소비가 부진해지는 '마이너스 효과'가 더욱 두드러진다. 일본 내 임금상승이 제자리 걸음을 하는 가운데 식자재, 원재료 수입가격이 오르자 서민물가도 비명을 지르고 있다.


무역·서비스수지는 2002년 6조5000억엔 흑자였으나 2021년엔 2조5000억엔 적자를 냈다. 올해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으로 에너지 가격이 급등했는데 엔화가 약해지면서 경상수지(무역수지+서비스수지+제1차소득수지+제2차소득수지)마저 적자로 돌아설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일본은 그간 무역이 부진해도 해외 자산의 배당·이자 소득이 경제를 받쳤는데 이것도 어렵게 됐다는 것이다. 경상수지가 연간 적자로 돌아서면 이는 1980년 이후 42년 만이다.

스즈키 준이치 일본 재무상은 지난 15일 기자회견에서 "임금 인상이 불충분한 상황에서 엔화 가치 하락은 '나쁜 엔저'"라고 꼬집었다.



일본 정부 '막다른 골목'에서 손쓰지 못하는 이유


엔저가 일본 경제에 '잃어버린 40년'을 가져올 수도 있다는 위기론마저 제기되는 상황이지만 일본은행이 완화 노선을 수정하기는 만만찮다. 임금인상에 따른 내수 증가가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생기지 않는 등 경기 부양이 충분치 않아 정책 기조를 바꾸기 어렵기 때문이다. '아베노믹스'를 시작으로 2013년부터 이례적인 완화책을 펼쳐왔지만 아직 일본 경제의 체력은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2013년 0.9%였던 GDP(국내총생산) 잠재 성장률은 코로나 전인 2019년 0.4%로 하락했고 2021년에도 0.5% 늘어나는 데 그쳤다.

정부가 엔을 매수하며 환 개입에 나설 가능성도 낮다. 미국의 금리인상, 수출 기업들의 해외진출 등 구조적으로 엔 약세 압력이 강해 효과를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잘못 대응했다간 오히려 막대한 국가부채로 인한 재정부담이 커질 수 있다. 일본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은 세계 최고 수준인 257%로 미국(133%)과 영국(108%)의 두 배가 넘는다. 일본 재무성은 일본은행이 기준 금리를 1~2%포인트 올릴 경우 연간 이자 부담이 3조7000억~7조5000억엔(72조원)까지 늘 것으로 보고있다.

다만 지난 18일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는 "상당히 급속한 환율 변동"이라며 "급속한 엔화 가치 하락은 마이너스(경제적 부정적 영향)를 키운다"고 이례적으로 언급했다. 또 엔저가 중소기업이나 가계에 미치는 영향을 주의 깊게 살펴보겠다고 했는데 이는 그간 엔저가 수출 증가, 물가 상승이라는 긍정적인 부분이 있다고 강조해온 것과 반대된다. 일본 내 위기감을 반영한 발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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