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항암제' 킴리아 처방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19일 의료계에 따르면 서울대병원에서만 지난 1일 이후 A씨 포함 2명이 킴리아를 투약했고 8명이 처방을 눈 앞에 두고있다. 킴리아 건강보험 적용 후 불과 약 2주만에 병원 한 곳에서만 10명의 환자들에게 생명을 이어갈 길이 열린 셈이다. 건강보험 적용 전까지 1년간 국내에서 이 약을 투여한 전체 환자가 10명을 넘기지 못한 것과 비교하면 빠른 처방 속도가 체감된다. 건강보험이 혈액암 환자들의 꿈을 현실로 만들고 있는 셈이다.
스위스 제약사 노바티스가 개발한 킴리아는 한 번의 투약으로 모든 치료가 통하지 않는 재발성·불응성 말기 혈액암 환자들의 절반 가량을 살리는 의약품이다. 환자의 몸에서 채취한 면역세포가 암세포를 정확히 찾아 공격할 수 있도록 유전자를 바꾼 뒤 다시 환자 몸속에 집어넣는 방식으로 환자를 치료한다. 세포, 유전자, 면역치료 기술을 총 망라해 환자 1명 맞춤형으로 제조되는 최첨단 바이오의약품이다.
그래서 비싸다. 안기종 백혈병환우회 대표는 "건강보험 급여 적용 전 자비로 치료 받은 환자분의 비급여 영수증에 4억6000만원이 찍혀있었다"고 말했다. 여기에 입원, 치료 비용을 합하면 환자 1명당 부담 비용은 5억원에 달했다. 때문에 건강보험 급여 적용 전까지 1년간, 절대 다수의 환자는 약이 있어도 투약을 받지 못했다. 킴리아를 제외하면 막다른 길에 몰린 말기 혈액암 환자들은 연간 200명. 이 가운데 상당수가 이 기간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제 말기 혈액암 환자들에게 킴리아는 더이상 꿈이 아니다. 지난 1일 건강보험 적용으로 환자 1명당 소득 분위에 따라 킴리아 투약 비용 중 83만~598만원만 부담하면 된다. 킴리아 건강보험 적용이 결정된 날, 환우회 게시판에는 "너무 기뻐서 눈물이 난다", "우리 아이도 이제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됐다"는 글이 줄줄이 올라왔다. 안기종 백혈병환우회 대표는 "우리나라에서 초고가약의 환자 접근권 핵심은 건강보험 적용"이라고 말했다
킴리아를 처방할 의료현장도 빠르게 움직인다. 제조와 처방 과정에 고도의 기술과 설비가 필요해 현재 처방이 가능한 곳은 삼성서울병원, 서울성모병원, 세브란스병원, 서울대병원 정도다. 서울아산병원은 시설 및 관리 허가를 이달 안에 받아 처방 준비를 마치기 위한 막바지 작업 중이다. 김진석 세브란스병원 혈액내과 교수는 "환자들과 의료진들이 간절히 기다려 온 급여가 적용된 만큼 환자들이 킴리아로 장기 생존을 기대 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킴리아 건강보험 적용은 또 다른 숙제의 시작이기도 하다는 것이 의료계 안팎의 공통된 지적이다. 보건복지부가 추산한 한 해 킴리아 건강보험 청구액은 709억원. 당장 건강보험 재정에 줄 영향은 미미하지만 또 다른 초고가 희귀질환 의약품들이 줄줄이 건강보험 적용을 기다리고 있다. 당초 환우회와 의료계는 물론 제약업계까지 이번 킴리아 건강보험 적용 여부를 주시한 까닭도 국가가 초고가 의약품에 어느정도까지 문호를 열어줄지 파악할 가늠좌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들어설 새 정부의 숙제이기도 하다. 문재인 정부가 전 국민의 의료 보장성 확대를 공언했던 것과 달리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필요한 사람에 집중하는 '선별적 복지'에 무게를 뒀다. 윤 당선인은 후보 시절 공약으로도 '중증·희귀질환 치료제 신속 등재, 건보 적용 확대'를 내세우기도 했다. 새 정부는 초고가 희귀질환 의약품의 건강보험 급여 적용을 늘려갈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제2, 제3의 킴리아를 받아들일 재정 여력이다. 지난해 건강보험 재정은 코로나19 유행에 따른 병원 방문 감소로 흑자를 냈지만, 이제 의료이용이 정상화되면 고령화 추세를 타고 다시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 초고가 의약품의 연이은 건강보험 등재는 당연히 장기적으로 건강보험 재정에 부담이 간다. 소수의 희귀질환 환자들이 고가의 치료제를 맞는 데 대규모 재정을 투입하기 위해서는 전 국민의 건보료를 올리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반대로 재정을 지키면 저소득층에게 약값은 치를 수 없는 목숨값이 된다.
결국 공공보건의 재정 안전성과 생명 윤리 사이 균형을 찾아야 한다. 이상이 제주대 의대 교수는 "결국 비효율적 지출인지 의료윤리인지 사이에서 정당성을 따져야 하는 것"이라며 "고가의 치료제를 사용해야 하는 개인의 절박함과 건보 부담 능력 사이에서 종합적 고려와 판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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