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만고만한 건물 다닥다닥…88년전 법령에 막힌 홍대거리

머니투데이 배규민 기자, 방윤영 기자 | 2022.04.07 08:00

[MT리포트]88년된 용도지역제 수술대 오른다(上)

편집자주 | 모든 땅에는 '용도'가 정해져 있다. 주택을 건축할 수 있는 땅, 상업용 건물을 지을 수 있는 땅이 따로 있다. 두가지 이상의 용도를 함께 갖고 있는 땅은 없다. '용도지역제' 때문이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에 시작된 '용도지역제'가 지금 시대에 맞느냐는 논란이 이어져 왔다. 대선 기간에도 도마에 올랐다. 서울시는 아예 전면 개편을 공식화했다. 수술대 오른 '용도지역제' 어떻게 바꿔야 할까.



홍대거리 낮은 건물 이유 있었네...88년전 법령에 막혔다



(서울=뉴스1) 황기선 기자 = 4일 오후 서울 마포구 홍대거리 버스킹존에서 시민들이 거리공연을 즐기고 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이날 0시부터 오는 17일까지 2주간 사적모임 가능 인원은 10명, 식당과 카페 등 다중이용시설 영업제한 시간은 밤 12시로 늘어난다. 행사나 집회 인원은 종전처럼 최대 299명까지로 유지된다. 정부는 위중증 환자·의료체계 여력 등이 안정적으로 유지된다면 2주 후에는 실내 마스크를 제외한 거리두기 해제도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2022.4.4/뉴스1
#젊음의 거리로 불리는 서울 홍대거리와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은 서울의 대표적인 상업거리다. 하지만 도시계획 수단인 용도지역제에서는 '주거지역'에 해당한다. 대부분이 용적률 200% 이하로 규제받는 제2종 일반주거지역이다. 최근에 핫플레이스로 떠오르고 있는 '익선동'은 원래 용도가 '상업지역'이었지만 지금까지는 주거지역으로 주로 사용됐다.

땅의 용도 뿐 아니라 밀도(용적률)와 높이 등을 규제하는 '용도지역제'(Zoning)는 도시계획의 근간이다. 제한된 땅을 효율적이고 계획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도입됐다. 하지만 현실에선 이미 용도와 다르게 사용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 복합·멀티 시대지만 땅의 용도가 따라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서울시가 용도지역제 개편을 공론화하고 나섰고 국토교통부도 연구용역에 나서는 등 용도지역제의 유연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개발계획 전부터 '주거' '상업' 출신 성분 정해져 있어

용도지역은 주거지역의 환경을 헤치는 시설이 들어서는 것을 막기 위해 도입됐다. 유럽과 미국에선 1800년대부터 시행됐고 한국에는 일제강점기인 1934년에 도입됐다. 도시계획에 관한 최초 법령인 '조선시가지계획령'이 제정되면서 주거, 상업, 공업 등 3개의 용도지역으로 나눴다. 1962년 건축법이 제정되면서 시가지계획은 도시계획법으로, 건축물은 건축법으로 높이 등을 제한했다. 2002년에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면서 도시지역과 비도시지역을 일원화해 용도지역을 지정·관리하고 있다. 관련 법에는 21개 용도지역, 26개 용도지구, 4개 용도구역이 등장한다. 군사시설 등 다른 법이나 조례에 규정된 지구를 포함하면 700개가 넘는다.

우리나라의 용도 지역은 크게 도시지역, 관리지역, 농림지역, 자연환경보전지역으로 구분된다. 도시지역은 또다시 △주거 △상업 △공업 △녹지로 구분하고 용적률 등을 부과한다.

◆수요와 상관없는 일률적 규제...도시계획 근본 틀 변화 필요

용도지역은 긍정적 기능에도 불구하고 한계를 안고 있다. 개발수요와 상관없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미리 규정했기 때문에 경직성이 강한 제도다. 용도와 밀도(용적률)가 연동돼 있는 점도 한계다. 예를 들어 서울시 내 주거 전용 제1종은 모두 용적률이 100%이고 근린상업지역은 용적률이 1000%다. 이는 개발 수요와 상관없이 적용된다.

지하철 역세권으로 유동인구가 많고 주거와 상가, 오피스 등 다양한 수요가 있지만 주거지역으로 묶여 효율적인 개발이 어려운 곳도 있다.대표적인 곳이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주변이다. 홍대거리는 대표적인 상권이 형성돼 있지만 용도가 주거지역이다. 자치구는 용적률이 높은 일반상업지역으로 전환을 원하지만 서울시는 고밀개발과 땅값 상승에 대한 부담이 크다.

하지만 용적률은 그대로 두고 상업지역으로 변경하면 호텔 등 숙박시설이 들어설 수 있다. 상업지역으로 변경하더라도 용적률은 400% 미만으로 제한하면 소규모 개발과 상업용, 오피스용 등 다양한 공간 배치가 가능해진다.

이 때문에 고밀 주거 개발, 저밀저층의 상권 조성, 지식기반 산업을 위한 혁신크러스트 조성 등 지역별 수요에 맞춰 도시를 개발하기 위해 용도지역제 개편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서울시가 용도지역제 전면 개편 공론화에 나선 이유다.

서울시는 지난 3월 2040도시계획을 통해 "현재 용도지역 체계를 넘어선 도시공간에 대한 새로운 관리체계인 '비욘드 조닝'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지금의 용도지역제는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로 관리하기 위해 만든 체계"라면서 "미래 변화에 맞춰 유연한 도시계획이 가능한 근본적인 틀에 대한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아파트숲은 구시대적 발상…'주택+α' 목소리 커졌다



"아파트 단지 근처에 학업공간도 필요하고, 화상회의할 수 있는 오피스 공간, 상업시설도 필요하잖아요. 이제는 주택을 하나의 도시로 봐야 합니다. 이게 가능하려면 유연한 도시계획이 가능해야 합니다."(남진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

아파트 숲을 연상하게 하는 주택 밀집 지역의 모습은 이제는 구시대적인 도시계획이 됐다. 시대가 변하면서 사람들은 주거뿐 아니라 업무공간부터 관광, 문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공간이 조성되길 바란다. 하지만 현재 용도지역 제도는 주거지역에는 주거만, 상업지역에는 업무시설 등만 들어설 수 있도록 규정한다. 시대 변화에 맞춰 도시의 모습이 변화하려면 현재 용도지역(zoning)을 뛰어넘는(beyond) 새로운 체계인 '비욘드 조닝'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용도지역-용적률 연결고리 끊어내야"

비욘드 조닝은 현행 용도지역 체계를 개편하자는 개념일 뿐 방향성은 아직 정립되지 않았다. 남진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유연한 도시계획이 가능하려면 용도지역과 밀도(용적률·건폐율)가 분리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 용도지역은 주거·상업·공업·녹지와 같이 그 땅에 쓰임새만 정하는 게 아니라 밀도도 함께 연동돼 있다. 서울시 조례에 따르면 2종 일반주거지역 용적률은 200%, 준주거지역은 400%, 상업지역(중심상업)은 600% 등으로 정해놓는 식이다. 이처럼 용도와 밀도가 함께 묶여 있어 탄력적인 도시계획이 어렵다는 게 남 교수의 생각이다.

남 교수는 "과거 경직된 도시계획, 용도와 밀도가 밀착된 시스템에서 앞으로는 두 개를 분리해 지역 특성에 맞게끔 유연하게 작동하도록 할 수 있다"며 "예를 들어 역세권 주변을 주거지역에서 상업지역으로 용도변경을 해 복합용도로 허용하되, 주변 특성에 맞게 용적률을 600%가 아닌 400%로 정하는 식"이라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상업지역은 용적률이 주거지역보다 높기 때문에 최대한 층수가 높은 주상복합 타워를 지어 이익을 최대로 하려 한다. 상업지역에는 무조건 고층 건물만 들어서게 되는 셈이다. 하지만 용적률을 지역 특성에 맞게 정하면 상업지역이라도 키가 낮은 건물이 들어설 수 있다. 또 주거와 함께 상업시설을 함께 조성할 수 있다. 반대로 용적률이 더 필요한 곳은 더 높은 용적률을 적용해줄 수도 있다.

그는 "지금은 어디든 다 아파트로만 지을 생각을 하는데, 미래를 내다봐야 한다"며 "과거 주택을 주택으로만 짓는 시대는 끝내고 주택을 하나의 도시로 보고 우리가 필요한 공간을 계획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용도지역 완전 자율화도 가능…중앙정부 권한 내려놔야"

용도지역은 대도시인 서울에는 맞지 않는 옛 도시관리 기법으로, 용도지역을 자율화하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진유 경기대 도시·교통공학 교수는 "우리나라 용도지역제는 전국에 획일적으로 적용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로 도시 규모별로 사정에 맞는 용도지역제가 운영돼야 한다"며 "특히 대도시인 서울에서는 용도와 밀도를 자유롭게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서울은 지하철역과 같은 주요 교통시설을 중심으로 토지이용이 집중되는데, 용도지역제는 이를 충분히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며 "새로운 기능들이 빠르게 나타나고 사라지는 서울과 같은 대도시에서는 보다 능동적으로 토지를 이용할 수 있도록 열어주는 유연한 용도지역제가 필요하다"고 했다.

서울이 자유롭게 용도와 용적률을 적용할 수 있으려면 지자체의 전문성과 자율성이 강화되어야 한다는 게 김 교수의 생각이다. 그는 "국토계획법을 통해 중앙정부에서 용도와 밀도를 정하다 보면, 서울만 고려할 수는 없고 다른 지방도시의 사정도 살필 수밖에 없다"라며 "인구 1000만 도시인 서울과 10만의 중소도시에 같은 용도지역제를 적용하면서 효율적인 도시를 만드는 데 오히려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중앙정부는 큰 틀에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각 지자체가 자율적으로 용도지역의 종류나 개발밀도의 크기를 정할 수 있도록 역할을 분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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