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 겨우 찾으니 또…" 지하철서 휠체어 직접 타봤습니다[체험기]

머니투데이 김성진 기자 | 2022.04.02 07:00
지난달 31일 저녁 7시쯤 서울 충무로역 1번 출구. 휠체어에 타니 평소에 오르던 에스컬레이터도 무섭게 느껴졌다./사진=김성진 기자
해가 저문 지난달 31일 저녁 7시쯤 평소처럼 지하철 3호선을 타러 가는 길. 서울 충무로역 1번 출구 에스컬레이터가 평소보다 높아보였다. 휠체어는 모든 것을 올려다보게 만들었다. 출구 밖에 나오는 사람들이 왠지 날 쳐다보는 것 같았다. 엘리베이터가 어딨을까. 막막했다.

최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는 지하철 승하차 시위에 나섰다가 비난을 받았다. 출퇴근길 시민들에 과도한 불편을 끼쳤다는 것이다. 전동휠체어 뒷바퀴를 발로 찬 시민도 있었다고 한다. 시민들 불편이 부각되니 애초 장애인들이 왜 시위에 나섰는지는 관심 밖으로 밀렸다. 그래서 휠체어를 직접 타고 지하철을 타봤다. 기자는 이전까지 한번도 휠체어를 타본 적 없는 28세 남성이다.


아무 출구나 못가, 엘리베이터 찾아 200m 이동...환승하려면 엘리베이터 갈아타야


서울 충무로역을 휠체어 타고 이동하려면 7번 출구 부근 엘리베이터를 타야 한다. 지난달 31일 저녁 7시쯤, 휠체어 탄 기자가 지하철을 타러 1번 출구에서 약 200m를 이동해 엘리베이터를 타는 모습./사진=김성진 기자
휠체어를 탄 이상 엘리베이터를 찾아야 했다. 당장 눈에 엘리베이터가 보이지 않았다. 다행히 스마트폰 지도 애플리케이션(앱)에 교통약자용 경로가 안내돼 있었다. 엘리베이터는 기자가 있는 1번 출구와 약 200m 떨어진 7번 출구에 있었다.

보도블록의 울퉁불퉁함이 몸으로 느껴졌다. 경사도 있어서 휠체어가 자꾸만 오른쪽으로 갔다. 느릴 수밖에 없었다. 50m 앞 횡단보도의 초록불은 20초쯤 남았다. 포기하고 천천히 바퀴를 굴렸다. 두 다리로 뛰었다면 건넜을 시간이다. 휠체어로는 어림도 없었다.

엘리베이터는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의 것이었다. 10분쯤 지나 도착한 엘리베이터 앞에는 중년 여성 두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탑승 제한이 6명인 엘리베이터는 좁았다. 휠체어 탄 기자를 비롯 세명이 간신히 탔다. 중년 여성들은 '인물은 좋아요'라며 휠체어 탄 기자를 위로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1층에 내려오니 휠체어 타고 지날 수 있는 넓은 문은 10여개 개찰구 중 가장 멀리 떨어져 있었다. 두 다리로 걸을 때는 이 문을 열고 다니는 게 일도 아니었지만, 휠체어를 타니 한 손은 문을 붙잡고 한 손은 바퀴를 굴려야 해 이 문을 지나기도 쉽지 않았다./사진=김성진 기자
개찰구는 지하 1층 엘리베이터 출구에서 10m 거리에 있었다. 가까웠다. 하지만 휠체어가 지날 수 있는 널찍한 문은 가장 먼 자리에 있었다. 두 다리로 걸을 땐 이 문을 통과하는 게 일도 아니었다. 휠체어를 타고 지나려니 어려웠다. 한 손으로 문을 열고 한 손으로 휠체어를 밀어야 했다.

최종 목적지인 3호선 승강장은 지하 4층에 있다. 엘리베이터를 역 내에서 두번 타야 한다. 첫 엘리베이터로 지하 1층에서 2층으로 내려간 뒤, 두번째 엘리베이터로 갈아타서 지하 4층으로 내려가야 한다. 두 엘리베이터 사이 거리는 약 80m다.

서울 충무로역 지상에서 지하 4층 3호선 승강장에 가려면 엘리베이터를 한번 갈아타야 한다. 두 엘리베이터 사이 거리는 80m다./사진=김성진 기자
충무로역은 엘리베이터 사이 거리가 먼 편은 아니다. 다만, 엘리베이터를 갈아타야 했는지 몰라서 동선을 파악하느라 시간이 걸렸다. 결국 충무로역 1번 출구에서 저녁 7시쯤 출발했지만 3호선 승강장에 도착했을 때 시간은 저녁 7시30분쯤이었다. 다음날 휠체어 없이 걸었을 때는 10여분이 걸렸다.

휠체어 탄 장애인들은 이 '엘리베이터 동선'을 파악하는 것도 고역이라고 말한다. 환승하려면 엘리베이터를 어디서 갈아타야하는지는 역마다 다르다. 가령, 지하철 2, 4, 5호선이 지나는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은 4호선에서 2호선으로 환승하려면 첫 엘리베이터로 지하 3층에서 지하 1층에 올라간 뒤, 두번째 엘리베이터로 지하 1층에서 지하 2층으로 도로 내려가야 한다.

역 밖에 나가야 하는 곳도 있다. 노원역은 4호선은 지상 3층, 7호선은 지하 3층에 있는 데다 수평거리도 멀다. 휠체어를 타고 환승하려면 한쪽 호선 엘리베이터로 아예 역 밖에 나간 뒤 약 310m를 이동해 다른쪽 호선 엘리베이터를 타야 한다. 전동휠체어를 타도 10여분 이동해야 하는 거리다.


서울 충무로역 지상에서 지하 4층 3호선 승강장에 가려면 역 안에서 엘리베이터를 한번 갈아타야 한다. 동대문역 방향 4호선에서 3호선을 이용할 때도 마찬가지다. 이동이 불편한 장애인들은 어느 역을 가더라도 이런 '엘리베이터 동선'을 파악해야 한다. /사진=김성진 기자


버스에 휠체어 고정 안돼 '당혹'...장애인 콜택시는 한시간 이상씩 기다려야


지난달 31일 휠체어 탄 기자가 승강장에 도착한 모습./사진=김성진 기자
버스도 문제인 것은 마찬가지다. 최신 자료인 국토교통부의 '2020년 교통약자 실태조사 보고서'를 보면 전국 버스 중 저상버스 보급률은 27.7% 수준이다. 장애인들은 정류장에서 버스 여러대를 떠나보내기 일쑤다. 휠체어를 타면 키가 작아져서 버스기사가 장애인을 미처 보지 못하고 지나치는 일도 부지기수라고 한다.

저상버스에 타도 문제가 많다. 승객이 가득 찬 버스는 휠체어석에 가는 것 자체가 어렵다. 시설이 노후화돼 휠체어가 고정되지 않는 버스도 많다. 뇌성마비 때문에 휠체어를 타는 배재현씨(44)는 "그럴 땐 주변 승객들에 양해를 구하고 아무 거나 붙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시각장애인은 버스 이용 자체를 포기한 경우가 많다. 시각장애인 박승규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활동가는 "버스 정류장마다 '이번에 도착하는 버스는 000번, 000번 버스'라는 음성 안내가 나오지만, 버스가 안내된 순서대로 오지는 않기 때문에 동행자 없이는 이용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대체수단으로 장애인콜택시가 도입됐지만, 대기 시간이 워낙 길어 장애인들에게 외면당했다. 2020년 기준 전국에 배차된 장애인 택시는 2만8912대다. 보행상 중증장애인 70만여명의 4% 수준이다. 배씨는 "콜택시를 불러도 한시간 이상 기다리는 일이 대다수다 보니 아예 이용할 생각을 않는다"고 말했다.


시위가 아니라 '장애인들의 지하철 타기'라 불러주세요


전장연은 지난달 30일 지하철 승하차 시위를 잠시 중단했다. 이동권 개선을 위한 투쟁은 이어간다. 이날 전장연은 경복궁역에서 이형숙 서울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을 시작으로 삭발식을 시작했다./사진= 하수민기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지하철 승하차 시위는 지난달 30일 잠시 중단됐다. 시민들 불편이 가장 큰 이유였다. 시위 참가자들은 시민들에 "시위 할거면 국회가서 하라" "왜 시민들 지하철을 막고 그러냐"는 항의를 받았다.

장애인들은 이번 시위가 자신들 요구를 알릴 '최후의 수단'이었다고 말한다. 정다운 전장연 정책실장은 "이번 시위로 시민들 눈에 휠체어 탄 장애인들이 보이기 시작했다"며 "아무도 몰랐던 문제가 드러났다"고 말했다.

배씨도 "지난 20년 동안 정치인들에 면담 요청하고 정책 요구를 했지만, 정치인들은 '몇년도까지 뭘 하겠다' 약속만 하고 밥 먹듯이 어겼다"며 "정치인들이 대중교통을 타려는 장애인이 이렇게 많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다. 이번 투쟁을 시위가 아닌 장애인들의 '지하철 타기'라 불러달라"고 말했다.

한편, 장애인들이 시위에 나서자 국토부는 최근 '교통약자 제도개선 연구' 용역을 발주했다. 저상버스 도입 의무화를 위한 시행 방안을 검토하고, 선진국, 국제기준과 비교해 이동편의시설의 설치 기준을 정비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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