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뎬구의 경제규모가 급성장한 배경에는 중국판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중관춘'이 있다. 서울 여의도의 50배 크기인 중관춘은 1980년대 전자상가로 출발, 현재는 ICT(정보통신기술), 바이오, AI(인공지능), 신소재 등 3만여개의 첨단기술기업이 밀집한 하이테크 클러스터로 진화했다. 기업가치 1조원이 넘는 유니콘도 40곳 이상 자리잡았다. 알리바바, 샤오미, 바이두, 레노버, 디디추싱 등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글로벌 기업들도 중관춘 출신이다.
무엇보다 중관춘은 공간 혁신이 경제 혁신으로 이어진 대표 사례로 손꼽힌다. 대·중소기업과 스타트업, 대학과 연구소가 한데 모여 개방형 혁신을 도모하고 이를 뒷받침할 인재와 자본도 풍부하다. 베이징대·칭화대 등을 포함한 40여개 대학과 200여개 국가과학연구소 등이 위치하고 수많은 벤처캐피탈과 엔젤투자자가 밀집해 있다. 중관춘 내에서는 언제 어디서나 창업자와 투자자가 즉석 만남을 가질 수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중국 정부가 전략적으로 육성했지만 민간 중심의 자생적 혁신생태계가 정착하면서 이제는 중국 경제를 이끄는 원동력이 됐다.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정부조직 개편작업이 한창이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각 부처를 쪼개고 붙이는 식의 논의가 무성하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공약인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고 보건복지부의 복지기능과 합쳐 가족복지부를 만든다는 구상이 대표적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교육부를 합치고 산업통상자원부의 통상 기능을 외교부로 이관하는 방안을 두고도 다양한 이야기가 오간다. 최근엔 중소벤처기업부도 도마에 올랐다. 문재인정부에서 청에서 부로 승격된 중기부의 기능을 산업부와 과기정통부로 이관하고 조직을 통폐합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이처럼 정부조직 개편이 본격화하자 영역수성과 확대를 위한 부처간 물밑경쟁도 치열하다. 정치권 로비는 물론이고 산하단체나 관련학계, 심지어 시민단체까지 동원해 관제데모를 한다.
문제는 작은 정부의 효율성만 강조될 뿐 정작 중요한 부분은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자리 창출이나 디지털경제 전환, 인구구조 및 기후변화 등 우리가 직면한 사회·경제 문제들은 융복합적인데 정부조직 개편은 여전히 부처의 기능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일자리 창출이나 디지털경제 전환은 어느 한 부처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데도 말이다. 시대변화에 따라 정부조직의 재조정은 필요하다. 하지만 정권교체기마다 반복되는 기능 중심의 정부조직 개편은 부처간 칸막이를 높이고 사회적 비용만 낭비할 뿐이다.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 윤 당선인은 지난 20일 용산 집무실 이전계획을 직접 발표하면서 그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틀린 말은 아니다. 우리의 사고방식이나 관념체계는 우리를 둘러싼 공간과 그 속의 관계망에서 형성되기 마련이다. 의식을 지배하는 공간을 바꾸려는 윤 당선인의 노력이 지금 더욱 절실히 필요한 곳은 바로 정부다. 융복합적 사회·경제문제들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선 정부조직도 중관춘처럼 개방형 혁신 공간으로 거듭나야 한다. 각 부처의 기능이 유기적으로 연계되고 민간과도 긴밀히 협력할 수 있는 구조로 바뀌어야 한다. 현재 진행되는 정부조직 개편이 의식을 넘어 혁신을 지배하는 단초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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