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련 참전한 재계 권력투쟁...60년전의 데자뷔?

머니투데이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 2022.03.23 13:52

[선임기자가 판다]

(서울=뉴스1) 국회사진취재단 =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21일 서울 삼청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열린 경제 6단체장과의 오찬 회동에서 기념촬영 하고 있다. 김은혜 대변인, 김기문 중기중앙회장, 허창수 전경련 회장,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 윤 당선인, 손경식 경총 회장, 최진식 중경련 회장, 구자열 무협 회장, 장제원 비서실장. 2022.3.21/뉴스1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21일 대한상공회의소, 한국무역협회, 전국경제인연합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경영자총협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등 6대 경제단체(발족순)의 회장을 서울 통의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사무실로 초청해 도시락 오찬을 가졌다.

이 회동 초기 연락책 역할을 전경련이 맡으면서 새 정부에서의 경제단체간 위상을 두고 물밑 힘겨루기가 치열했다. 특히 문재인 정부에서 국정농단 사건과 연루돼 곤욕을 치르며 정부의 경제인 모임에서 배제됐던 전경련(회장 허창수)이 윤 당선인과의 첫 재계 회동의 가교역할을 하면서 뒷말도 적잖았다.

회동 막바지에 당선인 측이 논란을 의식해 따로 각 경제단체들에 개별 연락을 취하면서 '전경련 주관'이 아닌 '당선인 주관' 행사가 되긴 했지만 그 과정에서 각 경제단체간 날선 공방도 물밑에선 이어졌다. 경제단체간의 보이지 않는 알력이 표면으로 드러난 순간이다.

이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멀리는 60여년전인 1961년 '한국경제인협회'와 '(가칭)한국경제협회'의 갈등 시기부터 이어져왔던 문제다. 정치권의 요구와 맞물려온 한국 기업 현대사의 어두운 단면이기도 하다. 경제단체간 힘겨루기의 역사의 이면을 파보고, 향후 과제를 점검했다.



5대 경제단체 회장단 회의에서 나온 "젊은 친구(60대)가 모르면 좀 가만 있어!"



=문재인 대통령이 28일 오후 청와대 본관 로비에서 기업인들과 칵테일 타임 간담회를 열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날 권오현 삼성 부회장, 최태원 SK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허창수 GS 회장, 최길선 현대중공업 회장, 황창규 KT 회장,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등이 참석했다. (청와대) 2017.7.28/뉴스1

몇년 전의 일이다. 5대 경제단체장(중견련 제외)의 모임에서 경제현안과 관련한 목소리를 조율하던 중 의견을 달리하는 60대의 젊은(?) 회장이 70~80대의 선배 회장들로부터 "젊은 친구가 모르면 좀 가만 있어!"라는 얘기를 들었다.

경제계의 이익을 위해 한 목소리를 내야한다는 생각이 강했던 선배들과 이제는 세상이 달라졌고 사회와의 공감과 소통이 중요하다는 후배 경제인간에 의견차이가 빚어낸 갈등이었다. 그 후에도 주요 경제현안에 대해 이견을 노출하며 경제단체간 갈등설은 끊이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지난해 2월엔 손경식 경총 회장이 전경련을 흡수통합하는 방안을 검토하라는 내부 지시를 내린 것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전경련의 강한 반발을 불러오기도 했다.

손 회장은 2013년 7월 당시 박근혜 정부로부터 대한상의 회장에서 물러나라는 압박에 의해 사퇴한 후 박 전 대통령이 탄핵 과정을 거치면서도 상의로 복귀하지 못하고, 2018년 경총 회장을 맡았다. 그는 경총 회장이 된 후 전경련에서 분리될 당시 경총의 원래 설립취지였던 노사문제를 넘어 종합경제단체로의 전환을 위해 정관을 변경하고 힘키우기에 나섰다.

허창수 전경련 회장이 연임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여러번 비추자 손 회장이 이 기회에 전경련을 흡수해 대한상의와 맞먹는 경제단체로의 몸집을 키우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재계에선 해석했다. 하지만 허 회장이 5연임하며 6번째 전경련 회장직을 맡으면서 전경련과 경총의 통합론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었다.

문재인 정부 들어 법정단체인 대한상의가 산업화 시대에 임의단체인 전경련이 해왔던 재계 맏형 역할을 대신했다. 상의의 입장에선 138년 역사의 법정 경제단체로서 당연한 역할이라는 입장이다. 다만 새 정부가 기업에 어떤 역할을 요구할 것이냐에 따라 경제단체간 위상의 변화 가능성이 여전히 존재한다.



60년전의 데자뷔...이름도 헷갈리는 '한국경제협의회, 한국경제인협회, 한국경제협회' 갈등


1961년 1월 11일 경향신문의 한국경제협의회 발족 기사/사진제공=네이버 옛날신문 캡쳐

경제단체의 갈등은 사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거슬러올라가면 4.19혁명과 5.16 군사정변을 거치면서 정치권의 요구에 의해 단체가 생기고 그 모습을 다양하게 바꾸면서 갈등 과정을 거치기도 했다.

경제단체의 역사는 138년 역사의 대한상공회의소(조선상공회의소의 후신, 1884년)를 시작으로 해방 직후인 1946년 한국무역협회가 설립돼 경제인들의 창구역할을 했다.

이후 자유당과 민주당 정권을 거치면서 정치권과 연루된 기업인들을 '부정축재자'로 몰아 징벌하던 시기에 법정단체가 아닌 임의 경제단체가 정치적 후원역할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설립됐다.

4.19혁명 직후 설립된 민주당 장면 정부의 요구에 맞추기 위해 1961년 1월 설립된 임의경제단체가 '한국경제협의회'다.

이 단체는 대한상공회의소가 초기 설립을 지원했는데, 그해 1월 10일 반도호텔에서 진행된 창립총회 임시의장은 송대순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맡았고, 이날 초대회장으로 김연수 삼양사 사장을 만장일치로 선출했다. 하지만 5.16 군사정변이 일어나 5개월만인 5월 30일에 그 수명을 다하고 해체됐다. 혁명군특별수사대가 반도호텔에 위치한 사무국 금고에서 정치자금으로 준비됐던 4억여환을 압수하고, 해당 단체 기업인들을 잡아들였다.

해체 이후 이 단체를 기반으로 1961년 7월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의 요구로 '경제재건촉진회'가 이병철 삼성물산 사장과 이정림 대한양회 사장, 설경동 대한방직 사장 등 13인을 중심으로 설립된다. 이들 또한 부정축재자로 낙인 찍혀 전재산의 국가헌납과 함께 이 단체를 통해 국가재건에 힘쓰겠다는 약속을 하고 풀려났다.

1961년 7월 17일 발족한 경제재건촉진회는 한달 후인 8월 18일 그 이름을 한국경제인협회로 바꿨다. 문제는 그 해 10월 27일 송요찬 내각수반과 김종필 중앙정보부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새 경제단체인 '한국경제협회 창립준비위' 발족식이 열리면서 생겼다.
'경제인협회는 왜 분열이 생겼나"라는 제목의 경제단체 분열을 다룬 1962년 10월 조선일보 기사/사진제공=네이버 옛날신문 캡쳐

기존 한국경제인협회에 반기를 든 한국경제협회가 별도의 경제단체를 만들겠다고 선언하고 그 자리에 내각수반과 중앙정보부장, 그리고 경제분야 장관 등을 불러 발기인 대회를 강행했다. 갈등의 이면에는 '외화차관'의 헤게모니가 있었다.

경제재건촉진회에서 이름을 바꿔 20개사가 참여한 '경제인협회' 중심으로 외자차관 사절단 등이 꾸려지면서 여기서 소외된 경제인들이 별도로 (가칭)한국경제협회를 만들고 거기에 정치인들을 동원해 세몰이를 한 것이었다.


이런 갈등이 표면화되면서 이를 합쳐야 한다는 압력이 커졌고 기존 '한국경제인협회'에 '한국경제협회추진위' 멤버 20여개사를 가입시키는 선에서 봉합됐다. 당시 언론들은 '20명을 태운 외화차관 미니버스'가 '40명을 태운 중형버스'로 바뀌어 갈등이 끝냈다고 풀었다. 그 후 통합 한국경제인협회는 1968년 전국경제인연합회라는 이름으로 바꿔 지금에 이르렀다.

한국경제협의회-->경제재건촉진회--->한국경제인협회-한국경제협회--->통합 한국경제인협회--->전국경제인연합회로 임의단체의 모양이 바뀌어온 셈이다.

한편, 1962년 5월에는 중소기업을 대표하는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현 중기중앙회)가 만들어지고, 전경련에서 노사문제만을 담당하도록 한국경영자총협회가 1970년 7월 분리돼 현재의 경제5단체의 틀이 갖춰졌다. 6번째 멤버로 참석한 중견기업연합회는 1992년 9월 한국경제인동우회라는 이름으로 창립해 1998년 현재의 이름으로 활동하는 막내 경제단체다.



IMF가 몰고 온 재계 힘의 균열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진상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1차 청문회’가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가운데 증인으로 출석한 제계 총수들과 관계자들이 자리하고있다. (왼쪽부터) 손경식 CJ 대표이사, 구본무 LG 대표이사, 김승현 한화그룹 회장, 최태원 SK 대표이사,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2016.12.06 뉴스웨이 이수길] /사진=사진공동취재단

법정단체인 대한상의가 전국 지역 소상공인들을 포함한 대중소기업을 망라하는 19만 회원사를 둔 단체인데 반해 전경련은 초기 50여개에서 현재 약 500개의 기업이 중심이 돼 산업화를 이끌어온 임의단체다.

산업화 과정에서 재계를 대표한 총수들이 회장을 맡으면서 재계 맏형 역할을 해왔다. 전경련에 힘의 균열이 생긴 것은 1998년 최종현 SK 그룹(당시 전경련 회장)이 작고하고,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이 맡아 IMF(국제통화기금) 체제를 거치면서다.

빅딜 과정에서 대기업간 이해가 상충을 원만히 해결하지 못하고 내부 갈등이 불거졌고 이후 전경련 회장직은 4대 그룹 오너 총수가 맡지 않고 그 힘이 약해졌다.

결정적인 계기는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으로 불린 미르재단과 K스포츠 재단 설립에 관여하면서 삼성과 현대차, SK, LG 등 4대 그룹이 2017년 탈퇴하면서다.

이들 4대 그룹은 2015년 기준으로 전경련 연간회비 492억원 가운데 77%가량인 378억원을 부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떠나면서 전경련 조직도 200명이 넘었던 인원이 80명 수준으로 줄고, 현재는 여의도 전경련 회관의 임대수입(약 400억~500억원 추정)에 상당부분 의존하는 실정이다. 이 임대수입으로 건물 건설에 들어갔던 약 3000억원의 부채를 갚아나가고 있다.

당시 전경련의 쇄신요구가 이어졌고 고 구본무 LG 회장은 국정농단 청문회 당시 전경련을 '해리티지 재단'과 같은 정책연구 기관으로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기고 했다.



전경련은 부활할까?...과거로의 회귀가 힘든 이유


[서울=뉴시스] 국회사진기자단 = 최태원(왼쪽)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 회장과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회장이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통의동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사무실에 자리하고 있다. 이날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과 경제 6단체장들은 오찬 회동을 가졌다. 2022.03.21.

재계 맏형 역할을 하던 전경련이 지난 5년간 경제정책과 관련한 정부와의 협의에서 배제돼 오다가 이번 윤 당선인의 오찬 회동에 초대되면서 전경련 부활에 대한 얘가가 나온다.

하지만 현재로선 그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인다. 전경련 살림의 80% 가량을 책임졌던 네 기둥인 삼성, 현대차, SK, LG가 전경련 회원사로 재가입할 가능성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삼성은 이재용 부회장은 자신이 수형생활을 하게 된 계기이자, 국정농단 청문회에서 '전경련 탈퇴' 대국민 약속을 한 상황이라 이를 번복할 명분이 마땅찮다.

LG는 선대 구본무 회장 당시인 1998년 '반도체 빅딜'과 관련해 전경련이 일방적으로 다른 기업의 편에 섰다는 이유를 들어 전경련을 사실상 조기탈퇴한 경우다.

전경련 회장을 맡고 있는 허창수 회장의 GS 그룹과의 오랜 파트너 관계에도 불구하고 구광모 LG 회장이 선대 회장의 뜻을 번복할만한 사유가 현재로선 없다.

SK는 선대 최종현 회장과 손길승 회장이 전경련 회장을 맡은 경력이 있긴 하지만 현재 최태원 회장이 대한상의 회장을 맡고 있는 상황에서 전경련에 발길을 하기는 불가능하다.

정주영 현대 창업주가 회장을 맡은 경력으로 정의선 현대차 회장이 전경련에 발걸음을 할 수도 있지만 4대 그룹 중 혼자 임의단체인 전경련에 발을 담그는 부담을 안을 지는 미지수다. 재계에선 각 경제단체들이 처음 설립될 당시의 역할에 충실히 해 기업과 국민 모두에게 이로운 역할을 해야 한다며 갈등은 상호 이롭지 않다는 얘기가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들은 오래 전부터 정권이 바뀔 때마다 어려움을 겪었던 트라우마가 있어 항상 조심스럽게 움직인다"며 "지금의 경제단체간 힘겨루기는 어떤 이득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새 정권 출범초기 피해를 덜 보기 위한 움직임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기업 관계자는 "경제단체의 갈등 이면에는 명예를 차지하기 위한 회장들간 갈등도 있지만, 자신들의 직장인 경제단체 사무국의 운명과도 연관이 있어 더 날카롭게 진행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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