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의 '독립전쟁'…"푸틴에 굴복하면 '우리'가 없어진다"

머니투데이 최경민 기자 | 2022.03.18 05:30

[찐터뷰 : ZZINTERVIEW]9-①굿바이 '루스키 미르'

편집자주 | '찐'한 삶을 살고 있는 '찐'한 사람들을 인터뷰합니다. 유명한 사람이든, 무명의 사람이든 누구든 '찐'하게 만나겠습니다

[오데사=AP/뉴시스] 20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오데사에서 대형 우크라이나 국기를 든 시위대가 거리를 행진하고 있다. 오데사에서 8년 전 100여 명이 숨진 마이단 시위를 추념하며 수천 명의 시위대가 모여 단합된 모습을 보였다. 이들은 국기와 각종 구호가 적힌 팻말을 들고 러시아 침공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며 유사시 도시를 지킬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2022.02.21.
이건 독립전쟁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일방적 침공 결정에 의해 시작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이해하려면 반드시 이 시각에서 봐야 한다.

혹자는 우크라이나가 서구 세계의 부추김 속에 러시아와 대리전을 치렀다고, 피할 수 있는 전쟁을 어리석은 코미디언 출신 대통령과 국민들의 오판으로 겪고 있다고, 그리고 결국 남는 건 잿더미가 된 국토뿐일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를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고 한다.

국제정치는 '강대국 간 패권다툼'의 연장선인 경우가 많지만, 모든 사례가 그렇진 않다. 이런 틀 하나만으로 세상을 본다면 중진국과 약소국, 그리고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의지와 선택이 가진 힘이 과소평가 받게 된다. 전 세계인들을 깜짝 놀라게 한 '용기'로 국제정치의 흐름을 뒤흔든 우크라이나의 사례를 설명할 길이 없어진다.

'찐터뷰'는 지난달 24일 러시아의 침공 개시 이후 십수명의 우크라이나인, 그리고 올레나 쉐겔 한국외국어대 우크라이나과 교수와 인터뷰를 갖고 이번 전쟁의 의미를 찾으려 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가 사실상 '진짜 독립'을 위한 선택을 했다고 결론내렸다.


지배-피지배 관계…싸워서 '자유 국가' 쟁취


"그동안 우리는 속국 취급을 받으며 억압받아왔다. 독립, 자유, 그리고 존엄을 위해 반드시 싸워야 한다."(르비우의 대학생 크리스티나, 20대)

"우리는 자유와 민주주의로 가는 길을 택했다. 우리의 운명을 결정하는 길을 택했다. 우리는 이 전쟁을 통해 '자유로운 국가로서의 존재'를 쟁취해낼 것이다."(키이우의 교육계에서 일하는 크라우트소우, 35세)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이같이 이구동성으로 '권위주의 독재체제'인 러시아로부터 '자유 민주주의 국가'의 정체성을 지키겠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가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것은 1991년. 이미 30년 동안 지켜온 물리적 독립이지만 초강대국 러시아의 영향력은 너무 강했다. 이 영향력을 이제 차단하고 자유 민주주의 국가로 독립된 길을 걷고 싶다는 게 우크라이나인들의 생각이었다.

"우크라이나의 '진짜 독립'을 위한 전쟁으로 보는가"라는 질문에 복수의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그렇다"고 답했다. 이런 우크라이나인들의 생각과 관련된 대화를 쉐겔 교수와 나눴다.
올레나 쉐겔 한국외대 교수
-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독립전쟁'이라는 의미에 동의를 표하더라.
▷"그렇다. 탈(脫) 소련화, 그리고 탈 러시아화. 영향에서 벗어난다고 한다면 좀 부드러운 표현일 것이다. 사실은 지배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것이다."

- 분명 우크라이나의 '선택'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국제사회에는 분명 강대국들이 있다. 약소국들은 강대국들의 편을 들어 움직인다. 한국도 마찬가지이지 않나. 그런데 그건 나름의 이득이 있어야 할 수 있는 것이다. 안보자산이든, 경제적 이득이든 뭔가가 있어야 편을 들 수 있는 것 아닌가. 그걸 피해보면서 왜 누군가의 편을 드나."

-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해준 게 없다는 것인가.
▷"그런 거 보다는, 한미관계를 예를 들면 그건 '협력관계'이지 않나. 한 쪽이 힘이 강하고 한 쪽은 상대적으로 약하지만 그래도 협력관계다. 그런데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협력관계인 적이 없다. 러시아는 지배, 우크라이나는 피지배였다."


나토? 레토릭일뿐…목표는 '속국 우크라이나'


그렇다고 전쟁을 일으킨 건 우크라이나가 아니다. 그들은 전쟁을 원한 적이 없다. 러시아는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 등 우크라이나의 도발로 전쟁이 불가피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지배-피지배'의 맥락에서 보면 이런 러시아의 침공 명분은 레토릭에 불과해진다.

실제 나토 측은 러시아와의 갈등을 우려해 단 한 번도 우크라이나의 요청을 심각하게 고려한 적이 없다. 가시화된 적 자체가 없단 의미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도 전쟁 직전인 지난달 15일 푸틴 대통령에 협상을 통한 양국 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나토 가입은 그저 꿈"이라고 했던 바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막는 것은 '현상유지'만으로 충분했다.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전쟁 발발 후 러시아 측의 본심이 그대로 드러났다고 본다.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는 진정한 의미의 독립국이었던 전통이 없다"며 우크라이나의 주권을 부정했다. 그리고 줄기차게 '우크라이나의 비무장화'를 요구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인들 입장에서는 "점령해서 다시 속국으로 삼겠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크림반도 병합, 돈바스 지역 분쟁도 모두 이 수순에 있는 과정이었음이 드러났다는 것.

(키이우 AFP=뉴스1) 우동명 기자 =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13일 (현지시간) 키이우의 군 병원을 찾아 러시아 군과 전투서 부상을 당한 장병을 문병하고 있다. (C) AFP=뉴스1
즉 이번 전쟁은 '이성적 판단'이 아니라 '비이성적 프로파간다'(지배-피지배) 아래 진행됐다. 마치 '독일 제국'의 재건을 바라고 폴란드를 침공했던 히틀러처럼,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 제국'의 부활을 노리고 우크라이나를 공격했다. "왜 히틀러가 일으킨 제2차 세계대전을 막지 못했나"라는 질문은 그 자체로 의미가 없다. 푸틴 대통령이 일으킨 이번 전쟁도 마찬가지다.

쉐겔 교수는 "2019년에 '나토 가입이 외교정책의 방향 중 하나다'라는 취지의 문구가 헌법에 들어간 것은 2014년 러시아로부터 크림반도 공격을 받고 사람들 생각이 바뀐 결과다. 그마저도 '가입하겠다'는 뜻도 아니다"라며 "러시아가 그렇게 우리를 밀어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나토 가입이 아니라 해도 러시아는 다른 핑계를 찾아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 발씩 내디뎌온 민주주의…굿바이 루스키 미르


전쟁을 피하기 위한 방법은 딱 하나였다. 우크라이나가 순순히 무장을 모두 해제하고 '러시아의 속국' 위치를 받아들였어야 했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불가능해진지 오래다. '권위주의 독재체제'만 경험해온 러시아 사람들과, 소련 붕괴 이후 30여년 동안 자유 민주주의를 조금씩 발전시켜온 우크라이나 사람들 간에 아예 다른 사고방식이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실제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2004년 오렌지혁명, 2013년 유로마이단 혁명을 거치며 독재자들을 끌어내리고 자유 민주주의 국가로 천천히 한 발씩 내딛어온 것에 무한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크라우트소우는 "우크라이나는 부패한 권위주의적 대통령에 반기를 들었고, 이제 조금씩 잘 살기 시작했다. 반면 러시아 정부는 철저히 부패했다"며 "푸틴은 우크라이나인들이 러시아인들보다 더 잘 사는 것을 허용할 수 없다. 푸틴은 이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그래서 자유 우크라이나의 완전한 파괴를 원한다"고 말했다.

르비우의 학생 미하일로(21세)는 "러시아는 그저 땅만 큰 북한에 지나지 않는다. 독재자가 권력을 쥐고 시민들을 인질로 잡고 있다"며 "단지 핵무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세계가 주목하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크리스티나는 "러시아의 제국주의는 프로파간다, 전체주의 레짐, 그리고 독재에 기반한다"고 평가절하했다.
(서울=뉴스1) 박지혜 기자 = 국내 체류 중인 우크라이나인들이 27일 서울 중구 러시아대사관 앞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며 러시아에 대한 경제적 제재 등 우리나라의 적극적인 대응과 함께 국민적 관심을 호소하고 있다. 이들은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에서 철수할 때까지 매주 집회를 이어갈 계획이다. 2022.2.27/뉴스1
쉐겔 교수는 이런 '자유 민주주의적 전통'이 우크라이나가 이른바 '루스키 미르'(russkiy mir, 러시아적 세계)에서 나오기 시작하는 데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그는 16~17세기 코자크(자유민) 시대 때부터 우크라이나에는 선거로 지도자를 뽑는 문화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런 우크라이나를 러시아가 강제로 권위주의 세계관의 '루스키 미르'로 끌고 들어왔고, 이제 거기서 나오려는 우크라이나에 온갖 협박을 하다가 전쟁까지 일으켰다는 것.

쉐겔 교수는 "우크라이나에는 그동안 국내에 정치적, 경제적 문제가 많았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자유였다. 사람들은 당연히 자기 의견을 얘기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반면 러시아 사람들은 자신이 '하나의 작은 나사'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항상 강인한 지도자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전혀 다른 세계에서 살아왔다"고 말했다.


"이번에 무너지면 '우리'가 없어진다… 반드시 국가 재건"


결국 쉐겔 교수는 일방적인 굴복을 요구하는 러시아에 우크라이나가 '자유 수호'를 앞세워 결사항전을 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고 말한다. 그는 "유럽은 자유, 민주주의, 복지, 질서 등 4개의 키워드를 갖고 있다. 반면 러시아는 부정부패, 관료주의, 제국주의, 독재주의 키워드"라며 "둘 중 어디로 가야 하나? 당연히 유럽으로 가게 돼 있다. 우크라이나의 전통과 가치관은 유럽과 밀접하다"고 설명했다.

또 "우리가 이번에도 무너지고 국권을 빼앗기면 러시아가 우리를 짓밟을 것이다. 완전히 우리를 없애려고 할 것이라고 사람들이 생각한다"며 "반드시 지켜야 한다. 이번에 무너지면 우리의 역사가 없어진다. 다시 일어서기 힘들다는 것을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잘 알고 있다"고 힘을 줬다.

"피신하라"는 미국의 제안을 뿌리치고 수도를 사수하는 대통령, 직접 기관총을 들고 전선에 나선 '전설의 복싱 챔피언' 시장(비탈리 클리치코), 결혼을 하자마자 입대해 총을 든 신혼부부, 러시아의 탱크 앞에서 우크라이나 국기를 흔들며 시위를 하는 헤르손의 시민들, 직접 화염병과 위장용 그물을 만드는 국민들은 그렇게 세계 2위 러시아의 군대에 맞서고 있다.

개전이 어느덧 4주차에 접어들며 이제 러시아가 자력으로 우크라이나를 굴복시키는 게 힘들어지고 있다는 분석도 조금씩 나오기 시작한다. 약소국은 초강대국 패권에 따라야 한다는 '이론'과 달리, 우크라이나는 '루스키 미르'에서 확실하고 단호하게 걸어나오고 있다.
(키이우 로이터=뉴스1) 우동명 기자 = 13일 (현지시간) 키이우 인근 전선에 참호서 우크라이나 군이 휴대용 대전차 재블린 미사일을 들고 손가락으로 V자를 그리고 있다. (C) 로이터=뉴스1
문화학을 공부하고 있는 대학생 크리스티나는 "내 젊음을 우크라이나의 재건을 위해 바칠 각오를 하고 있다. 우리의 문화를 재건하고 확산시키기 위한 마음가짐이 섰다"고 말했다. 키이우의 싱크탱크에서 일하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한 율리아(24세)는 "땅을 지켜내고, 도시를 재빠르게 재건할 것"이라며 "우리의 도시를 러시아의 도시들보다 더 좋게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크라이나 서부 테르노필의 회사원인 킬코(32세)는 "푸틴이 스스로 철군을 결정할 것인가? 그럴 리가 없다. 오직 우리가 그들을 물리칠 때에만 철수하기 시작할 것"이라며 "우크라이나가 없으면 '우리'도 없을 것이라는 점을 이해하고 있다. 승리한 다음 반드시 나라를 재건할 것이다.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꿈을 꾸고 있다. 여전히 맞서 싸우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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