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는 "사설 토토사이트를 이용하며 운영자와 갈등이 있었는데 '계좌 묶겠다'고 하더니 다음날 지급정지 통보를 받았다"며 "입금자에게 연락해보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통장에서 불특정 다수에게 돈이 송금돼 경찰에 신고했다며 법대로 하자고 했다"고 밝혔다.
보이스피싱 일당이 돈을 받고 특정 계좌에 보이스피싱 피해금을 송금해 '계좌정지'를 당하도록 하는 사례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보이스피싱 피해자가 휴대전화에 원격제어 어플리케이션을 깔도록 한 뒤 의뢰인이 지정한 계좌로 10만~50만원 가량의 돈을 보내고, 피해 신고를 유도해 해당 계좌를 정지시키는 방식을 사용한다.
보이스피싱 피해구제제도를 이용하면 피해금이 입금된 계좌가 곧바로 지급정지되는 점을 악용한 수법이다. 돈을 송금받은 사람의 입장에선 영문도 모른채 전자금융거래가 모두 막히는 셈이다. 일명 '통장 협박'(통협)이다. 과거 불법 도박 사이트를 대상으로 성행하던 수법이 일반인과 자영업자까지 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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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돈 30만원에…"'핑돈'(보이스피싱 피해금)으로 '지급정지' 해주겠다"━
B씨는 자신이 정지해둔 통장이라며 사진 여러 장을 보냈다. 개인 혹은 기업 통장으로 '핑돈'을 보낸 이체내역이었다. 사진마다 입금자가 모두 달랐다. 공통점이 있다면 입금자명이 텔레그램 아이디로 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B씨는 "직접 입금해서 거래정지 여부를 확인해보라"고 자신했다.
B씨가 보낸 이체내역에 나와있는 통장에 송금을 시도했다. 번번이 사고신고로 등록된 계좌라서 입금이 불가능하다는 안내가 나왔다. 경찰에 적발될 일은 없냐고 묻자 B씨는 "절대 없다"고 못을 박았다. 기자가 더이상 관심을 보이지 않자 얼마 지나지 않아 대화방은 흔적없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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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스피싱 피해자 두 번 이용하는 '통협'…자영업자와 일반인까지 위협━
C씨 등은 2017년 3월과 5월에 다른 이의 권유로 인터넷 도박사이트 계좌에 돈을 입금한 후 경찰에 허위 보이스피싱 사기 피해를 신고한 혐의를 받는다. 이들은 18회에 걸쳐 시중은행을 찾아가 계좌 지급정지를 신청하고 도박사이트 운영자를 협박해 은행 지급정지를 풀어주는 대가로 돈을 뜯어낸 것으로 파악됐다.
이 같은 수법이 점차 변해가며 인터넷에 계좌가 공개된 자영업자나 누군가의 원한을 산 일반인까지 노리게 됐다. 경찰은 이들이 보이스피싱을 허위로 신고하면 처벌받는 점을 의식해 선의의 피해자에게 원격 제어 어플을 받도록 한 뒤 의뢰 계좌로 피해금을 분할송금하는 방식으로 범행을 저지르고 있다고 했다.
경찰 관계자는 "금융감독원, 금융기관, 경찰에서 최근 유행하는 범행 수법으로 인지하고 해결 방법을 찾아보고 있다"고 했다. 또 "해당 범행과 관련해 의뢰인 등에게 어떤 혐의를 적용할지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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