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워줄게" 가출 청소년 노리는 SNS '검은손' 함부로 잡았다간…

머니투데이 황예림 기자, 강주헌 기자 | 2022.03.14 16:06
/사진=이지혜 디자인기자

숙식 제공을 빌미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가출 청소년에게 접근한 뒤 중범죄를 저지르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공공에서 운영하는 청소년 쉼터가 가출 청소년들의 신뢰를 얻지 못하면서 아이들이 민간 '헬퍼'(helper·가출 청소년에게 도움 주는 사람)에 기대는 현상이 나타나는 모습이다.

14일 기준 트위터·페이스북·카카오톡 등 SNS엔 '가출 청소년의 숙식 제공을 도와주는 헬퍼'라고 본인을 소개하는 글이 여러 건 게시돼 있다. '인천 헬퍼'라는 한 트위터 이용자는 '가출하게 된 계기와 현재 상황을 인증할 수 있는 분은 DM(다이렉트 메시지)을 달라'는 게시물을 이날 작성했다. 또 다른 트위터 이용자는 '숙소 제공 도와드린다. 경기 거주 여자만 연락 달라'는 내용으로 글을 올렸다.

같은 기간 헬퍼를 구하는 글도 수십 건 게시돼 있다. 한 트위터 이용자는 잔고가 0원인 자신의 통장 내역 사진과 함께 '주위 쉼터는 일주일 더 기다려야 들어갈 수 있다. 돈이 전부 떨어져 2일째 굶고 있다'고 말하며 헬퍼 해시태그(#)를 달았다.

SNS가 가출 청소년과 민간 헬퍼를 연결하는 공간으로 자리 잡은 가운데 SNS를 통해 만난 가출 청소년을 상대로 강력 범죄를 저지르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지난 1월 9일 서울 강서구에서 발생한 '부동산 분양 합숙소 감금·추락 사건' 피해자 A씨는 '가출인 숙식 제공합니다'라는 내용의 SNS 게시물을 보고 합숙소에 팀원으로 합류했다가 박모씨(28), 원모씨(23) 등에게 가혹 행위를 당했다. A씨는 감금·폭행·물고문 등 가혹 행위를 피하려다 7층 높이에서 추락해 중태에 빠지기도 했다. A씨 추락 당시 이 합숙소엔 고등학생 B씨(17)도 함께 살고 있었다.

지난해 3월에도 20대 남성과 50대 남성이 숙식 제공을 빌미로 SNS를 통해 만난 중학생 C씨 등 10대 3명을 자신의 집으로 유인한 뒤 성폭행을 저질러 서울 도봉경찰서에 붙잡혔다. 작년 초엔 40대 남성이 가출 청소년을 자신의 원룸에 얼마간 머물게 하다 성폭행한 혐의로 입건되기도 했다. 당시 중학생 D씨는 SNS에 헬퍼를 구한다는 글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학대 청소년 입소 때도 부모에 연락…전문가 "청소년 쉼터 규정 개선돼야"


/사진=이지혜 디자인기자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가출 청소년이 머무를 수 있는 청소년 쉼터는 올해 3월 기준 135개소다. 이 쉼터는 모두 정부·지자체 등에서 출연한 자금으로 운영되고 있다. 135개소 중 이용 가능 기간이 7일 이내인 일시 쉼터는 32개, 3개월 이내인 단기 쉼터는 64개, 3년 이내인 중장기 쉼터는 39개다.

공공 쉼터가 존재하긴 하지만 이용률은 높지 않은 실정이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소속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2020년 10월 경찰청을 통해 받은 자료에 따르면 청소년 약 2만4000명이 매년 실종·가출 등으로 신고된다. 신고되지 않은 청소년까지 포함한 실제 가출 청소년 규모는 약 12만명으로 추산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2020년에 청소년 쉼터에 입소한 청소년은 총 2만400명이었다.


전문가는 공공 쉼터의 경우 청소년의 가정 복귀를 최종 목표로 삼고 있어 가정 폭력 등을 겪은 청소년에게 기피 대상이 되고 있다고 말한다. 또 다른 전문가는 공동생활에 필요한 여러 규칙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방황하는 청소년을 위해 쉼터 운영 방식을 유연하게 바꾸는 한편 공공 인력이 더 적극적으로 SNS에서 헬퍼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박옥식 한국청소년폭력연구소 소장은 "가출을 택하는 아이들 중엔 비행 청소년도 있지만 대부분은 학대와 가정 내 불화 등을 피해 집을 나온다"며 "그런데도 청소년 쉼터에 입소하면 72시간 내 지자체 학대전담팀이나 경찰 등에 연락이 가기 때문에 부모에게 다시 끌려가지 않기 위해 최후 수단으로 민간 헬퍼에게 기대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박 소장은 "가정 복귀가 필요한 아이도 있겠지만 학대 청소년에겐 집이 곧 지옥인 만큼 아이들의 입장을 충분히 반영해 퇴소를 결정해야 한다"며 "그러기 위해선 쉼터 직원의 세밀한 상담과 지도 등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정익중 이화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집단생활과 규칙에 적응하지 못해 쉼터에서 나간 뒤 민간 헬퍼에게 도움을 청하는 아이들이 많다"며 "아이들의 안전이 가장 중요한 만큼 적어도 입소 초기엔 아이들에게 자율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쉼터 운영 방식을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정 교수는 "아이들이 많이 이용하는 SNS 커뮤니티에 쉼터에 대한 정보를 지속적으로 남기고, 헬퍼 구인 글이 올라올 경우 민간 헬퍼보다 먼저 아이들에게 접근하는 방식의 공격적인 사이버 전략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어 "쉼터 직원이 전문성을 바탕으로 아이들을 지도하는 일도 중요한데 지원이 열악한 나머지 좋은 인력이 쉼터에서 오래 머무르지 못하고 있다"며 "결국 정부와 지자체 예산이 우선적으로 확보돼야 가출 청소년을 타깃으로 한 범죄도 줄어들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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