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자존자강(自尊自强)의 스마트 안보·외교

머니투데이 구민교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 | 2022.03.11 02:03
구민교 서울大 행정대학원 교수
1970년대 '007' 영화를 보며 자란 필자에게 '외교'란 선과 악의 냉혹한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자 제임스 본드가 신종무기와 기지로 멋지게 악당을 물리치는 낭만의 무대였다. 국가간 외교의 본질은 권력관계지만 상상력과 허구의 영역이기도 하다. 호모사피엔스는 같은 사람속(genus Homo)에 속한 네안데르탈인과의 3만 년 전 최후 경쟁에서 승리했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에 따르면 "인지혁명과 언어의 발달 덕분에 전설과 신화와 종교라는 허구를 만들어 각 개체의 힘을 하나로 모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세간의 이목이 쏠린 미중 패권경쟁은 '미국 우선주의'와 '중국몽(夢)'이라는 '허구'에 기대지만 자국 밖에서는 공감을 얻지 못한다. 팽창주의 망상에 빠진 푸틴의 '소련몽'은 모두의 악몽이 됐다. 최근 우크라이나인들이 보여준 자유와 평화에 대한 용기와 열정, 그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지와 연대는 척박한 자국중심주의와 내로남불 외교 시대에 큰 위안이 된다. 개인이건 국가건 꿈이 신화가 되느냐, 망상이 되느냐는 결국 모두의 공감과 지지에 달렸다.

안타깝게도 우리 안보·외교의 가장 큰 화두인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는 국제사회의 공감도 지지도 얻지 못한 채 우리만의 희망사항에 그쳤다. "북한을 대화로 설득할 수 있다" "반성 없는 일본과 그에 부화뇌동하는 토착왜구를 청산해야 한다"는 문재인정권의 공허한 외침은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가 됐다. 임기 말까지 매달린 종전선언도 그렇다. 우리를 중심으로 이웃들이 움직일 것이라고 믿는 외교적 천동설이다. 중국이 우리 역사를 왜곡하고 외교무대에서 억지를 부려도 북핵과 경제를 생각해 꾹 참자거나 반대로 한미동맹만 신줏단지 모시듯 하는 고정관념은 상상력 부재의 외교적 위성설이다.

안보·외교 무대는 경제력과 군사력 바탕의 하드파워, 그리고 가치와 매력 기반의 소프트파워가 서로 치열하게 밀고 당기는 공간이다. 물리적 힘의 뒷받침이 없는 자아도취적 '자주' 외교는 설 자리가 없다. GDP 세계 9위, 군사력 세계 6위인 대한민국이 주변 강국 앞에만 서면 작아지듯이 물리적 힘만으로 외교적 위상이 결정되는 것도 아니다. 작금의 대한민국 안보·외교는 여전히 과거 식민지와 냉전 시대에 갇힌 세계관 때문에 왜소 콤플렉스에 빠져 있다. 소프트파워와 하드파워를 결합한 자존자강의 스마트외교를 얼마든지 펼칠 수 있는데 말이다.


어떤 고립계가 열적 평형 상태에 있지 않다면 무질서도, 즉 엔트로피(entropy)가 계속 증가한다는 열역학 제2법칙이 안보·외교 무대에서도 작용한다. 현실주의 국제정치이론이 강조하는 무정부성(anarchy)은 엔트로피와 일맥상통한다. 두 개념 모두 통제불능의 무질서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힘과 에너지의 균질화에 가깝다. 국제정치의 무정부성이 커진다는 것은 일극에서 양극으로, 양극에서 다극으로 복잡계 내의 권력이 균질하게 분산된다는 뜻이다. 미중 패권경쟁은 그래서 허구다. 과거 패권질서의 향수에 빠진 이들의 바람과 달리 세상은 탈중앙화와 분산화의 방향으로 가고 있다.

우리 안보·외교가 빠진 결정장애를 극복하려면 양극 체제적인 안미경중론의 틀을 깨는 용기와 상상력이 필요하다. 더는 '전략적 모호성'이나 '자주'라는 말 뒤로 숨지 말자. 그간 전략은 없고 모호하기만 하지 않았던가. 그나마 모호성도 주저함일 때가 많았다. '자주'는 매력적인 수사지만 보편성에 취약하다. 우리 국익뿐만 아니라 세계인이 공감하는 가치도 담아야 한다. 주변국의 인권탄압이나 군사도발에 쉬쉬하고 침묵한다면 누가 우리의 자존자강에 공감하겠는가. 과거 동북아균형자론, 글로벌 코리아, 동북아평화협력구상, 현 정부의 신북방-신남방정책 모두 공허한 수사에 그친 이유를 되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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