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푸틴은 왜 우크라이나 침공을 결정했을까

머니투데이 제성훈 한국외국어대학교 노어과 교수 | 2022.03.10 12:15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러시아 대외정책 전문가들에게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크림반도를 병합했음에도, 그동안 러시아가 UN 안보리의 결의 없이 다른 국가의 주권을 침해하는 미국의 개입을 비판해왔기 때문이었다. 미국의 거듭된 침공 예측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고위 관리들이 일관되게 '침공'을 부인하고 이를 '서방의 히스테리'로 일축해왔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다.

12월 중순 러시아가 미국 및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적대관계 청산, 추가 확대 포기, 신규 회원국 영토에 추가 병력 및 무기 배치 금지 등 요구사항을 제시하고 협상을 시작했을 뿐만 아니라,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숄츠 독일 총리가 연이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면담하면서 외교적 해결도 가능해 보였다. 하지만 2월 21일 푸틴은 우크라이나 정부와 8년간 내전을 벌인 도네츠크 공화국과 루간스크 공화국의 주권을 인정하고, 24일 새벽 이들 지역의 주민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우크라이나의 '비무장화'와 '비나치화'를 위한 특별 군사작전 개시를 선언했다.

러시아는 처음부터 침공을 준비했던 것일까? 협상은 그저 침공을 위한 명분 쌓기에 불과했던 것일까? 그렇다면 굳이 지면이 얼어붙은 적기(適期)를 피해 3개월이 넘도록 침공을 지체할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또한, 1월 말 미국 및 NATO가 보낸 답변서에 대한 회신을 2월 17일에 보낼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푸틴은 왜 우크라이나 침공을 결정했을까? 애초 '군사적 시위'로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는 명확해 보였다. 먼저,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을 저지하고, 더 나아가 NATO와 적대관계를 청산하는 것이었다. 다음으로, 민스크협정 이행으로 우크라이나 내 친러 지역의 특별지위를 보장하고, 이를 기반으로 영향력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목표는 시간이 갈수록 달성되기 어려워졌다. 첫째, NATO는 '문호개방정책'을 포기하지 않았고, 미국은 러시아의 핵심 요구사항을 거부했다. 오히려 미국은 침공 예상일을 지목하면서 침공을 기정사실화했다.

둘째, 우크라이나도 NATO 가입을 포기하지 않았다. 마크롱 대통령이 중립화를 타협안으로 제시했지만, 침공 시 파병을 하지 않는다는 미국 및 NATO의 공언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의 입장은 바뀌지 않았다. 오히려 2월 19일 젤렌스키 대통령은 뮌헨 안보회의에 참석해 침공 이전에 고강도 제재를 요청하면서 핵무기 포기마저 재고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셋째, 동부 지역의 교전 격화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는 민스크협정 이행에 대한 어떠한 의지도 보이지 않았다. 이는 러시아의 관점에서 친러 지역에 거주하는 약 370만 명의 주민을 여전히 내전 상태에 남겨두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 상황에서 푸틴은 확신했을 것이다. 첫째, 미국 및 NATO와의 협상에서 진전을 기대할 수 없고 우크라이나도 포기하지 않는다면 NATO의 추가 확대는 언젠가는 이루어질 것이다. 둘째, 우크라이나가 민스크협정을 이행할 생각이 없다면 동부 지역을 탈환하기 위한 군사적 공세 역시 계속될 것이다. 셋째, 시간이 흐를수록 우크라이나의 군사력은 강력해지고 민족주의도 공고해질 것이다. 이제 선택지는 두 가지뿐이었다. 벨라루스와의 군사훈련을 예정대로 종료하고 외교적 해결에 기대를 걸든가, 아니면 우크라이나를 신속하게 군사적으로 제압하고 서방과 협상을 하든가.

불행히도 탈소비에트 지역통합을 자신의 역사적 사명으로 인식한 푸틴은 후자를 선택했다. 하지만 그가 간과한 것이 있었다. 첫째, 우크라이나 국민의 저항 의식을 오판했다. 2014년 초 동남부 지역에서 과도정부에 반대하는 시위가 광범위하게 전개된 것처럼 침공이 적어도 일부 국민의 지지를 확보할 수 있다고 착각했다. 둘째, 지난 8년간 서방의 군사적 지원을 받으면서 침공에 대비한 우크라이나군의 군사력을 과소평가했다. 무엇보다도 주권 국가에 대한 침공이 러시아가 그동안 NATO 확대의 부당성을 지적하면서 확보한 대응조치의 정당성 자체를 무너뜨려 국제사회의 어떠한 지지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간과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하지만 이 사건이 탈냉전기의 종언과 이른바 '신냉전'의 본격적 시작을 의미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제 탈냉전기 세계질서의 문법은 폐기되었고, 새로운 세계질서의 문법은 아직 형성되지 않았다.
제성훈 한국외대 노어과 교수/사진=제성훈 교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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