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3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에서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이 돈 그레이브스 상무부장관과 달립 싱 백악관 NEC·NSC 부보좌관 등 미국 정부 고위인사와 연쇄 면담을 진행해 미국의 대 러시아 FDPR 조치에서 한국을 제외하기로 합의했다고 4일 밝혔다.
앞서 미국 상무부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지난달 24일 자국 기업에 대한 전략물자 수출 통제와 제3국에 대한 FDPR 적용 등을 골자로 하는 러시아에 대한 수출규제를 발표했다. FDPR은 미국에서 러시아로 가는 물자는 미국 스스로 통제하고, 미국산 기술과 SW(소프트웨어)가 사용된 다른 나라 제품·부품에 대한 러시아 반입도 미국의 동의를 받도록 하는 제도다. 미국은 미중 무역갈등 당시 중국 화웨이의 반도체 칩 공급망을 제한하기 위해 해당 규정을 활용하기도 했다.
여한구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워싱턴 D.C.에서 한미 회담을 마친후 특파원들과 만나 "미국에서 처음 (면제) 목록을 발표하기 훨씬 이전부터 산업부와 상무부 간 실무진에서는 계속 협의하면서 조율을 해 왔다"라며 양국 간 시스템 차이로 조금 더 시간이 걸린 것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다"라고 했다.
산업부에 따르면 미국은 이날 협의에서 FDPR 면제 국가 리스트에 포함시키면서 한국의 대러시아 수출통제 이행방안이 국제사회의 수준과 잘 동조화(well-aligned)됐다고 평가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미측이 수일 내 한국을 FDPR 면제국가 리스트에 포함하는 관보 게재 등의 조처를 할 계획이라는 점을 확인했다"며 "정부는 이번 FDPR 면제 결정과 함께 미국 등 국제 사회와 유사한 수준의 추가적인 수출통제 조치에 들어가게 된다"고 했다.
러시아에 있는 국내기업 자회사에 대한 부품 수출도 원칙적으로 금지되지만 한국 정부가 사안 별 심사(case-by-case)를 통해 승인할 경우 수출이 가능하다. 베트남 등 제3국 소재 공장에서 러시아로 부품·반제품 수출을 할 때도 같은 조건이다. 즉 현대차가 완성차와 반제품을 각각 러시아 시장과 현지 공장에 수출하려 할 경우 완성차라면 일반 소비자용이라는 사실만 확인되면 수출길에 오를 수 있다. 반제품의 경우에도 한국정부의 사안별 심사를 거치면 수출길에 오를 수 있다. 한국CXO연구소에 따르면 국내 16개 그룹이 러시아에서 53개 법인을 운영 중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러시아 인근에 TV 등 가전공장을 운영하고 있고, 현대차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 현지공장이 있다.
다만 국제사회가 VTB방크·방크 로시야·방크·오트크리티예·노비콤방크·소프콤방크·프롬스비야지방크·대외경제은행(VEB) 등 러시아 7개 은행을 스위프트(SWIFT)에서 제외한 만큼 달러화 대금 결제를 위해선 우회 계좌를 찾아야 한다. 스위프트는 금융거래 메시지를 위한 통신네트워크다. 현재 200여국 1만1500여개의 금융기관이 송금 메시지를 '스위프트 코드'로 전송하고 있다. 스위프트에서 제외되면 사실상 달러화나 유로화 등으로 해당 금융기관과 입금, 출금 등의 금융서비스를 진행할 수 없다.
이와 함께 정부는 금융당국, 한국무역보험공사,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 등을 중심으로 수출입 기업, 현지기업을 대상으로 유동성 확대, 수출 거래선 다변화 등을 지원할 계획이다. 특히 피해 기업 대상 2조원 규모 긴급금융지원 프로그램을 시행할 예정이다. △산업은행 8000억원 △기업은행 7000억원 △수출입은행 5000억원 등 국책은행 특별대출 방식으로 자금을 지원한다. 대상은 △분쟁 지역 진출 기업 △수출·판매 기업 △수입·구매 기업 △협력·납품업체 등 국내 기업이다.
무보는 선적전 수출신용보증 보증한도 무감액 연장, 단기수출보험 보험금 한 달 내 신속 지급하고, 국외기업 신용조사 수수료 최대 5건 면제, 수출입·법무·회계 등 일대일 맞춤형 컨설팅 제공 등 수출 거래선 다변화를 지원하기로 했다. 또 백금·알루미늄 등 수급리스크가 커진 원자재를 수입보험 지원 가능 품목으로 지정하고, 금융지원 한도도 최대 1.5배까지 우대한다.
코트라는 우크라이나 사태로 현지 물류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에 긴급 물류 지원방안을 마련해 안내하고, 우크라이나 항만 등 통제 현황 등의 정보를 공유할 계획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인근 국가에 화물 보관이 필요할 경우, 코트라와 협약을 맺은 현지 물류센터에 보관 장소 및 내륙 운송 서비스를 제공하고 소요 비용에 대해 1000만원 한도 내에서 최대 70%까지 지원한다. 우크라이나 항만 통제 등 현지 사정으로 수출화물이 국내로 회항 또는 대체 목적지로 우회 운항할 경우, 해당 운송 비용을 물류전용 수출바우처에서 정산이 가능하도록 관계기관과 협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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