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폭탄 또 미루고 적금 퍼주고...N회차 관치금융

머니투데이 양성희 기자 | 2022.03.01 06:15
고승범 금융위원장이 28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금융위원장 초청 은행장 간담회'를 열어 모두발언을 하는 모습. 이날 간담회에서 고 위원장과 은행장들은 소상공인 대출 만기연장, 이자 상환유예 조치 연장 방안 등을 논의했다./사진=공동취재단

연초부터 관치금융이 금융권을 휩쓸고 있다. 정부가 은행에 소상공인, 중소기업에 대한 코로나19(COVID-19) 대출 원리금 상환을 또 한번 미뤄주라고 요구했다. 수요예측도 제대로 하지 않고 찍어내린 '청년희망적금'도 관치 논란을 피할 수 없다. 대선을 앞둔 정치권이 나서면서 관치금융이 더 심각해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1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소상공인, 중소기업에 코로나19 지원 차원에서 시행한 '대출 만기연장, 이자 상환유예' 조치를 한 번 더 연장하기로 했다. 2020년 4월부터 한시적으로 시작돼 세 차례 연장을 거쳐 오는 3월 말 종료될 예정이었다. 그런데 정부가 국회의 요구 등을 수용해 네 번째 연장을 결정하면서 2년을 훌쩍 넘긴 장기 정책이 됐다.

당초 금융위는 '질서 있는 정상화'를 언급하면서 3월 말 종료를 원칙으로 삼았는데 방향이 바뀌면서 은행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빚 폭탄'을 뒤로 미뤄 불확실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5대 은행만 보면 지난 1월 말 기준으로 지원 규모가 140조원에 육박한다.

연체율 등 건전성 지표는 역대 최저치지만 '착시효과'라는 지적이 우세하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은행권 연체율은 0.21%로 1년 전과 비교해 0.06%포인트 하락했다. 이자를 받질 못하니 부실 위험을 측정할 방법도 제한적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말 그대로 질서 있는 정상화를 준비해왔는데 다시 한 번 연장 조치에 나서면서 혼란이 커졌다"고 말했다. 이어 "원금 만기는 일시적으로 미뤄줄 수 있지만 이자도 못 내는 기업이라면 한계기업 아니겠느냐"며 "한계기업에 연명치료 하는 셈인데 산소호흡기를 언제 뗄지 모르는 만큼 타들어가는 폭탄을 떠안고 있는 것과 다름 없다"고 토로했다.


청년희망적금을 둘러싼 관치 논란도 거세다. 수요예측부터 완전히 실패한, 설익은 정책인데 '일단 조건이 되면 신청을 다 받으라'는 막무가내식 지침에 은행들은 크게 당황했다. 사전조회에 200만명이 몰렸는데 38만명이 신청할 것으로 예측한 게 문제의 시작이었다. 판매 첫주(2월21일~25일)에 5대 은행에서만 190만명 넘는 신청자가 몰렸다. 추가 수요에 대한 대응책이 마련되지 않은 판매 첫날, 둘째날엔 이틀 연속 은행 앱(애플리케이션)이 마비되는 등 신청자 폭증에 따른 혼란이 이어졌다.

'3월4일까지 조건을 충족한 청년의 가입을 모두 허용하라'는 초유의 대책을 두고도 여전히 뒷말이 나온다. 당초 은행은 청년희망적금을 달가워하지 않았는데 추가 수요와 관련해 정부의 지침을 '울며 겨자먹기'로 받아들여야 했기 때문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역마진 상품을 일단 무제한으로 판매하라는 소리"라며 "정부는 생색을 낼 수 있지만 은행은 손실을 감내하면서 정책 미비로 인한 혼란을 고스란히 겪고 고객의 비판도 떠안아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관치금융이 올 들어 더 심각해졌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지난해 가계대출 증가율 관리가 처음으로 시작되면서 고신용자가 저신용자보다 신용대출을 받기 어려워지고 은행권 금리가 2금융권 금리보다 비싸지는 등 시장질서가 왜곡됐다. 또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관치의 폐해를 겪고도 더 노골적인 조치가 이어지고 있다"며 "지난해 금융지주, 은행이 역대급 실적을 올린 터라 공적 기능을 담당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정도가 지나치다"고 했다.

관치금융이 심각해진 데에는 정치권이 한몫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정부 움직임이 국회 요구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국회는 지난달 21일 '소상공인 및 방역 지원을 위한 추가경정 예산안'을 의결하면서 금융권 대출 만기연장, 이자 상환유예 추가 연장 방안을 마련하라고 부대의견을 냈다. 청년희망적금과 관련해서도 "청년들의 수요가 충분히 충족되도록 지원대상 확대 등 필요한 조치를 시행하라"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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